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마을 벽화 훼손 사건, 갈등과 과제

[컬처]by 서울문화재단

지난 4월 이화벽화마을의 대표 벽화 <해바라기 계단>과 <잉어 계단>이 주민에 의해 훼손됐다. 공공미술과 도시재생, 그로 인한 방문객의 증가, 해결되지 않은 주민의 이해관계 등이 맞물려 어느 한쪽의 잘잘못을 따지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한편으로 이는 드러난 갈등을 확인・해결하고 마을 상생의 제2막을 모색할 기회이기도 하다.

이화마을 벽화 훼손 사건, 갈등과 과

5월 초 방문한 이화벽화마을은 관광객과 사람들의 발길이 현저히 줄어든 모습이었다. 지난 4월 15일과 23일, 이화벽화마을을 대표하는 <해바라기 계단>과 <잉어 계단>을 마을 주민이 직접 훼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 사건이 주목받는 이유는 마을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벽화를 훼손하는 행위의 보복성과 자폭성이 대중과 공공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문화 테러행위로 인해 공공의 적이 된 가해자들의 행위는 주거권을 박탈당한 피해자로서의 입장을 동시에 표명하고 있는 터라 사건을 접하는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결과적으로 훼손된 벽화의 복원 문제는 그리 간단치가 않다. 공동재물손괴 혐의를 적용해 벽화를 훼손한 주민 5명은 처벌을 피하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복원 작업을 위해 필요한 5300여만 원 상당의 복원 비용을 정부로부터 지원받고 주거권에 해당하는 주민 합의가 이루어지는 절차를 거친다면 대략 6개월 정도가 지체된다. 정부는 이마저 개발을 반대하는 주민을 자극하는 상황이 되지는 않을지 우려를 표하고 있다.

벽화 훼손사건 뒤 이화마을의 새로운 국면

이화벽화마을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낙산프로젝트’라는 공공미술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지금의 벽화마을을 조성할 수 있었다. 당시 낙후돼 침체기를 겪고 있던 마을의 주민 대부분이 개발에 찬성했다고 한다. 이후 마을이 활성화하고 관광객 유치에 성공하면서 이로 인한 소음과 불편을 두고 주민들 간에 파벌이 생겼고 이해관계의 상충으로 합의점을 상실했다. 제3자에 해당하는 방문객의 발길에도 원망이 더해졌다. 이것은 마을의 존폐 위기를 벽화로 지켜낸 ‘동피랑 벽화비엔날레’와 수준 높은 대형 벽화로 원주민을 자연스럽게 설득한 ‘그래피티 부산’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공동체 내부와 외부의 ‘공동목표 설계’가 공공미술 실행 단계부터 지역 공동체와 공공미술의 화합을 이루기까지 중요한 열쇠가 됨을 시사한다.

 

하지만 잃어버린 벽화 덕분에(?) 이화벽화마을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이화벽화마을이 여전히 희망적인 이유는 특히 끝자락에 형성된 상권 지역의 공공성이 주거권에 거주하는 주민을 아우르며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해바라기 계단을 지나 정면으로 보이는 동그란 간판에는 ‘마을박물관’이라고 적혀있다. 이곳을 시작으로 마을박물관, 작가 공방, 대장간, 부엌박물관, 주택전시관, 갤러리 등이 하나의 골목에 늘어서 있으며 동그라미 간판으로 통일성을 더했다. 2012년 이화벽화마을의 재개발이 무산되자 최홍규 쇳대박물관 관장이 총괄감독을 맡아 시작된 ‘마을재생 10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생긴 것이다. 최 관장은 마을 끝자락의 박물관 골목에 있던 폐가 6채를 사들여 공간이 필요한 예술가들에게 임대했다. 이곳에서는 전통 미술 및 마을과 관련된 프로젝트와 전시들이 열리고 있다. 이에 대해 혹여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이라는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마을의 자생력을 전제 조건으로 주민과 외부인이 상생할 수 있는 새로운 커뮤니티가 조성될 수 있다는 전조를 보는 것 같아 내심 기대도 된다. 실제 이화벽화마을의 주거권이 있는 주민들의 생산품을 팔 수 있는 매대를 품목별로 제작해 곧 사용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벽화마을 제2막은 사람과 미술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이화마을 벽화 훼손 사건, 갈등과 과

공공미술은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국내 공공미술은 1970년대 상징 조형물로 시작해 1980년대 도시 미화 차원의 모더니즘 조각의 등장과 1990년대 장소 특정적 공공미술과 건축미술장식제도의 의무화, 2000년대 도시기획 차원의 공공미술 활성화, 대규모 공공미술 사업으로 변천되었다. 벽화 역시 공공미술 장르로서 2000년대 활성화되었다.

 

이화벽화마을은 풍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1300년대 축조된 서울성곽이 마을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고 시멘트 벽과 한옥 지붕을 접목한 적산가옥들은 사실 전망 좋은 고급 빌라의 시초가 되었다. 또한 혜화동 일대의 공연장과 대학가 지역이 상호작용 할 만한 예술적 요소와 탁월한 지역성을 보유하고 있다. 이화벽화 마을의 중심에 있는 벽화가 마을 재생의 제1막을 맡았다면 앞으로는 공공의 목표를 다시금 재정비한 다음, 제2막은 벽화와 맞물린 커뮤니티 아트(Community Art)를 수용하는 것에 있지 않을까 예상한다. 지역 공동체와 방문객 그리고 예술가 및 기획자들 간에 도출될 수 있는 교육과 노동, 지역 발전 등의 문제를 주민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과 관광객이 직접 창작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면 좋겠다. 마을 안에서 또 다른 커뮤니티가 조성되고 활성화된다면 공공미술로 인해 정작 소외된 개인과 지역민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마을 공동체의 결속을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화벽화마을의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해 벽화를 둘러싼 관념을 타파하고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 이 태도가 우리가 공공미술이란 용어에 사로잡히지 않고 공공미술 안에 있는 사람들과 미술을 이해하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글 박정원 현재 독립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며 미술과 관련된 자유 기고 활동을 하고 있다. 2005년부터 사설 갤러리와 미술관 레지던시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했고, 최근 2년 6개월간 <월간 미술세계> 편집장을 지냈다.

사진 제공 쇳대박물관, 최진영

2016.06.0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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