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묶인 라돈침대 4만 개, 태풍에 쓰러지고 비닐 너덜너덜

[이슈]by 중앙일보

당진·천안 주민들 "사전에 한마디 통보도 없던 정부에 실망"

원안위 "주민들이 협조해주면 야적장에서 해체하겠다" 읍소


15일 오전 충남 당진시 송악읍 고대리 동부항만 고철야적장. 철제펜스를 따라 야적장 안으로 들어가자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전국에서 수거한 라돈 매트리스 더미가 보였다. 원안위가 한 달 전부터 옮겨온 매트리스 1만6900여 개는 이날 흉물스럽게 쌓여 있었다.


비에 젖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매트리스를 덮었던 비닐은 너덜너덜해졌다. 매트리스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성인 키 높이 만큼 쌓였던 매트리스는 바람에 날려 어지럽게 흩어졌다. 무너져내린 매트리스 더미는 바닥에 고인 빗물에 고스란히 노출돼 누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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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문제가 된 대진침대 매트리스는 4만1000여 개가 수거됐다. 천안 대진침대 본사에 2만4000여 개, 당진에 1만6900여 개가 쌓여 있다. 7000여 개는 아직 수거되지 않았다.


한 달 전 송악읍 고대1리 주민 등 100여 명은 “독재정권 시대도 아닌데 정부가 주민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매트리스를 옮겨왔다”며 야적장 입구에 천막을 치고 차량과 정부 관계자의 출입을 막았다.


주민 반발이 거세자 지난달 25일 원안위는 “매트리스를 모두 대진침대 본사로 옮기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주민들이 믿지 못하겠다고 하자 합의서도 작성했다. 원안위는 주민들과 협의를 통해 7월 20일까지 매트리스를 옮기기로 했다.


대진침대 본사가 있는 천안시 직산읍 판정리 주민들도 강경하다. 지난달 원안위가 당진의 매트리스를 천안으로 가져온다는 소식을 접한 뒤 대진침대 본사 입구에 천막을 설치하고 차량의 출입을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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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대진침대 입구에 ‘라돈침대 반입금지! 천안이 만만하냐?’ ‘안전하면 너네 집에서 해체해라, 살기 좋은 내 고향 내가 지킨다’ 등의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천막에서 만난 판정리 주민들은 “원안위는 물론이고 대통령·국무총리도 못 믿겠다”고 손사래를 쳤다. 매트리스를 추가로 반입하는 것도 반대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본사에 쌓여 있는 매트리스를 해체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대진침대 본사 잔디밭에는 해체를 중단한 상태의 매트리스 수백여 개가 쌓여 있었다. 뒤늦게 수거된 매트리스는 비에 젖는 것을 막기 위해 붉은색 대형 비닐로 덮었다. 강한 바람에 비닐이 벗겨지면서 하얀색 매트리스가 그대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철하(60) 판정리 이장은 “정부에서 천안과 당진 두 지역을 놓고 갈등을 조장하는 데 우리는 서로 다투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며 “답이 없다. 한 번 양보하면 끝이 없다는 게 주민들이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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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라돈침대 사태 악화의 책임이 정부에 있는 만큼 시일이 걸리더라도 주민을 설득하고 납득할만한 해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갈등조정 능력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유종준 당진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이번 사태는 정부의 일방통행식 대처로 발생한 일”이라며 “다른 곳으로 반출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면 정부는 수백 번이라도 당진과 천안 주민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안위는 16일 오전 당진시청에서 브리핑을 갖고 당진과 천안에서 매트리스 해체작업이 이뤄지도록 주민의 이해와 협조를 당부했다. 매트리스 보관장소에서 측정한 방사선 수치(최대 0.24μ㏜/h)가 자연방사선 수준(0.1~0.3μ㏜/h)과 차이가 없다는 측정결과도 공개했다.


원안위 엄재식 사무처장은 “현장(당진·천안)을 오가며 주민의 요구사항을 청취하고 설득하는 과정”이라며 “주민이 안심하도록 철저하게 관리하고 야적장에서 매트리스를 해체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당진·천안=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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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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