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닭 40만 마리 튀겼는데 지금이 가장 힘들어"

[비즈]by 중앙일보






정연섭(53) 씨는 20년째 닭을 튀기는 자영업자다. 1999년 서울 답십리에 BBQ 매장을 낸 후 두 번 옮겨 2012년 교대본점에 자리 잡았다. 122㎡ 넓이의 레스토랑형 매장인 교대본점의 올해(1~10월) 월평균 매출은 5000만~5500만원으로 BBQ 중에서도 중상위권에 속한다.

그동안 장사는 짭짤했지만, 현재 매출은 내리막이다. 정 씨는 "지난달 4000만~4500만원 선으로 떨어졌다. 지난 20년 동안 지금이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퇴근 후 치맥을 찾는 직장인이 줄어든 데다 최근 배달 전문점까지 늘어 경쟁은 치열해졌다. 또 BBQ는 최근 bhc와 잦은 소송 등으로 브랜드 이미지가 타격을 입어 주문 건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정 씨 같은 20년 치킨집은 업계에서도 보기 드물다. 지난해 한국은행이 발표한 음식업 생존 기간은 3.1년(2006~2013년 기준)이다. 정 씨는 평균치보다 6배 이상의 생존 능력을 보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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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 씨의 상황은 20년 베테랑 자영업자도 버티기 힘들다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제 중앙일보가 1000개 이상의 가맹점을 보유한 교촌·BBQ·bhc·굽네등 치킨 프랜차이즈 4개 브랜드의 10년 이상 매장을 조사한 결과 전체 5157개(11월 말 기준) 매장 중 1296개로 나타났다. 10년 이상 생존율이 25%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BBQ(1995년 창업)와 교촌(1999년 창업)은 각각 48%, 25%로 비교적 나은 편이었다. 반면 bhc(2004년 창업)와 굽네(2005년 창업)는 각각 10%, 8%에 불과했다. 그나마 치킨 프랜차이즈 중 1~4위권(2017년 매출 기준) 브랜드가 이렇다. 신생 브랜드의 경우 더 짧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외식산연구원에 따르면 외식업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약 10만6003개(2016년 기준)이며, 그 중 치킨이 2만4453개로 23%를 차지한다. 또 치킨 업종의 3년 이내 폐업률은 38%로 다른 업종에 비하면 높은 수치다.


최근 BBQ 본사는 치킨 값을 2000원 올려 '황금올리브 치킨'은 1만8000원이 됐다. 정 씨가 첫 가게를 낼 때(9500원)의 두배다. 하지만 정작 정 씨는 아직 매장 치킨 가격을 올리기 못했다. 지난 6월부터 배달료 2000원을 따로 받고 있어 다섯달 만에 또 가격을 올리면 단골이 끊길까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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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씨를 괴롭히는 결정타는 임대료 분쟁이다. 정 씨는 "지난해 빌딩을 사들인 새 건물주가 한 달 전 갑자기 '계약 기간이 끝났으니 나가라'고 해 꼼짝없이 가게를 비워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 씨는 6년 전 입주하면서 전 건물주에게 권리금 6500만원까지 주고 들어왔다. 빈 점포에 입주해 시설·영업 권리금과는 무관한 '바닥 권리금'이었다. 지금 가게를 열 때 권리금·보증금(7000만원)·시설비(1억8000만원) 등에 3억2000만원이 들었고, 이 중 2억원은 대출로 충당했다. 정 씨는 "매달 200만원씩 갚아 나갔지만, 아직 1억원이 더 남아 있다"고 말했다.

임차인이 '을'의 입장일 수밖에 없는 임대차 계약은 특히 자영업자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특히 정 씨의 사례처럼 5년 이상 되거나 건물주가 바뀐 경우가 그렇다. 지난 9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권이 10년으로 연장됐지만, 기본적으로 소급 적용이 되지 않아 정 씨는 해당되지 않는다.


구본기 생활경제연구소장은 "개정 임대차보호법의 구제 범위에 들지 않는 4~5년차 임대차의 경우 대항력 없이 나가야만 경우가 속출할 것"이라며 "임차인이 할 수 있는 방법은 계약 만료 6개월 전에 임대인에게 재계약 여부를 물어본 후 (임대인이)'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다른 이에 매장을 넘기고 권리금을 회수하는 것밖엔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영업 시장이 워낙 얼어붙어 있어 권리금을 회수하면서 매장을 넘길 퇴로가 막혀 있다는 게 문제다.


정 씨는 첫 가게를 낸 후 매일 50~60마리의 닭을 튀겼다. "지난 20년 세월 동안 튀긴 닭이 40만 마리 가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정도면 '치킨 마스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는 버틸 재간이 없다"고 토로했다.


정 씨는 작은 중소기업에서 일하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실직했다. 이후 일년 동안 일자리를 찾지 못해 가진 돈을 끌어모아 치킨점을 차렸다. 개업 후 5년 동안은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지금은 연중 이틀(추석·설 당일) 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591조원(2분기 말 기준)에 이른다. 570만 자영업자 1인당 1억원씩 빚을 안고 있는 셈이다. 또 소득대비 부채 규모는 189%(2017년 기준)로 나타났다. 정 씨 부부는 연중 이틀(추석·설) 쉬고 일하면서 매출의 약 10%를 소득으로 가져간다. "간신히 두 사람 인건비를 가져가는" 정도다. 정 씨는 "1만6000원짜리 치킨 한 마리에 생닭 5000~5500원, 기름값 1500원, 파우더(튀김가루) 1000원, 그리고 치킨무·음료수·박스 등 비용으로 1000원 이상 들어가 원가가 1만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임대료와 배달비와 인건비 등 판매관리비를 빼면 한 마리당 수익은 2000원꼴이다. 정 씨는 "고비 때마다 더 악착같이 살았지만, 요즘은 모든 영업 환경이 힘들다. 당장 다음 달에 최저임금이 다시 오르면 정말 견디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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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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