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 장애가 있어도 들을 수 있는 음악

[컬처]by 서울문화재단

베토벤의 후기음악, 온몸으로 진동을 느껴볼 것

 

일반적으로 음악은 소리에 의한 예술로 인식돼, 청력에 문제가 있으면 음악을 들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귀머거리가 된 작곡가 베토벤을 매우 불쌍한 존재로 보거나, 반대로 역경을 극복한 인간 승리의 존재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전혀 음악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청각 장애가 있어도 들을 수 있는 음

청각장애인도 들을 수 있는 ‘진동’의 음악

온전한 청각을 지닌 사람이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소리는 그 근원지로부터 진동의 형태로 공기를 타고 귀까지 전달되어 온 것이다. 이 진동이 청각 신경을 자극해 경우에 따라 음악을 구성하는 하나의 음으로 인지되는 것이다. 이 복잡한 단계 중 어느 것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음악 감상에 방해가 되는 게 사실이지만, 이 과정 자체가 전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은 그 장애의 종류에 따라 공기의 진동이 귀에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고, 청각 신경에 손상이 가서 전달된 공기의 진동을 처리하지 못하는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소리의 근원은 ‘진동’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진동을 귀로는 느끼지 못하더라도 신체의 다른 기관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클럽 같은 곳에서 큰 스피커로 낮은 음을 들을 때에는 온몸으로 진동이 느껴지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전달된 자극을 귀와 더불어 다른 감각기관에서도 느끼는 것이므로 청각에 문제가 있는 사람도 감지할 수 있는 자극이다. 또한 소리를 내는 근원지에서 생성되는 최초의 진동을 직접 피부로 느낀다면, 공기라는 매개체를 거쳐 귀로 듣는 과정 자체가 필요 없게 된다.

청각 장애가 있어도 들을 수 있는 음
청각 장애가 있어도 들을 수 있는 음

베토벤이 작곡할 때 즐겨 사용한 피아노는 어떻게 소리를 낼까? 건반을 누르면 레버들이 작동해 해머가 피아노 본체 안에 설치된 줄을 때리고, 그 줄에서 나는 진동이 공기를 거쳐 소리가 되는 것이다. 청각을 상실한 베토벤은 이 피아노 줄에 막대기를 대고 이것을 얼굴에 대면서 소리를 느꼈다고 한다. 이 점에 착안해 청각장애인이 음악 수업에 원활하게 참여하게 돕는 장치가 영국에서 개발되기도 했는데, 이는 손가락을 통해 진동을 직접 느끼게 해주는 장치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장치가 개발됐는데, 손가락이 아닌 온몸으로 진동을 느낄 수 있는 의자 형태의 ‘뮤직 시트’다. 이는 음악을 구성하는 여러 음의 높낮이를 다양한 주파수로 변환해, 의자의 다양한 부분에 설치된 스피커로 전달하는 도구로, 서강대학교 예술공학 박사 송은성 씨와 현대자동차 기업브랜드마케팅 팀의 합작품이었다.

듣기보다는 ‘느끼는’ 음악, 감각의 확장

그렇다면 청각장애인이 듣고 연주하기 좋은 음악이나 악기가 따로 있을까? 청각장애인이자 세계적인 타악기 연주자인 에블린 글레니(Evelyn Glennie)는 타악기 소리를 진동으로 느끼며 연주하고, 이를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해 맨발로 무대 위에 선다. 청각장애가 있으면서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상상하기 어렵지만, 의외로 여러 교육기관에서 악기 연주를 적극 권장하는 추세다.

 

대체로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이 악기를 연주하고자 한다면, 음 높이를 미세하게 조정해야 하는 바이올린 같은 악기보다는 타악기나 음의 진동을 직접 느낄 수 있는 하프, 기타 등의 악기를 선호하고, 호흡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관악기의 경우 정해진 위치에 음 높이가 고정되어 있는 목관악기가 연주에 용이하다.5 청각장애인을 위한 달팽이관 이식술(cochlear implant)이 발달한 영국 연구팀의 자료를 보면, 환자들이 음악을 인지하는 과정에서 주기적이고 강한 비트의 드럼을 활용한 음악이 청각장애인의 음악 감상에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한다.

 

베토벤이 말년에 작곡한 많은 곡, 특히 피아노 소나타의 특징을 보면 빠른 반복과 매우 긴 트릴(trill, 꾸밈음)을 자주 사용했고, 피아노의 양 끝 극단적인 음역대의 소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페달을 남발하기도 했다.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 악보를 보면 어떤 경우는 몇 장에 걸쳐 시커먼 음표들이 수많은 덧줄에 걸쳐져 반복적으로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실제로 연주하면 감상자에 따라 매우 지저분한 소리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렇게 음악의 진행감은 더디면서 진동만 증폭되는 소리는 약간의 광기와 음향적인 탐색의 열망이 더해지지 않으면 당시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음악 구조다.

 

이런 특징들로 인해 베토벤은 말년으로 갈수록 괴짜로 악평이 나버린 작곡가지만, 그러한 평가는 어쩌면 귀가 온전한 사람들의 편견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음악은 어쩌면 청각 장애가 있는 감상자에게는 더욱 즐거운 음악일 수도 있다. 천재 작곡가가 귀가 온전하지 못해 소리를 진동으로 느껴가며 작곡한 음악이라면 멀찌감치 앉아서 팔짱을 끼고 듣는 것보다는 피아노에 온몸을 기대고 진동으로 느끼며 감상했을 때 가장 감동적으로 들리는 음악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글 신지수 현대음악 작곡가. 블로거로도 활동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뿐만 아니라 개념예술의 성찰을 담은 작업에도 관심이 있어 <노카> <escapade-focus on music> <점선소춤> 등의 전시형 작품들을 발표했다. 홈페이지 www.jeesooshin.com | 블로그 jagto.tistory.com 

2016.04.2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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