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목 고치려 시작한 발레, 이제 직업 됐습니다

[비즈]by 잡스엔

취미로 시작한 발레에 푹 빠져

패션디자인 전공 살려 발레복 만드는

‘다프네 로럴’ 임지혜 대표


지난 4월 종영한 tvN 드라마 ‘나빌레라’는 일흔에 평생의 꿈이었던 발레를 시작한 덕출과 꿈 앞에서 방황하는 스물세살 발레리노 채록의 성장을 그린 작품이다. 왜 발레가 하고 싶냐는 질문에 덕출은 “죽기 전에 나도 한번 날아오르고 싶어서”라고 답한다. 발레 앞에 나이나 전공은 필요 없다. 열정만 있으면 성인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게 발레다. 박세리, 김사랑, 박신혜, 강소라 등 셀럽들도 취미로 발레를 배운다. ‘다프네 로럴’ 임지혜 대표(28)는 직장 생활하며 생긴 거북목, 라운드숄더를 고치려고 2018년 발레 학원에 갔다. 발레 4년차, 지금은 발레복 만드는 디자이너로 변신했다. 지금도 여전히 발레가 취미다. 달라진 건 발레할 때 직접 만든 발레복을 입는다는 것. 취미로 시작한 발레에 푹 빠져 발레복을 만드는 일, 직접 만든 발레복을 입고 춤추는 기분은 어떨까?

취미로 발레를 시작해 발레복 브랜드 ‘다프네 로럴’을 창업한 임지혜 대표. /다프네 로럴 제공

-발레에 원래 관심이 있었나요?


어릴 때 잠깐 발레를 배운 적 있어요. 그때는 다리를 찢는 게 무섭고 아프기도 해서 금방 그만뒀어요. 발레는 그만뒀어도 종종 작아진 발레복과 발레 슈즈를 꺼내보곤 했어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즐거운 기억이 더 크게 남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어른이 되고 직장 생활 하면서 거북목, 라운드숄더 같은 직장인의 고질병이 생겼어요. 제 업무가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쓰는 의류, 잡화, 화장품, 가전제품 정보 등을 데이터로 만드는 거였어요. 매일 연예인들을 들여다보는 일을 하다보니 발레로 체형을 교정했다는 연예인이 눈에 띄더군요. KBS에선 발레를 배우는 ‘백조클럽’이란 예능도 나왔어요. 당장 발레 학원을 찾았어요. 동네에 성인 발레 학원이 딱 한 군데 있었는데 바로 등록했어요. 어느새 취미로 발레한 지 3년입니다.   


-발레의 매력은 뭐죠?


발레 동작이 보기에는 가볍고 우아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전신 근력을 쓰는 고강도 운동이에요. 기본 동작만 해도 온몸이 떨립니다. 백조가 물 위에선 우아해 보여도 물 안에선 쉬지 않고 발을 차는 것과 비슷해요. 보기와 다른 반전 매력이 있죠. 음악에 맞춰 동작을 하다보니 지루하지 않고 재미 있게 근력을 기를 수 있어요. 나중엔 발레 동작을 잘하고 싶어서 따로 웨이트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신기한 운동이에요. 무엇보다 자세 교정에 좋아요. 틀어진 자세를 바로잡으니까 키가 커진 것 같아요. 몸의 선도 달라졌어요. 근육도 생기고요. 발레는 어렵다, 돈이 많이 든다는 편견이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수업료도 한달 10만원대(주 2~3회)로 요가와 비슷해요. 초보는 발레복, 발레슈즈도 필요 없습니다. 힘들긴 하지만 스스로 성장하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발레 강추합니다.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임지혜 대표는 직접 제품을 디자인하고 샘플을 만든다. /다프네 로럴 제공

-발레의 매력에 빠져 창업까지 한 건가요?


