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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강남 사람은
강남 맥주 마신다고요?

by중앙일보

강서·달서·해운대…요즘 뜨는 지역 맥주

애정 듬뿍 담아 마시긴 하는데

예쁜 라벨만큼 맛도 있을까

강남 사람은 강남 맥주 마신다고요?

지역 이름을 붙인 수제맥주가 인기다. 라벨에 지하철 강남역을 넣은 '강남맥주',김포공항을그려넣은 '강서맥주', 대구 달서구에 있는 83타워(우방타워)를 넣은 '달서맥주', '해운대맥주'(왼쪽부터). 임현동 기자

강남·강서(서울)·달서(대구)·해운대(부산). 이들에게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바로 지명으로 이름을 붙인 수제 맥주, 다시 말해 지역 맥주가 있는 동네들이다. 지역 맥주의 시작은 강남이다. 2016년 4월 크래프트비어(수제 맥주)와 병맥주를 파는 ‘크래프트브로스’ 강남점이 문을 열면서, 이벤트 성격으로 '강남맥주'로 이름 붙인 수제 맥주를 선보였다. 강기문 크래프트브로스 대표는 “강남 이미지처럼 화려한 과일 향과 진한 맛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크래프트브로스뿐 아니라 강남을 비롯해 전국에 있는 수제맥주 프랜차이즈 전문점 ‘생활맥주’에서 판매 중이다. 조만간 대형마트에서도 판매할 예정이라고 한다.

강남 사람은 강남 맥주 마신다고요?

크래프트브로스 탭하우스 강남점 오픈을 기념해 만든 강남페일에일. [사진 크래프트브로스]

지역 맥주가 보다 대중화한 건 같은 해 10월 출시한 '강서맥주' 덕분이다. 홈플러스가 수제 맥주 브랜드 '세븐브로이'와 협업해 선보인 이 제품은 강서의 랜드마크인 김포공항 관제탑을 라벨 디자인에 반영해 지역색을 살렸다. 김교주 세븐브로이 이사는 “라벨에 있는 관제탑과 초승달의 외로운 이미지처럼 혼술족을 위한 술”이라며 “덜 쓰고 단 맛이 있어 혼자서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강서맥주가 인기를 끌자 홈플러스는 2017년 3월과 6월 잇따라 달서맥주와 해운대맥주를 내놨다. 달서맥주 역시 세븐브로이에서 만든 수제 맥주로, 라벨에 대구의 대표적인 소풍 장소인 이월드(옛 우방랜드)에 노을이 지는 모습을 표현했다. 이 노을을 맛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을의 색과 같은 오렌지향을 넣었다. 수제 맥주 브랜드 코리아 크래프트 브류어리(KCB)가 만든 해운대맥주는 대낮에 해변에서 마실 수 있는 맥주를 컨셉트로 만들었다. 쓴 맛은 줄이고 파인애플 향을 넣어 가볍게 마실 수 있도록 했다. 또 병으로 포장한 다른 맥주와 달리 휴대하기 편리하도록 캔으로 제작했다. 8월 초엔 또 다른 지역 맥주를 출시할 예정이다. 홈플러스에 이어 CU도 2017년 3월부터 강서·달서맥주 2종을 판매 중이다.

 

대량유통은 아니지만 수제 맥주집에서 이런 지역 이름을 붙인 맥주를 만들어 판매하는 경우는 훨씬 많다. 서울 성수동의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와 은평구 역촌동 ‘브릭하우스 76’은 각각 '성수맥주'와 '은평맥주'를 판매하고 있다. 이처럼 지역 이름을 딴 맥주들이 등장한 데는 2014년 주세법 개정 덕분이다. 과거엔 브루펍(brew pub)에서 직접 맥주를 만든다 해도 매장 안에서만 판매할 수 있었지만 이젠 매장 외에도 맥주를 유통·판매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름값 하는 지역 맥주

지역 맥주는 소규모 브루어리(양조장)가 저마다의 공법으로 제조한 수제 맥주인만큼 개성 있는 맛과 향이 특징이다. 기존 맥주에 식상해하는 이들이 늘면서 지역 맥주를 찾는 사람이 꾸준히 늘고 있다. 홈플러스에 따르면 7월 1~20일 강서맥주는 수십여 종의 국산 맥주 가운데 판매 3위를 기록했다. 전월 같은 기간 판매량과 비교할 때 강서맥주(20.1%)와 달서맥주(27.3%)모두 20% 이상의 성장세를 보였다. 다른 국산 맥주는 10%를 넘긴 게 없다.

