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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민국홍의 삼식이 레시피

해주는 밥 먹기보다
밥 해먹이기가 행복하나니

by중앙일보

민국홍은 삼식(三食)이다. 하루 세끼를 챙겨 먹어서가 아니라 아내에게 밥해주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요리와 맛집에 관심이 많은 남자이고 미식가다. 현역을 떠난 지금 요리학원에서 정식으로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워 아내의 세끼를 챙겨주고 있다. 그의 세끼에는 인생이 담겨 있다. 음식 하나하나마다 고통과 즐거움이 교차하는 낭만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할머니, 어머니 등 가족사가 녹아있다. 건강과 행복을 선사하는 삼식이 밥상의 인생스토리와 레시피를 소개한다. <편집자>

해주는 밥 먹기보다 밥 해먹이기가 행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을 접수한 민국홍. [사진 민국홍]

끼니마다 인생이 맛있게 익어간다. 오늘 저녁 집에서 고추장 김치찌개와 가자미 튀김을 만들었다. 내가 만든 음식의 향과 맛이 코와 침샘을 자극한다. 그 달콤함과 담백함이 피아노의 선율처럼 온몸에 흘러 퍼진다.

 

예전에 이 같은 음식을 해 먹던 동해안의 민박집 추억도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저절로 와인 잔을 들어 집사람과 쨍하며 한 모금을 음미한다. 참으로 행복하다. 내가 삼식(三食)이가 된 이래 끼니마다 엔도르핀이 샘솟는다.

 

나는 현역을 떠나기 몇 년 전부터 은퇴 후 부부관계를 어떻게 이어갈지 생각을 많이 해보았다. 신문이나 방송이 은퇴 후 부부생활에 적응이 안 된 남자 이야기를 하는데 온통 삼식이란 보도다.

해주는 밥 먹기보다 밥 해먹이기가 행

지난해 가을, 학원에서 실습한 오무라이스와 스테이크. [사진 민국홍]

삼식이란 직장을 떠난 은퇴자가 아내를 졸라(?) 하루 세끼 해 먹으면서 그에게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남자를 말한다. 여성이 제일 싫어하는 부류의 남자라는 것이다. 참으로 주제도 파악하지 못하는 형편없는 은퇴자 남편을 의미하는 것 같고 어감조차 식충이처럼 들린다.

 

나도 은퇴 후에는 가급적 집사람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생각했는데 걱정됐다. 이야기도 많이 하고 영화 보고 손잡고 산책을 하려는데 쉽지 않다는 사전 경고가 아닌가.

밥 해주는 것이 최고의 가사 분담

이런 고민 속에서 탄생한 것이 삼식이에 대한 역발상이다. 어느 날 나는 삼식이란 단어를 180도 뒤집어보기로 했다. 해주는 밥을 먹는 남자에서 밥을 해주는 남자, 세 끼니를 해주는 삼식이가 되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은퇴 후에는 가사분담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도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녀평등사회로 바뀌었다. 젊은 직장 후배는 물론 시집 장가간 딸과 아들이 가사분담을 하는 것을 익히 보아왔기 때문에 전업주부인 아내의 집안일을 덜어주는 게 당연했다.

해주는 밥 먹기보다 밥 해먹이기가 행

요리 학원에서 전주비빔밥을 배운 뒤 직접 만들어 내놓았다. [사진 민국홍]

밥하는 것이 가사 분담으로는 최고라고 생각됐다. 노동량은 별것이 아닌데 아내가 생각하는 가사비중에서는 넘버 원이라는 짐작이 들었다. 여자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이 뭔지를 아니? 남이 해주는 밥이다.”

 

유명 셰프나 맛집의 요리가 아니다. 남편과 자식들 밥해 먹이느라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음식이 맛있게 됐는지 30년 이상을 고민하고 힘들어하면서 살아왔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게 너무도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삼식이가 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늘 내가 요리를 잘하고 만약 어려서 요리를 배웠다면 유명한 셰프가 됐을 것이라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우연하게도 군대 상병 때 6개월간 장군의 숙소당번병을 하면서 밥하는 것부터 찌개와 국, 반찬 하는 것을 몇 가지 배웠다.

해주는 밥 먹기보다 밥 해먹이기가 행

학원에서 두부전골을 실습하고 찍은 사진. [사진 민국홍]

음식 하는 ABC를 배운 것이다. 미국 시라큐스 대학원 유학 시절 미국인 교수 집 점심에 초청을 받았는데 남자가 음식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 막연하게 나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로망을 가지게 되었다. 기자와 기업 임원 생활을 할 때 수많은 맛집을 섭렵했다. 언젠가 나도 이처럼 맛있는 음식을 직접 해보는 꿈을 간직해왔다.