직장 생활 하면서 언제까지 여길 다닐 수 있을까, 내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만 했어요. 이거다 싶은 맘에 쏙 드는 아이템이 없기도 했어요. 지난해 29살이 되면서 더 늦기 전에 창업을 해보자 결심했어요. 창업을 하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제 인생에도 적용시킬 수 있는 해결 방법이나 보완책을 빨리 찾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어요. 예전에 발레 선생님과 함께 발레를 배우던 친구와 발레복 브랜드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한 적 있었어요. 다들 본업이 바빠서 말만 하고 흐지부지 했었죠. 저는 여전히 발레를 하고 있었고 발레가 좋으니까 발레복으로 창업을 해보자 결심했어요. 제 전공이 패션디자인이에요. 직접 디자인한 발레복을 만들어 팔면 재밌을 것 같았어요. 4년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 준비에 들어갔어요. 원래 발레 선생님과 함께 시작했는데 사정이 생겨 1인 창업을 했습니다. 


-브랜드명 다프네 로럴은 무슨 뜻이에요?


다프네는 그리스어, 로럴은 영어로 월계수란 뜻이에요. 제 이름이 지혜인데 지혜 지(智), 지혜 혜(慧)거든요. 같은 식으로 나열했어요. 처음 디자인한 제품이 나뭇잎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스커트였어요. 나뭇잎을 보니 어릴 적 좋아한 그리스 로마 신화 속 다프네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아폴론의 구애를 피해 달아나다 강의 신에게 부탁해 월계수 나무로 변한 이야기요. 그래서 처음엔 다프네라고 브랜드명을 정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름이 흔하기도 하고 상표권 문제가 생길 수 있겠더라고요. 그때 발레 선생님이 로럴을 불여보라고 아이디어를 줬어요. 브랜드명을 다프네 로럴로 정한 뒤 ‘일상에서 꿈꾸는 나만의 작은 공연’이란 슬로건도 만들었어요. 나뭇잎들이 바람에 날리면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잖아요. 마치 자기들끼리 공연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 발레복을 입고 나만의 작은 공연을 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임지혜 대표가 디자인한 다프네 스커트와 로럴 스커트, 모델도 직접한다. /다프네 로럴 인스타그램 캡처

다프네 로럴은 저처럼 취미발레를 하는 분들을 위한 발레복을 만듭니다. 발레 수업할 때 입는 연습복이요. 대신 발레 공연 의상처럼 화려하면서도 실용성을 강조했어요. 발레복 하면 튜튜(발레리나들이 입는 볼륨 있는 스커트)가 대표적인데요. 튜튜는 예쁘지만 비싸고 연습할 때 입기엔 과합니다. 튜튜를 가볍게 입을 수 있게 만든 게 로럴스커트입니다. 쉬폰과 망사를 겹쳐서 만들었는데 뒤집어서 양면으로 활용할 수 있어요. 망사를 바깥으로 입으면 가벼운 튜튜 느낌이 나요. 반대로 쉬폰을 바깥으로 입으면 차분한 분위기가 나고요. 움직일 때 살짝살짝 보이는 망사가 매력적이에요. 누구나 편하게 입고 벗을 수 있도록 뒷트임을 길게 넣었습니다. 로럴스커트 말고도 나뭇잎을 모티브로 만든 첫 제품 다프네스커트가 있고요. 레오타드 위에 입는 발레 워머 세트, 레그 워머 등이 있습니다. 제가 직접 발레를 하다보니 시중에 있는 제품들을 잘 알고 직접 입어보기도 했잖아요. 제가 직접 디자인한 기존에 없는 제품을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고객들 반응은 어때요?


신생 브랜드라서 고객들의 피드백을 받을 때 신기하고 짜릿합니다. 고객들은 전문 무용수보다는 취미로 발레하는 분들이 많아요. 전문 무용수처럼 공연 의상을 찾는 게 아니라 연습 때 입을 옷을 찾는 분들이요. 20~40대 여성 고객들이 대부분이에요. 고객들의 반응을 발레 수업 때 체감하기도 해요. 제가 만든 발레복을 입고 가면 같이 수업 듣는 분들이 이옷 어디꺼냐, 어디서 사느냐고 물어봐요. 그럴 때 뿌듯하죠.


-취미가 일로 바뀌었는데 더 즐거운가요? 힘들지는 않아요?


