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캐프리오도 반한 화가, 캔버스 반란을 꾀하다

[컬처]by 중앙일보

콜롬비아 출신 무리조 첫 한국전

97년 영국 이주 후 RCA서 수학해

빌딩청소부에서 스타작가로 부상


이어 붙인 천조각에 긋고 덧칠하고

화폭에 시간·노동·역사 교차시켜

“탈국가시대, 거대한 에너지 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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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아트였을까, 시위였을까? 혹은 둘 다였을까?’.

2016년 4월 미국 뉴욕타임스는 콜롬비아 출신의 한 아티스트가 한 달 전 비행기에서 벌인 사건을 두고 이렇게 썼다. 영국에서 호주 시드니 비엔날레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에 오른 작가가 비행기 안에서 자신의 영국 여권을 찢어 변기에 버린 것이다.


상황은 간단하게 끝나지 않았다. 그는 시드니에 이틀간 구금된 뒤 추방당했고, 싱가포르와 스페인, 콜롬비아 등을 거쳐 영국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물의를 일으킨 주인공은 오스카 무리조(Oscar Murillo·32). 2012년 영국왕립예술학교(RCA) 대학 시절부터 세계 컬렉터들을 단번에 사로잡은 에피소드로 유명한 스타 작가다.


1986년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무리조는 97년 부모를 따라 함께 영국으로 이주했다. 설탕공장 노조원이었던 아버지는 1980년대부터 동료들이 살해당하는 현실을 보고 이민을 결정했던 것. 빌딩 청소 일을 하며 대학 시절을 보낸 그는 지난 6년 사이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로 우뚝 섰다.


2012년 뉴욕 인디펜던트 아트페어에 그가 작품을 출품했을 때의 일이다. 미국 플로리다의 호텔 사업가이자 컬렉터 돈 루벨은 그의 그림을 보고 “장 미셸 바스키아(1960~1988) 이후 처음 보는 강력한 에너지”라고 감탄하며 작품을 구매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작품은 걸리기도 전에 다 팔린 상태였다.


이듬해인 2013년 필립스 경매에서 그의 그림은 예상가의 10배에 달하는 40만 1000달러(약 4억 3000만원)에 낙찰돼 화제를 모았다. 낙찰자는 할리우드 배우인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였다. 현대 미술계에서 그의 등장은 그렇게 센세이셔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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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한국에 왔다.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자신의 전시 ‘Catalyst(촉매)’를 위해서다. 한국에서 여는 첫 개인전이다. 지난달 29일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그를 만났다.


Q : 2012년 이후 당신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스타 작가가 됐다는 것을 실감하나.




A : “큰 차이는 못 느낀다. 여전히 나는 창작과 전시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떠들썩한 것은 시장(market)의 일일 뿐이다. 내가 갑자기 유명해진 건 맞지만, 그렇다고 달라질 건 없다. 난 내 일을 할 뿐이다. 다행히도 내 타고난 성향이 이런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견뎌내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Q : 당신을 ‘21세기 바스키아’라고 하던데.




A : “나는 유명인이 아니라 아티스트다. 누구든 내 작품을 깊게 들여다봤다면, 작품의 맥락에서 내가 바스키아와 전혀 관계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쨌든 그건 나를 표면적으로 이해한 것에 불과하다.”




Q : 전시장에 들어와서 놀랐다. 거대한 검정 캔버스 천을 여기저기 걸고 늘어놓았는데.




A : “내겐 의미 있는 작품이다(웃음). 회화 조각인 동시에 설치 작품이고. 캔버스 천 위에 검은 물감을 바르고 또 바른 것인데, 여기엔 얼룩과 흙, 먼지도 묻어 있다. 2015년 콜롬비아 보고타 대학 전시 때부터 해온 작품인데, 나는 이게 일종의 나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여기엔 여러 사람의 노동(캔버스 천을 잇는 작업)과 시간도 담겨 있고, 나와 더불어 여기저기 옮겨 다니고 있다. 벽 그림(회화)과 함께 이 검정 캔버스 천(설치)이 함께 걸려야 비로소 내 전시가 완성되는 느낌이다.”




Q : 관람객에겐 다소 생소한 컨셉트다.




A : “‘그리기’가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한 내용을 이 두 종류의 작품에 표현했다. 검정 캔버스 천은 무한히 변형시킬 수 있고, 어디든 가지고 갈 수 있다. 2016년에 ‘무당’(그는 한국어로 정확하게 발음했다)과 협업한 적도 있는데, 이 작품엔 굿과 같은 의미도 있다. 이 작품들이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창’과 같은 느낌으로 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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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왜 사람들이 당신 작품을 좋아할까.




A : “이민자로 자란 나는 국경의 제한 없이 작업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어디선가 통하는 것이 또 다른 곳에선 통하지 않는 것을 보며 지역·세대 간 다양한 분열과 단절을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들이 어떤 제한선을 넘어서 정신적인 면에서 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 작업이 근본적으로 직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많은 분이 공감하는 게 아닐까.”


김은지 국제갤러리 디렉터는 “무리조는 작품을 통해 SNS, 여행 등으로 국경의 의미가 희미해지는 현시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며 “이를 다양한 매체와 문화적 배경을 혼합한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Catalyst’는 그의 유명한 연작 제목인 동시에 이번 전시 제목이다. 무리조는 “창작이란 나의 내적인 에너지를 물리적으로 발현하는 행위”라며 “그림 그리기는 내가 치열하게 ‘마크 메이킹’(흔적을 만드는 행위)하는 본능적인 작업인 동시에 내가 촉매가 돼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은 야심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Q : 언제부터 아티스트가 될 것을 꿈꿨나.




A : “아티스트는 내 선택의 영역에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 미대 졸업 후 교사로 일하는 등 나는 작가가 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웃음). 그런데 이렇게 됐다. 내 생각에, 아티스트는 일종의 ‘질환(sickness)’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창작은 내 질환을 다루는 행위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에게 물었다. 그때, 왜 비행기에서 여권을 찢어버렸느냐고. 그는 “여권을 찢은 것은 내가 서구 시민으로서 세상을 넘나드는 특권을 가진 상황에 도전하는 행위였다”며 “진정한 자유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2019년 1월 6일까지.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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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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