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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일본 우익재단, 한·미 전문가 불러 한반도 전쟁 시뮬레이션

by중앙일보

사사카와 재단 2월 비공개 세미나

한국 한완상·한승주·윤영관 참석

미국 멤버는 러셀·샤프·리퍼트

한국 측 “위기의식 부풀려선 안돼”

일본 우익재단, 한·미 전문가 불러

사사카와 료이치

도쿄 미나토(港)구 토라노몬(虎ノ門)에 있는 ‘사사카와(笹川)평화재단’건물.

 

일본 최대의 싱크탱크의 사무실에 한국·미국·일본의 내로라하는 한반도 전문가들이 몰려들었다. 평창 올림픽 개막(2월 9일) 직후였다. 당시 한반도와 동북아의 상황은 대화무드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의 분위기와는 조금 달랐다.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한 남북간 대화가 진행됐지만 미국은 “모든 옵션이 테이블위에 있다”며 여전히 북한에 대한 군사력 사용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다.

 

당시 사사카와 재단을 찾은 인사들의 면면은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한·미·일 드림팀’ 수준이었다. 한국에선 김영삼(YS)정부에서 외무부 장관을 지낸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 같은 YS 정부의 부총리겸 통일원 장관을 역임한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 노무현 정부 외교통상부 장관 출신인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참석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의 경우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에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한 대통령의 멘토기도 하다. 지난 2월말 청와대는 “대통령직속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 위원장에 한 전 부총리를 내정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측 멤버는 대니얼 러셀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 사령관,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 대사, 데이비드 시어 전 국방부 아태담당 차관보 등이었다. 일본측에선 모리모토 사토시(森本敏) 전 방위상, 오리키 료이치(折木良一) 전 자위대 통합막료장, 후지사키 이치로(藤崎一郞) 전 주미 일본대사, 니시 마사노리(西正典) 전 방위성 사무차관 등이 참석했다.

 

사사카와 재단은 ‘일본 우익의 우두머리’로 불리는 사사카와 료이치(笹川良一·1899~1995)주도로 설립된 재단이다. 총자산이 1400억엔(약 1조4100억원)을 넘고 막대한 자금력을 자랑하는 일본 최대 공익 재단이다.

 

내부 사정에 밝은 소식통들에 따르면 사사카와 재단이 개최한 이날 행사는 ‘한반도 유사시 대비’를 주제로 한 비공개 세미나였다. 2박3일에 걸쳐 열린 당시 세미나는 소위 ‘TTX(Table Top Exercise, 테이블탑)’이라 불리는 형식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미군의 군사력 사용 등으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한반도 유사시의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실제 상황이 벌어졌을 경우 한·미·일 3국이 어떻게 대응하고 계획을 실행할지를 구체적으로 따져보는 방식이다.

 

위기 상황에서 각 주체들의 행동을 점검하는 시뮬레이션, 또 원할한 소통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토론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한 전 부총리 등 한국 측 참석자들은 토론에서 “일본이 북한에 대한 압박 일변도의 정책을 고집하거나 한반도 유사시 사태를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국제사회의 위기의식을 필요 이상으로 부풀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적 견해도 피력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내각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중심이 돼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가 어떻게 대응할지, 또 한국에 있는 일본인들을 어떻게 대피시킬지에 대한 정부차원의 시뮬레이션을 진행중이다. 사사카와 재단은 비록 민간영역에 있지만 아베 내각과 끈끈한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당시 비밀 세미나의 논의 결과는 일본 정부의 한반도 유사시 시뮬레이션 작업에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 정부와 우익재단이 수면하에서 치밀하고 지독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