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안희정 1심 무죄 … 더 커지는 미스터리

[이슈]by 중앙일보

법원 "김지은씨 진술 신빙성 없다”

검찰 "간음죄 너무 협소하게 해석”


안 측, 2월 말 폭로 상황 궁금해해

김씨 측 "항소심서 사실오인 부각”


안희정은 무죄 아니라 ‘낫 길티’

부동의간음죄로 권력형 간음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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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오후 마포역 인근. 역세권에 자리한 A오피스텔 빌딩 입구는 오가는 입주민들로 북적거렸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이 곳은 안희정(53) 전 충남지사가 올해 2월 25일 새벽 비서 김지은(33·별정직 6급)씨를 ‘위력으로 간음했다는’ 마지막 범행 장소다. 천장 쪽을 쳐다보니 CCTV가 보였다. 그날 대전에 있던 김씨가 밤 11시께 KTX를 타고 상경해 카카오블랙택시를 호출해 오피스텔에 도착한 뒤 급하게 뛰어서 로비로 들어가는 모습이 찍힌 장치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천장 CCTV를 물끄러미 바라보니 거울처럼 내부 풍경이 비쳤다. 그날 오피스텔에 1시간 30여분 머물다 빠져나온 김씨가 귀걸이를 다시 착용하는 듯한 모습을 포착한 장치는 저거겠구나 생각했다. CCTV에 담긴 이런 장면들은 1심 재판부가 ‘오피스텔에 가기를 거절했고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는 김씨 주장을 배척하는 단서가 됐다.

실제로 판결문에는 재판부가 “토요일이고 수행비서에서 정무비서로 옮긴 지 2개월 남짓 된 때인 데다 물리적으로 먼 거리에 있었고 김씨 스스로 ‘마포 오피스텔이 피고인의 사적 공간임을 알고 있었고 다시 간음을 당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지만 갈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로 증언한 바 있다. 간음의 타깃이 될 줄 알면서도 갔다는 것은 피해자 주장과 모순된다”고 판단한 대목이 나온다.


6층에서 내려 XX호로 갔다. 철문 앞 벽면에 호수 표시만 덩그러니 적혀 있었다. 노크를 했으나 인기척은 없었다.


도대체 그날 오피스텔 비밀의 문 저편에선 어떤 일이 있었길래 며칠 뒤 김씨가 메가톤급 미투(#Me Too) 폭로에 나선 것일까. 남녀간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음에도 상실감과 복수심을 이기지 못해 돌발 행동을 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현직 도지사가 권세를 이용해 저지른 권력형 간음이 맞는 것일까. 지난달 14일 1심 무죄 판결이 내려졌지만 그후 찬반 격론은 더 거셌다. 이달 중 서울고법 형사8부가 진행할 항소심 재판을 앞두고 1심 무죄 판결의 의미와 향후 쟁점 등을 짚어봤다.


안 전 지사는 2007년 대선 패배 직후 친노 세력을 ‘폐족’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11년이 지나 정치적·사회적으로 ‘폐인’ 상태다. 그러나 법률적으로는 “합의에 의한 성관계로 무죄”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지금까지 결과는 구속영장 두번 기각(두번째는 여판사 결정)에, 1심 무죄 판결이다. 그는 2017년 7월 올해 2월까지 5번의 강제추행과 1번의 성폭력범죄처벌법 위반, 4번의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피감독자 간음)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징역 4년을 구형했지만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조병구 부장판사)는 10가지 공소 사실에 대해 “김씨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져 피해자라고 보기 어렵고 성폭력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 판결했다. 1심 판결문의 3분의 2 가까이가 진술의 신빙성 여부를 따진 것이고, 김씨의 진술 자체는 일관성이 있지만 증언의 불명확성·진술의 불일치 등을 봤을 때 피해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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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판결문에는 두 사람이 올해 2월 25일 마포 오피스텔에서 만났을 때 미투 운동과 관련해 나눈 대화도 적시돼 있다. 안 전 지사가 ‘요즘 미투에 대해 이야기가 많은데 내가 너한테 상처가 된 걸 알았다. 미안하다. 괜찮니?’라고 말했고 눈빛과 말에 압도당한 김씨가 ‘미투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답변하자 화해의 포옹처럼 ‘나를 안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수행비서·정무비서로 7개월 일하는 동안 원치 않는 성폭력을 당했다면서도 참아왔다. 하지만 김씨는 이 곳에서의 성관계 이후 이전 수행비서(#다른 정치인 측으로 이동) K씨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열흘쯤 뒤 생방송에 나가 초대형 미투를 폭로한다. 1심 선고 이후 안 전 지사 측은 김씨가 왜 그랬는지에 대해 가장 궁금해한다고 한다.


