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되고 알았다, 나도 예전에 '마음 장애인' 이었다는 걸

[라이프]by 중앙일보







“또르르” 볼펜을 굴려보았다. 구르던 볼펜이 멈춰선 맨 위쪽에 ‘공인중개’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그래, 오늘은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 공부를 해야지.” 공인중개사 참고서를 펴는데 평소 잘 아는 지인에게서 문자가 왔다. 인생 환승에 관련해 사연을 응모해 보라는 내용이었다. 인생 환승이라…. 공부하려던 책을 덮고 잠시 눈을 감고 그동안 살아왔던 인생을 더듬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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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3일 고속도로에서 차 사고로 2시간 넘게 압축된 차에 끼어 있다가 앰뷸런스로 대학병원에 가며 느꼈던 감정이 인생 환승의 순간이었을까? 뼈가 부서지고 뒤틀어진 다리에서 느끼는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었다. 그 후 병원에서 무려 7시간의 대수술을 앞두고 마취를 시작하려 하기 전에 느꼈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대로 죽어도 좋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삶이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눈물범벅이 되어 수술실로 들어가는 나를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지만 다리나 허리에 느껴지는 감각을 봐서는 사람 구실 하기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1인 병실에서 2년 넘게 병실 밖으로 보이는 어느 건물의 일부분만 매일 쳐다보며 언젠가는 걸어나가서 저 건물이 무슨 건물이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치료는 차도가 없었고 침대에서 대소변을 봐야 했다.


그 후 40번이 넘는 수술 끝에 쇠를 몸속에 고정해가며 퇴원을 했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는 한걸음도 못 걷는 신세였다. 특히 오른쪽 발목에 대한 통증은 잠을 못 이룰 정도였고 결국에는 4개월 전 최종적으로 절단 수술을 했는데 그때가 바로 인생환승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려 3년 넘게 고통을 느끼면서도 절단의 결단을 못 내렸던 내가 인생환승이라는 거창한 단어까지 써가며 절단 수술을 결심한 이유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걸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수술은 했지만 요즘도 가끔은 다리가 다시 자라날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하기도 하고 없어진 발가락이 간지럽거나 통증이 올 때도 있지만 이제 이 몸을 잘 유지하고 살아야 한다는 각오를 한다. 나이도 50을 훌쩍 넘어섰기에 이때가 아마 인생환승이라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것이 아닌 아주 특수한 상황이 되고 보니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꺼리게 되고 누구를 만나는 것도 조심스러웠고 어머니와 대화도 많이 사라졌다.


과년한 딸자식은 아빠를 보며 후크선장이라고 말하며 아빠를 위로했지만 가족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그 후 조금씩 상처가 아물었고 외적으로는 민망했지만 의족을 착용하고 또 목발까지 동원해서 첫발을 내디뎠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바라보던 어느 건물의 일부분이 주변 빌라의 지붕이었다는 것도 알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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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장애인이 됐을 때 세상에 느낀 감정은 적개심, 분노, 참담, 좌절 등이었다. 하지만 오로지 나만이 느끼는 것이었고 조금씩 세상에 발을 내디뎌 보니 세상은 나를 받아줄 여유가 있었다. 넘어지거나 힘들어할 때 언제라도 손을 내밀어 주던 생면부지의 사람들, 배려해 주려는 모습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물론 내가 정상이었을 때도 저들처럼 그리 행동했겠지만 도움을 받은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심지어는 경이롭기까지 했다.


남들과 같은 일을 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사고 당시 죽었을지도 모르는 인생을 덤으로 산다는 생각을 자주 하다 보니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목표 의식과 그동안 몰랐던 세상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됐고, 지금은 국가 자격증 응시준비를 하며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인생환승이라는 시기를 절단 수술 당시라고 한다면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나의 마음일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무한긍정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장애인으로 등록하고 장애인 단체의 회원이 되고 많은 장애인을 만나며 느끼는 것은 신체 장애는 불편하고 남들보다 느리다는 것뿐이지만 이 세상에 마음의 장애인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항상 불만스럽고 욕심에 가득 차고 이기적인 생각만 가득 찬 마음의 장애인들이 오히려 세상을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그중에 한명이 혹시 내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비록 남과 같지는 않지만 난 지금의 내 인생에 만족한다. 알 수 없었던 많은 것을 알게 해준 것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또 나를 이상하거나 측은하게 바라보거나 동정하지 않고 같은 사람으로 하지만 때론 약간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봐주는 사람이 아직 많아서이기도 하다.


지금은 대학교에서 장애를 가진 학생의 학습 환경 처우 개선을 위한 연합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고 나는 이에 만족하며 오늘도 참고서와 볼펜을 꺼내 들고 공부를 시작한다.


그래서 나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준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이 어떤 일일지라도 돌려줄 수 있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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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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