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의 아내 둔 노년, 그가 단행한 마지막 선택은?

[컬처]by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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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리뷰해 볼 영화는 '볼케이노: 삶의 전환점에 선 남자' 입니다. 영화의 제목만 봐선 얼핏 재난 영화가 아닐까 생각하시겠지만 이 영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재난 영화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재난이 아니고 개인의 삶에 온 재난 상황 앞에서 한 남자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린 영화죠.


37년 전 화산폭발로 고향에서 삶의 터전을 옮긴 하네스(테오도르 율리우손 분)는 학교 수위로 근무하다 은퇴합니다. 조촐한 은퇴식에서 이제 앞으로 뭐하실 거냐는 물음에 '한 해 한 해 조용히 늙어가다 죽겠다'고 했던 말과 달리 자신의 차 안에서 자살을 기도하는데요.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입만 열었다 하면 불만에 툴툴대는 그는 아내에게도 자식들에게도 다정하지 못한 남편, 아버지입니다. 어느 날 낡은 배를 타고 고기 잡으러 나갔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곤 집으로 돌아옵니다. 홀딱 젖은 몸으로 옷을 갈아입기 위해 집으로 들어서던 그는 자식들이 하는 말에 충격을 받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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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친네 있을 때는 웬만하면 안 오고 싶어”


“어릴 땐 좋았는데 지금은 소름 끼쳐”


“실패한 인생”


“엄마가 불쌍해 죽겠어”


집으로 들어선 그는 아내가 옷이 젖은 이유에 대해 묻자 괜히 화를 냅니다. 혼자 속앓이를 하던 그는 그날 밤 아내에게 옷이 젖었던 이유와 함께 자신이 그동안 화를 냈던 것에 대해 사과를 합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조금씩 달라지는데요. 아내가 좋아하는 선물을 사고 아내의 요리에 칭찬을 해주죠.


하지만 이런 시간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저녁 식사 도중 아내가 돌연 쓰러졌기 때문인데요. 아내는 침묵의 살인자라 불리는 뇌졸중이었습니다. 이때부터 그의 일상은 아내에서 시작해 아내에서 끝납니다. 하루아침에 말을 하지도 걷지도 못하는 아내를 요양원에 보내자는 자식들의 말을 뒤로하고 집으로 데리고 오는데요. 아내의 보살핌을 받던 그가 아내를 보살펴야 하는 입장이 되니 하나부터 열까지 여간 서툰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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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동시에 영화에서는 어부로 살던 그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낡고 쓸모없어진 배를 쓸고 닦고 조이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제 다시 바다로 나가기 어려운 상태지만 엔진을 교체하고 색을 다시 칠하는 등의 정성을 보이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 저는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현실도피를 위한 행동일 거란 생각입니다. 은퇴자로서 당장 내일 할 일이 없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 자식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연히 알게 되었고, 거기에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줬던 아내가 쓰러져 누워있죠. 배를 닦고 조이는 일종의 단순한 노동에 집중하면서 다른 생각들은 지워버리려 했던 게 아니었을까요.


두 번째로는 하네스가 배를 아내와 동일시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낡고 쓸모없어진 배를 정성 들여 고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병석에 누워있는 아내에게 책을 읽어주고, 말동무가 되어주고, 용변처리를 해주는 장면과 묘하게 닮아있죠. 자식들에게도 자신에게도 다정하고 헌신적이었던 아내에게 늦었지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을 해줬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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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제를 맞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잠에서 깨면 하염없이 울기만 하는 아내를 보며 그는 자신이 우겨서 집으로 데리고 온 게 혹시나 아내에게 더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윽고 그는 자기 삶에 닥친 새로운 재난 앞에 아내와 자신밖에 모를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되는데요. 바로 자신의 손으로 아내를 고통 속에서 자유롭게 놓아주죠.


아내는 생전 그녀가 돌아오고 싶어하던 고향에 묻혔습니다. 하네스는 아내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한 뒤 홀로 바다에 나가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데요. 그의 두 번째 선택은 옳은 선택이었을까요? 그른 선택이었을까요? 답을 해줄 아내는 이제 곁에 없습니다.





현예슬 hyeon.yes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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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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