아직까지는 일이 재밌어서 힘든지 모르겠어요. 제품 스케치하고 동대문에서 원단을 떼고 패턴을 잘라 바느질을 하는 모든 일이 즐거워요. 미싱하다가 밤을 새기도 하고요. 매일 밤 11~12시까지 5평 작업실에 박혀 있어도 내 브랜드를 만들고 내 사업을 한다는 게 좋아요. 전 오히려 발레복을 만들면서 발레를 더 열심히 하고 있어요. 아침마다 학원에서 발레 수업을 듣고 주말에는 개인 레슨도 받습니다. 제가 직접 발레복을 입고 발레를 하면서 제품을 보완할 수 있거든요. 모델도 제가 직접 하고 있어요. 덕분에 촬영하면서 제 동작이나 자세도 점검할 수 있어요. 일이 취미에도 도움이 됩니다.

5평짜리 작업실에서 밤새도록 미싱을 해도 즐겁다는 임지혜 대표가 제품을 들여다보고 있다. /다프네 로럴 제공

오늘 아침에도 발레를 하고 왔어요. 여전히 발레를 하고 좋아하다보니 발레하는 분들의 니즈를 잘 압니다. 연습 때 입어도 예쁜 옷, 남들과는 다른 옷을 원하죠. 거울 앞에 늘 서 있으니까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예쁘면서 실용적인 발레복을 만들려고 해요. 기존에 없는 새로운 제품을 고민하고 만들고요.


-1인 창업이 쉽지 않았을 텐데 힘든 순간은 없었나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혼자하는 게 아직도 힘들긴 해요. 그래도 아직까지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습니다. 이 일을 하게 되는 것이 운명인 것처럼 창업을 하기까지 저는 참 운이 좋았어요. 지금 작업실도 운 좋게 구했어요. 창업을 준비할 때 우연히 다이브인 아뜰리에 입주 공고를 봤어요. 다이브인은 아티스트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소개하는 플랫폼입니다. 서울 연남동에는 작업을 위한 공간과 건물이 있어요. 전 디자이너지만 창작 활동을 하다보니 아티스트 자격으로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어요. 5평 작업실을 쓰는데 보증금, 권리금이 없어요. 월세도 후불로 낼 수 있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제가 가진 소자본으로 창업을 하려고 하니 막막했는데 정말 좋은 기회였죠. 한 건물에 아티스트들이 모여 있으니 영감도 얻을 수 있고요. 연트럴파크가 바로 앞에 있어서 작업하다 창밖을 보며 쉬기에도 좋아요. 사실 저는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면서 디자이너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개성이 부족하다고 느꼈죠.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SPA브랜드 수퍼바이저를 꿈꿨고 미디어 커머스 회사에서 일했어요. 패션과 관계된 일이었지만 디자이너 실무 경험은 부족했어요. 막상 제가 직접 제품을 디자인하고 샘플을 만들고도 공장에 생산을 맡기는 과정이 어렵더라고요. 그때는 진짜 힘들었어요. 다행히도 디자이너, 패션계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도움을 줬어요. 공장도 알아봐주고 현직들만 아는 정보 많이 줬어요. 요즘은 공장 사장님들도 공장을 알아봐주기도 하고 도움을 주세요.

임지혜 대표가 다프네 로럴을 창업하고 처음 만든 제품인 다프네스커트. /다프네 로럴 제공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궁금합니다.


아직은 창업 초기라서 수익이 많지는 않습니다. 일단 다프네 로럴을 발레 하는 누구나 흔하게 입는 브랜드로 만드는 게 목표예요. 취미 발레든 전공생이든 무용단 연습실이든 누구나 1명은 입는 브랜드요. 그럼 억대 매출도 기대할 수 있겠죠.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발레에 관한 모든 것을 한자리에 모은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어요. 발레 수업도 듣고 맞춤 발레복도 주문하고  프로필 사진까지 찍을 수 있는 토탈숍이요. 발레를 좋아하는 분들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게 저의 큰 꿈입니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행복의 기준은 누구나 다르지만 적어도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앞으로도 그러고 싶어요.   

 

글 CCBB 키코에루

2021.06.0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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