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운 세계] "폭탄 드론, 네가 날렸지?" 갈라선 한집안의 막장극

[컬처]by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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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0년 전 남미 대륙의 한 정글.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를 가르는 강을 앞에 두고 초췌한 몰골의 사내가 부르짖습니다. 주저하던 병사들은 사내의 당당함에 홀린 듯 하나둘 강을 건너기 시작하죠. 그의 이름은 시몬 볼리바르. ‘해방자’로 불렸던 남미의 독립영웅입니다.


그의 삶을 그린 영화 ‘리버레이터’에서 볼리바르는 저렇게 외치죠.


국경 따위는 없다고, 우린 모두 하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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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먼 나라 독립영웅 얘기냐고요?

얼마 전 ‘드론 테러’ 뉴스를 보셨을 겁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폭발물을 실은 드론에 암살당할 뻔한 장면이 고스란히 TV로 중계됐죠. 반정부 세력이 벌인 일이겠거니 했는데, 열 받은 마두로가 한 말이 귀를 의심하게 했습니다.




으응? 국내 정적도 아니고, 테러단체도 아니고 이웃 나라 대통령이라고? 게다가 산토스는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인물인데….


당연히 콜롬비아 측은 반발했고 두 나라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죠. 무슨 원수를 졌길래 저러는 걸까요. 흥미진진한 옛이야기부터 할까 합니다. [임주리의 영화로운 세계]로 들어가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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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던 아메리카 대륙에 공포가 들이닥친 건 1492년이었습니다. 콜럼버스가 발 디딘 후 수많은 유럽인이 건너왔죠. 그중 남아메리카는 대부분 스페인ㆍ포르투갈 식민지였는데 본국에서 온 ‘높으신 분’들이 땅을 분할해 통치했습니다. 이들은 인디오로 불린 원주민과 아프리카에서 끌고 온 흑인을 노예로 부리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피지배층의 처참한 생활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요.


시간이 흐르며 이 땅의 상황은 한층 복잡해집니다. 원주민과 흑인, 초창기에 건너와 자리 잡은 백인(크리오요), 백인과 원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메스티소, 백인과 흑인 사이에서 난 물라토 등 아주 다양한 인종과 계층이 섞여 살게 됐거든요.


그렇게 300년이 흘렀습니다. 크리오요들 사이에서 슬슬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죠. 자기 땅에선 분명 상류층인데, 저 멀리 떨어진 유럽에선 무시하면서 세금만 거둬갔으니까요. 북아메리카에선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이 이미 세를 불리고 있었고요. 여기에 프랑스 혁명의 영향까지 받아 남미에서도 서서히 독립 정신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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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출신 세계적인 석학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저서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에서 이렇게 설명하죠.


그렇게 남미 각 지역에서 독립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는데 그중에서도 베네수엘라 귀족 볼리바르가 독보적이었습니다. 땅 욕심에 전쟁에 참여한 일부 인사들과는 달리, 그는 진심으로 민중의 해방을 위해 싸웠거든요. 고국뿐 아니라 남미 대륙 전체의 해방이 목표였고요.


“강력한 국가를 만들어야 다시는 당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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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둥! 10여 년의 전쟁 끝에 볼리바르는 1819년 드디어 ‘그란콜롬비아 공화국’을 세우고 대통령이 됩니다. 현재의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파나마 등을 포함한 나라였죠. 지금은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가 원래는 한 국가였던 겁니다.

그러나 그란콜롬비아의 운명은 비극적이었습니다.