재판부 폭로 경위와 배경에 관심을 보였다. 판결문에는 김씨와 K씨 관련 대목이 나온다. “둘 간의 통화내역을 보면 피해자는 지난 2월 1일부터 3월 5일 사이에 사흘을 제외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K씨와 전화를 했다. 1개월여 동안 총 130회가 넘는다. 주로 K씨가 전화를 걸었고 업무시간 이후나 심야 시간에 통화가 이뤄졌다.”


K씨는 증인으로 출석해 “안 전 지사의 정치적 행보를 정리한 DB(데이터베이스) 시스템 개선 작업을 위해 서로 연락을 주고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DB작업은 KT의 전문인력을 섭외해 맡겼다”며 의구심을 보였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올해 1월부터 2월말 사이에 극심한 변화가 있었고 그 동기를 찾으려고 접근을 많이 했으나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았다”며 “항소심에서 드러날지 역시 미지수”라고 말했다. 당시 김씨와 K씨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들은 삭제됐다.


이에 대한 검찰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한 관계자는 “김씨가 서지현 검사를 보고 용기를 얻어 미투 폭로를 결심한 것으로 안다”며 “K씨는 정의감이 강하지 음모를 꾸밀 사람이 아니라는 게 검사들 전언”이라고 말했다. 전국성폭력상담소 협의회 배복주 대표는 “김씨 폭로에 음모가 있을 게 뭐가 있느냐”며 “대권주자 낙마를 겨냥한 것이라는 음모설 등은 김씨가 검찰 조사 단계부터 재판 단계까지 일관되게 주장한 내용과 진술의 신빙성 자체를 판사가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오는 또 다른 음모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안 전 지사 측 변호인단은 김씨가 틀어진 이유를 수행비서에서 정무비서로 발령난 것에 대한 실망감에서 찾았다. 김씨가 성폭행의 피해자라면 정무비서로 발령 나 안 전 지사로부터 물리적으로 멀어지는 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텐데 거꾸로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며 좌절감을 주변에 토로한 것은 모순이라는 주장을 폈다.


하지만 1심 판결이 언제 뒤집어질지 모른다. 누구보다 검찰이 절치부심하고 있다. 서울서부지검의 한 관계자는 “1심의 논리는 도지사와 수행비서가 위력 관계는 맞으나 그 위력을 행사해서 불이익을 주겠다고 해야 죄가 된다는 것 아니냐”며 “이는 위력에 의한 간음죄를 특별히 형법에 규정한 취지를 몰각하고 좁게 해석한 판결”이라고 비난했다. 이 관계자는 “버림받으니깐 복수하는 것 아니냐고 보는 태도와 4번이나 성관계를 한 게 어떻게 간음이냐는 지적이 있는데 수년동안 피해를 당한 사례도 있음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덧붙였다.


1심의 재판 공개가 반쪽만 이뤄져 부실 재판이라는 문제제기도 나왔다. 김씨 측 진술은 2차 피해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비공개로 묶어놓고 안 전 지사 쪽 증인과 증언 위주로 공개해 언론 보도가 한쪽으로 치우치게 나갔다는 것이다. 검찰이 재판 전체를 비공개하자고 주장했는데 묵살됐다고 한다.


김씨 측은 항소심에서 적극 반격할 계획이다. 배복주 대표는 “1심 판결의 문제는 김씨를 피해자답지 않다고 본 판사들의 인식이었다”며 “항소심에서 위력에 대한 법리 해석 문제, 사실관계 오인, 전문 심리 위원들의 견해에 대한 심리 미진 등에 대해 다툴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오인 부분과 관련해서는 (김)지은씨가 대표적인 것을 정리하고 있다고 한다. 배 대표는 “김씨가 안 전 지사를 좋은 감정으로 여기는 문자메시지를 제3자에게 보낸 것에 대해 재판부는 사적 연애 감정에 기반한 것으로 오인했다”며 “원치 않는 성관계 이후 순두부집을 물색한 사람도 김씨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 성범죄 중 가장 심각한 사안은 갑남(甲男)이 을녀(乙女)에 대해 권력형 성폭행을 가하는 것이라고 한다. 권력 관계를 이용해 성을 착취하는 것이라서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한때 여자의 노(No)는 예스(Yes)라고 여겨 ‘노 민스 예스’라는 말이 유행했다”며 “노라고 해도 ‘안돼요 돼요 돼요~’라고 받아들이는 식인데 이제 노는 노로 인식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부동의간음죄 등을 도입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1심 재판부는 안 전 지사 선고 공판에서 ‘피고인은 무죄’라고 주문을 선고했다. 이는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는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라고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325조에 따른 것이다. 무죄는 죄가 없음(‘innocent’)이다. 안 전 지사에겐 정말 죄가 없을까? 아니다.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입증이 안 됐을 뿐이다. 그러니 국민정서를 감안하면 이렇게 선고했어야 맞지 않을까. “안희정 피고인은 낫 길티”(‘Not guilty’·유죄 아님)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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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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