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탄 유튜버가 물었다…장애인은 꼭 불쌍해야 되나요?

[라이프]by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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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굴러라 구르님' 채널을 운영하는 김지우 양.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김 양은 예비 고3이 되면서 어디서 수능을 보게 될지가 가장 큰 고민이다. [사진 유튜브]

“왜 장애인은 모두 불쌍해야 하는 걸까?”

뇌병변 장애가 있는 고등학생 김지우(18) 양이 2017년 유튜브에 ‘굴러라 구르님’(이하 구르님) 채널을 개설한 이유다. 22일 서울 대치동 구글캠퍼스에서 열린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대화’에 참석한 구르님은 “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TV나 영화에서 장애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간혹 나온다 해도 눈물 쏙 빼는 감동 스토리나 후원 방송에서만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본인을 포함한 주변 장애인들은 불쌍하지 않음에도 이러한 현실이 ‘장애인은 아무것도 못 한다’는 선입견을 공고하게 한단 얘기다.


구르님의 영상은 대개 이러한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여러분은 장애인과 마주친 적이 있냐”고 묻는 첫 영상부터 “장애 극복은 무슨 말일까” “휠체어는 꾸미지 말란 법 있나” 등 비장애인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질문들로 가득하다. 휠체어를 타고 굴러다니는 구르님이 아니면 볼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세상인 셈이다. 올해 고 3이 된 수험생이기에 영상은 30편 남짓이지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 때문에 구독자 수는 3만명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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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후 만난 구르님은 명랑 쾌활 그 자체였다. “중학생 때 UCC 콘테스트에 나가면서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원래 컴퓨터 만지는 걸 좋아해서 게임도 많이 하고 만화도 많이 봤는데 영상 제작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단편영화도 만들었고, 지금은 영화 동아리 부장을 맡고 있어요. 제가 만드는 영상이 고도의 편집이 필요한 건 아니어서 하룻밤에 몰아서 끝내버리는 편이예요.”

그는 장애인이란 이유로 “너는 이거 못하지”란 말을 더 많이 듣는 게 속상하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듣다 보면 무의식중에 ‘아, 나는 그거 못하지’가 되어버리거든요. ‘너도 할 수 있어’ ‘못할 게 뭐 있어’라고 계속 말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최근 EBS ‘배워서 남줄랩’에 출연해 화제가 된 그는 “‘장애인 치고 예쁘네’란 말이 제일 듣기 싫다”고 했다. “장애인은 꾸밈의 주체가 될 수 없고 매력적인 대상이 될 수 없단 전제가 깔린 발언이잖아요. 그래서 더 꾸밀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장애인한테 이런 것 좀 하지 마’ 영상을 보면 장애인을 향한 불편한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만들었는데 대본도 준비 안 했어요. 친구들이 먼저 제 입장에서 생각해 보더니 아이디어를 막 내던데요.”


‘어쩌다 다친 거야’ ‘수술하면 나을 수 있대’ ‘내가 해 줄게’ 같은 말을 듣다 보면 저도 모르게 뜨끔하게 된다. “다들 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니까요. 제 친구가 어디 여행을 다녀왔는데 경사로가 있고 길도 넓고 차도 별로 없더라, 다음에 같이 가자고 얘기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저 같은 친구가 없었더라면 절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겠죠.”


그래서 “길거리에 더 많은 장애인이 보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어야 비장애인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로 각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그가 장애인 이동권에 큰 관심을 갖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일본어 스피치 대회에서 입상해 9박10일간 일본 연수를 다녀왔는데 버스 타기가 너무 수월하더라고요. 한국에선 한 번도 혼자 버스를 타본 적이 없거든요. 투어 너스가 전 일정을 동행하고, 배리어프리 호텔 방으로 배정해주는 걸 보면서 장애인 인권에 대한 온도차를 분명히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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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점점 더 많은 장애인이 유튜브 방송을 시작하는 걸 보면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저도 처음엔 악플이 가장 걱정됐어요. 그런데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분들이 훨씬 더 많더라고요. 제가 손에 힘이 부족하다 보니 자막을 넣을 엄두가 안 났는데 도움을 청하자마자 영상 전편에 자막이 생겨난 걸 보면서 혼자선 못해도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걷는 모습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게 되고. 제 채널이 장애인끼리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커뮤니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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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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