"기원과 언어ㆍ관습ㆍ종교가 같아 마땅히 한 나라를 이룰 수 있음"(볼리바르)에도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너무나 달랐거든요. 결국 베네수엘라가 1830년 독립을 선언했고 이후 다른 곳들도 속속 떨어져 나옵니다. 남미에 미국과 같은 강력한 연방제 국가를 만들고 싶었던 볼리바르의 꿈은 무참히 깨졌고 그는 쓸쓸히 생을 마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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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짧은 기간이나마 한 몸이었던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앞서나간 곳은 베네수엘라였습니다. “1960~70년대만 해도 민주주의의 진열장이라 불리며 정치적 안정을”(책『역설과 반전의 대륙』에서) 누렸거든요. 펑펑 쏟아지는 석유 덕에 경제도 호황이었고요.


그러나 석유에만 기댔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80년대에 국제유가가 떨어지며 경제가 엉망이 된 거죠. 폭발한 시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왔고 정부는 총칼로 진압했습니다. 민심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 짜잔, 그 유명한 우고 차베스가 나타나 대통령이 됩니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단숨에 대중을 사로잡은 그는 빈민을 위한 정책으로 엄청난 지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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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시몬 볼리바르의 사상에 심취했던 그는 중남미 국가들의 가난과 정치적 불안이 미국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석유를 무기로 미국과 맞짱을 뜨며 이웃 나라들과 반미 좌파 노선을 형성하기 시작하죠. 볼리비아ㆍ에콰도르ㆍ니카라과ㆍ쿠바 등과 함께 ‘아메리카볼리바르동맹’(볼리바르를 진짜 존경했나 봐요)을 만들고 남미은행도 창설했습니다.

이렇게 이웃이 잘 나갈 때, 콜롬비아는 어땠을까요?



난장판이었습니다.


20세기 초반 큰 내전으로 피폐해졌고, 1960년대부턴 정부군과 좌파 반군 간 싸움이 계속됐죠. 그야말로 ‘폭력의 끊임없는 대물림’ 속에서 민생은 파탄 났고 살인율은 세계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석유와 같은 자원도 상대적으로 없었고요.


그러면서도 친미 우파가 계속 정권을 잡았던 이 나라는 차베스가 남미 국가들을 규합할 때 그쪽으론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베네수엘라는 이런 콜롬비아를 ‘미국 뒷마당’ ‘미국의 허수아비’라고 모욕했고, 콜롬비아는 ‘베네수엘라가 자국 내 반군을 지원한다’며 욕했죠. 결국 2010년 외교 관계를 모두 단절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몇 년 후 회복했습니다만.)


그러나 세상일이란 게 참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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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차베스가 숨진 이후 두 나라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차베스 뒤를 이은 마두로는 욕심 많고 능력 없는 지도자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설상가상으로 유가가 떨어지며 경제는 파탄 났죠.

반면 산토스가 이끈 콜롬비아 정부는 2016년, 50여 년의 내전을 끝내는 평화협정을 이뤄냅니다. 그 덕에 노벨평화상도 받았죠. 꾸준히 시장을 개방하고 외자를 유치한 덕에 경제도 성장, 최근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가입했습니다. 물론 평화협정이 아직 좀 불안한 데다, 제대로 된 안정을 누리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요.


이웃한 두 나라가 반목하며 다른 길을 걷는 동안, 베네수엘라 국민의 고통은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생계를 위해 콜롬비아로 건너간 이만 수십만명. 내전을 피해 콜롬비아인들이 베네수엘라로 갔던 것과 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콜롬비아에선 인도적 차원에서 이를 받아주고 있지만, 외교관계가 험악해진다면 어찌 될지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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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드론 테러’ 배후는 잡혔느냐고요?

마두로 정권은 현재 콜롬비아로 망명한 야권 인사들을 쫓고 있습니다. 그 사이 산토스는 퇴임하고 새로 선출된 이반 두케 대통령에게 정권을 넘겨줬고요.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영웅 시몬 볼리바르는 영화 속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한때 희망에 불을 지폈던 이 말이, 이제 베네수엘라 난민들에겐 생존을 위한 십계명이 되고 있습니다. 마두로 대통령은 이웃을 탓하기 전에 이런 현실부터 살펴야 하지 않을까요?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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