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용의 여동생 결혼식 참석…벤투, 침묵문화 깼다

[트렌드]by 중앙일보

이청용, 동생 결혼식차 일시귀국

벤투 감독, UAE 아시안컵 도중 허락

조직위해 개인 희생하는 고정관념 타파


김영권 "가족보다 소중한건 없다"

외국에서 선수 경조사 배려 일반적

펩, 미숙아 아들 둔 실바에 휴가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회사의 총책임자로 약 한달간 해외출장을 갔다. 그런데 동행한 후배 직원이 친동생 결혼식 참석을 위해 잠시 한국에 다녀오겠다고 한다. 당신이라면 허락해주겠는가. 반대로 당신이 후배 직원이라면 결혼식에 다녀오겠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한국사회에서 파격적인 일이 한국축구대표팀 내에서 일어났다. 한국은 지난 16일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2019 아시안컵 조별리그 3차전에서 중국을 2-0으로 꺾고 조1위(3승)로 16강에 진출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날 밤 미드필더 이청용(31·보훔)은 파울루 벤투(50·포르투갈) 감독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감독님, 19일에 서울에서 하나 뿐인 여동생 결혼식이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혹시 잠시 다녀올 수 있을까요?"


"그래. 축구협회와 논의해 보겠다. 만약 허락된다면, 걱정 말고 결혼식을 잘 치르고 돌아와라."


한국은 조별리그를 1위로 통과하면서 22일 바레인과 16강까지 닷새를 남겨뒀다. 벤투 감독은 고심 끝에 경기력에 큰 지장을 주지 않을거라 판단했다. 평소 성실함의 대명사인 이청용에 대한 믿음도 작용했다. 대한축구협회 내부적으로도 찬반의견이 엇갈렸지만, 논의 끝에 감독과 선수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결정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청용은 18일 대표팀 훈련을 소화한 뒤 그날밤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결혼식에 참석한 뒤 한국시간 19일 오후 11시경 다시 두바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청용은 19일 훈련 한차례만 불참한 뒤 20일 두바이에 도착해 대표팀에 재합류한다.


이청용 측근은 "청용이는 여동생을 끔찍하게 아낀다. 작은 식당에서 가족과 직계 친척들만 모여 작은 결혼식을 올렸다"며 "벤투 감독의 허락을 받은 뒤 결혼식 시간을 최대한 앞당겨 바꿨다. 청용이는 중요한 시기에 잠시 자리를 비워 감독, 선수들, 축구팬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했다"고 전했다. 이청용은 만약 중국과 비기거나 패해 조2위에 그쳤다면, 이 이야기를 아예 꺼내지 않으려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그동안 조직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게 미덕으로 여겨져왔다. 특히 스포츠에서는 '선수보다 팀이 중요하다'는걸 강요해왔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아들을 출산한 김병지가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휴가를 신청한 적이 있지만, 원정 대회 중 선수가 팀을 비운 사례는 거의 없다. 축구대표팀 왼쪽수비수 김진수(전북)은 2017년 5월31일 결혼식 당일 점심까지 파주에서 훈련을 했고, 6시간 뒤 결혼식을 올린 일도 있었다.


한 원로축구인은 이번 이청용의 결정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고 한다. 일부 네티즌은 '나쁜일도 아니고 좋은일인데, 중요한 대회기간 중 꼭 가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벤투 감독과 이청용은 한국축구에 깊숙이 자리잡은 고정관념을 깼다. 벤투 감독은 훈련장에서도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좋은 사람이었다.


유럽이나 미국 스포츠에서는 결혼, 출산 등 경조사에 선수를 배려하는게 일반적이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맨체스터시티의 펩 과르디올라(스페인) 감독은 시즌 중에도 미드필더 다비드 실바(스페인)에게 수시로 휴가를 줬다. 실바가 2017년 말 미숙아로 태어난 아들 마테오를 돌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잉글랜드 리버풀의 위르겐 클롭(독일) 감독은 2016년 2월 아우크스부르크와 유로파리그 16강을 앞두고 데얀 로브렌(크로아티아)을 명단에서 제외했다. 로브렌의 딸이 수술을 받아야하는 상황이었다. 클롭 감독은 로브렌에게 "크로아티아로 날아가 딸의 곁을 지켜줘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수비 겸 부주장 김영권(30·광저우 헝다)은 19일 훈련에 앞서 팀 동료 이청용의 결정을 지지했다. 김영권은 "대표팀 생활 중 이런 상황은 처음 겪어봤다. 대회기간이고 한국과 먼거리라서 감독님이 허락해준게 놀랍다"면서도 "감독님의 결정이 옳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가족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김영권은 '대회 기간 중 자녀가 출산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란 질문에 "어떤 대회든 어떤 기간이든 아이를 보러 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권은 아내 박세진씨 사이에서 딸 리아와 아들 리현이를 두고 있다.


많은 네티즌들도 "생애 한번 뿐인 여동생 결혼식을 축하해주고 돌아와 좋은 경기를 부탁한다", "본인의 행복보다 중요한건 없다"고 응원해줬다. 그만큼 시대도, 한국사회도 변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청용은 이번 아시안컵에서 에이스급 활약을 펼쳤다. 필리핀과 1차전에서 교체투입돼 '게임 체인저' 역할을 수행했다. 주전 2선 공격수로 활약하면서 수비에 헌신적으로 가담했다.

앞서 언급한 실바와 로브렌은 팀에 복귀한 뒤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다. 이번에는 이청용이 벤투 감독의 믿음에 보답할 차례다.


두바이=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이런 분야는 어때요?

ESTaid footer image

Copyright © ESTaid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