 

그래서 은퇴 전에도 가끔은 집에서 음식을 하곤 했다. 어머니가 해주던 떡볶이를 흉내 내거나 맛집의 순두부, 김치찌개, 전복 돌솥 밥과 전복죽 등 몇 가지 음식을 시도해 가족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9개월간 요리학원 4개 코스 수료

2년 전 회사에서 비상근 고문으로 물러나 시간적 여유가 많다 보니 음식을 해보겠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2017년 3월 초 후배와 골프 라운드를 하다가 그가 요리를 배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포의 중부여성발전센터에서 일식반을 다니는 데 정말 재미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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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강습이 끝난 뒤 중부여성발전센터 한식반의 유영현 선생과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사진 민국홍]

나도 4월부터 9개월간 한식반, 일식반, 샌드위치반(파스타 포함)을 다녔다. 9개월간 요리에 대한 기본지식이 탄탄해지고 내공이 깊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아내보다는 음식을 잘하는 편이었다. 음식을 잘 만들 자신감이 생겼다. 더는 근자감이 아니다.

 

게다가 현역에서 물러나니 맛집이나 고깃집에서 술을 곁들여 외식하는 게 경제적으로 좀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내가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집사람 가사도 덜어주고 맛있는 음식을 곁들어 좋아하는 술을 먹는 게 정답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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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에서 배워 만든 샌드위치. [사진 민국홍]

이 이상 무엇이 필요하단 말인가. 새해가 밝아오자 가족한테 선언했다. 이제는 가족도 아내 1명뿐이다. 내가 삼시 세끼를 책임지겠다. 벌써 6개월 동안 삼시 세끼 음식을 만들어 오고 있다.

 

김치찌개, 된장, 청국장, 고추장찌개, 버섯 전골 등 찌개류부터 육개장, 삼계탕, 대구탕 등도 선보였다. 병어조림에서부터 일식 도미 조림도 했다. 봄에는 도다리쑥국도 해보았다. 스시도 만들고 새우튀김도 하며 떡볶이도 가끔 한다.

 

2월에는 제사상도 책임졌다. 육원전(동그랑땡)도 처음 만들어다. 샌드위치도 만들고 ‘민국홍 표 라면도 창조했다. 만두 갈비탕을 시도했다. 김치를 담그기 시작해 지금은 베테랑이다.

온 식구가 행복, 외손녀는 셰프라 불러

해주는 밥 먹기보다 밥 해먹이기가 행

삼식이 부부가 딸네 가족과 함께 주말 저녁을 즐기고 있다. [사진 민국홍]

집밥치고는 최강의 맛과 건강의 맛을 자랑한다. 나는 실전형의 평범한 밥하는 사람인데 내가 만들면 아내를 비롯해 초대한 아들, 딸 가족이나 장모님 등 모두가 고급요리를 먹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만드는 나도 만족한다. 어떤 때는 마성의 맛이 나와 나도 놀란다.

 

손녀가 나보고 셰프라고 한다. 초등학교 1학년인 외손녀 수빈이가 집안에서 할아버지가 제일 요리를 잘한다면서 ‘셰프 민’이라는 호칭을 붙여줬다. 딸이 음식점을 차려도 되겠다고 추임새를 넣는다. 나의 음식이 일류 셰프나 맛집만큼 맛있지는 않을 것이다. 음식 솜씨가 식당 요리사나 베테랑 주부만큼 되지 않을 것이다. 음식을 내놓으면 모양도 예쁘지도 않다.

 

하지만 음식 하나하나를 음미하면 참으로 맛있다. 집밥치고는 최강이고 사위의 폭풍흡입을 불러오는 마성이 있다고 자부한다. 내가 삼식이가 되니 부부 사이가 더욱 가까워지고 행복해졌다.

 

늘 아내에게 오늘 음식은 어떨 것이라는 것을 설명해주고 장도 같이 본다. 아내는 보조주방장이 되어 음식 만드는 것을 거든다. 식사할 때는 늘 반주를 곁들인다. 어떤 때는 소폭을 말아 함께 러브 샷을 한다. 인생이 농익어가고 행복이 녹아든다.

 

민국홍 KPGA 코리안투어 경기위원·중앙일보 객원기자 minklpg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