도시 경관에 온기를 불어넣는 ‘가로수 길’

[컬처]by 서울문화재단

건물, 사람, 자동차가 좁은 공간에 빽빽하게 들어찬 서울이지만, 종종 길을 따라 늘어선 가로수를 발견하면 자연스레 눈이 가고 마음이 순해진다. 은행나무, 플라타너스 등 밑동 듬직한 가로수를 보며 도시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는데, 이는 가로수의 역사가 ‘도시화’의 시간과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트 유니트(EIU)의 세계 140개 주요 도시에 대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살기 좋은 도시로서 서울은 58위였다. 과연 서울은 살기 좋은 도시일까? 살기 좋은 도시란 어떤 곳일까. 도시-건축계획의 측면에서는 도시 곳곳에 공유 공간이 많이 퍼져 있느냐를 ‘살기 좋은 도시’의 주요 지표로 이해하고 이를 확대해나갈 해법을 찾으려 한다. 개인의 사적인 주거공간을 벗어나 도시를 ‘나’와 ‘우리’의 공간으로 경험하고 점유할 때 자연스레 공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쌓인다. 살기 좋은 도시란 곧 그러한 경험과 기억이 일상에 다양하게 깃들어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걷기의 역사>의 저자인 레베카 솔닛은 “도시를 점유하는 방식은 걷기”라고 말했다. 작가 고종석은 저서 <도시의 기억>에 “파리는 걷기를 유혹하는 도시였다. 오밀조밀한 볼거리들만이 아니라, 그 도시의 공기 전체가 걷기를 유혹했다”고 적었다. 즉 도시에 대한 만족과 애정은 ‘걷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도시를 걷는 구체적인 체험을 일상에서 쌓아가며 도시와 서로 닮아가는 것이다. 가로수 길은 이제 당연하고 익숙한 도시의 풍경이자 이곳을 ‘걷고 싶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도시 경관에 온기를 불어넣는 ‘가로수

1 하계동 느티나무 가로수 길. / 2 은행나무는 가로수로 각광받는 대표적인 나무다. 3 종로5가(이화동)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 / 4 가을에 노랗게 물든 느티나무 가로수 길.

도시화의 산물, 서울 가로수의 역사

서울의 가로수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깊이 있게 해보자. 서울 곳곳의 가로수길에 대해 찾아보면서 재미있던 것은, 서울과 같이 근래에 크게 변모한 도시의 경우 그 도시의 발전사가 결국 가로수 역사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서울의 경우 1890년대 말 명성황후의 국장이 치러질 때 혜화동 주민 홍태윤이 동대문 밖에서 홍릉에 이르는 길의 양편에 자력으로 백양수(사시나무)를 심었다는 기록(1933~1934년, 도로개수를 하면서 아깝게 모두 베어짐)도 있고, 1930년대 후반의 서울 도심지 가로 풍경 사진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신작로를 건설하면서 심기 시작한 가로수들이 거리의 전봇대와 어우러진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접하는 서울의 가로수는 대부분 1970년대 심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그 당시는 주로 한강, 중랑천 등 주요 하천변에 수양버들을 집중적으로 심었고,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수양버들 홀씨가 시민들의 호흡기와 천식을 유발하는 꽃가루 주범으로 오해를 받으면서 대부분 베어졌다. 1980년대에는 공해에 강하고 공기 정화 능력이 뛰어난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가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도시의 대표적인 가로수 수종으로 식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플라타너스도 빠른 성장 속도로 인해 가로수 인근 주민이나 상인들로부터 ‘햇빛이 들지 않고 간판을 가려 장사가 안 된다’는 등의 민원을 받으며 영광의 시절을 마무리했고, 1990년대를 기점으로 가로수종은 다변화하기에 이른다. 그 무렵 조성된 가로수 길이 신사동 은행나무 가로수 길이나 불광동 회화나무 길이다. 특히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가장 많이 심었는데 이는 서울의 시목이기도 했고, 30m가 넘는 거목으로 자라나는 은행나무가 서울의 무한한 성장을 상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 서울의 가로수종은 ‘춘추전국시대’처럼 다양하고, 소나무 보급에 앞장서는 중구청은 관내에 소나무 가로수 길까지 조성했다.

 

이처럼 가로수는 마을 숲, 정자목 등과 같이 한국의 마을을 조성하는 전통적인 삶의 형식이 아니었고, 근대 이후에 새롭게 등장한 경관의 형식이다. 결국 가로수는 근대 이후 도시의 문명과 궤를 같이하며, 폭발적으로 팽창한 서울의 도시화가 만든 새로운 풍경이자 시민의 삶을 담는 공간 형식인 셈이다.

20여 년째 대학로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

나는 20년이 넘도록 대학로에 머물면서 매일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고 있다. 직장 퇴사 후 설계사무소를 개설할 때 지인들은 돈 많고 회사 많은 강남에 사무실을 마련해야 한다고 충고했지만 나는 결국 직장이 있던 대학로를 떠나지 못했다. ‘왜 내가 이곳에 미련이 많을까’ 며칠을 골몰한 적이 있는데 아마도 아침, 저녁 전철역에서 회사까지 걷던 대학로의 플라타너스 가로수와 붉은 벽돌로 지어진 넉넉한 가로 공간의 즐거움, 당시 대학로의 조용하면서 밝은 분위기가 그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돌이켜보면 흥사단 앞의 은행나무, 마로니에공원의 마로니에나무, 옛 해외개발공사 앞의 비슬나무 두 그루, 그리고 잘 자란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의 넉넉한 보행 공간과 줄지어선 작은 상점 등 사계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내게 평온함과 상쾌함을 가져다주는 존재들과 함께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매일매일 우린 길을 걷는다. 출퇴근 길, 등하굣길, 또는 다른 어딘가로 향하며 걷고 또 걷는다. 그리고 언제나 그곳에서 길과 함께하는 가로수를 만난다. 30~40년이 넘기 시작한 서울 곳곳의 가로수들이 거리를 넉넉하게 채워가고 있다. 발품으로 함께한 거리의 경험과 추억이 켜켜이 쌓여 사람과 도시는 서로 닮아가는 것이 아닐까. 아직 척박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서울 곳곳에 걷고 싶은 가로수 길이 많아지길 바란다. 시민의 일상을 넉넉하게 감싸는 배경인 가로수 길이 ‘살고 싶은 서울’의 지표가 되지 않을까. 건축가 고 김수근 선생의 말처럼, 우리가 걷는 거리를 아름답게 하면 사람의 마음도 아름다워질 것이기에.

 

글・사진 명재범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주)나무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www.namuarchitects.com)를 공동 운영하고 있다. 삶의 형식으로서의 이 땅의 민가와 풍경에 관심을 가지고 틈틈이 기록・연구하고 있다. 

2016.04.0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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