강남 사람은 강남 맥주 마신다고요?

강서구 랜드마크인 김포공항을 라벨에 그려넣은 강서맥주. [사진 세븐브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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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서구의 83타워를 그려넣은 달서맥주. 바닐라 향에 오렌지와 자몽향을 내는 아로마 홉을 넣었다. [사진 세븐브로이]

재미있는 건 지역 맥주이다보니 해당 지역에서 특히 높은 인기를 끈다는 점이다. 가령 6월 한 달간 해운대맥주의 부산 판매량은 전국 평균보다 3.2배 높았다. 특히 홈플러스 해운대점과 센텀시티점에서는 전국 평균보다 무려 7.7배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다른 지역 맥주도 비슷하다. 강서맥주는 강서구를 비롯해 서울 서부지역권에서 매출이 압도적으로 높다. 원래 CU가 한달간 서울에서 맥주 100개를 판다고 친다면 그중 6개만 강서구에서 팔려나간다. 그런데 6월 한 달간 강서맥주의 서울지역 매출 비중을 살펴봤더니 100개 중 무려 25개가 강서구에서 팔렸다. 해당 지역에서 특히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구매욕 자극하는 지명

강남 사람은 강남 맥주 마신다고요?

지역 맥주는 해당 지역에서판매율이 높다.[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지역 이름은 기존의 획일화한 맥주에 식상해하는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봄에만 파는 딸기빙수라고 하면 꼭 먹어봐야할 것처럼 느껴지듯 맥주에 지역 이름을 붙이면 구매하고 싶어진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지역 맥주 인증샷이 자주 올라온다. 지역 주민들이 맥주 사진과 함께 ‘동네 이름으로 해놓으니 귀엽다’거나 ‘신기해서 사봤다’라는 의견을 달아 올린 것들이다. 지역 맥주 사진과 함께 ‘우리 동네는 대표 병맥도 있다’고 적은 글도 있다. 아무래도 해당 지역에 살다보니 더 쉽게 지갑을 연다.

 

꼭 그 지역에 살지 않더라도 추억만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전미영 연구위원은 “지역은 소비자가 이미 한 경험을 재가공하기에 좋은 소재”라며 “내가 가 본 지역 또는 거기서 먹어본 맛을 다시 즐긴다는 측면에서 요즘 트렌드와 잘 맞는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맛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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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맥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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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 평가도 심심치않게 SNS에 올라온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호기심을 이끄는 데는 합격점을 받았지만 맛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SNS에서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혹평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강서맥주는 ‘기대이상’ ‘묵직하면서 맛있어!’ ‘목 넘김이 가볍다’ ‘내스타일’ 등 긍정적인 평가가 비교적 많다. 하지만 강서맥주와 같은 제조사인 세븐브로이에서 만든 달서맥주는 ‘형만한 아우없다’는 식으로 부정적 의견이 없지 않았다. 김교주 이사는 “수제 맥주는 늘 새로운 맛을 추구해야 한다”며 “달서맥주는 일반적인 보리맥주와 달리 밀맥주(보리 뿐 아니라 밀로 만든 맥주) 특유의 묵직함과 과일향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조합이라 호불호가 나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파인애플향을 첨가한 해운대맥주에 대해선 ‘가볍게 마시기 좋다’는 긍정적인 의견과 ‘아기들 감기약 맛이 난다’‘해운대에서 먹으면 좋을지 몰라도 (다른 지역에서 마시기엔) 그닥’ 이라는 혹평이 공존한다.

 

맥주 맛과 향을 깐깐하게 따지는 맥덕(맥주덕후라 불리는 매니어)이 늘면서 단순히 패키지나 이름 만으로 지속적인 호객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셈이다.

 

지역 맥주가 한국에 등장한 지 불과 1년, 그만큼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강기문 대표는 “미국 브루클린 브루어리의 ‘브루클린 라거’나 사무엘 아담스의 ‘보스턴 라거’처럼 외국에는 수십 년 동안 지역 주민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해온 맥주가 많다”며 “국내도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송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