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 넘어 복지사 자격증 딴 아내를 응원하는 이유

[라이프]by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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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세를 넘긴 아내가 어느 날 내 눈치를 조심히 살피더니 슬그머니 말을 건넨다. “나이가 좀 들어서도 뭔가를 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 “그럼~ 그런데 뭔 얘기가 하고 싶어서 갑자기?” “나도 사회복지사 자격증 딸까 봐.” 군소리 없이 찬성했다. 왜 아내가 복지사 자격증을 따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더니 정말 열심히, 마치 고시 보는 학생처럼 열심히 공부하고는 턱 하니 복지사 자격증과 소방 2급 자격을 취득했다. 최근에는 다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다고 열심히 공부 중이다. 그 이후에는 치매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그 이유를 또 알기에 적극적으로 응원한다.


왜냐고? 함께하는 봉사활동을 통해 봉사가 삶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서로 이해했기 때문이며 인생후반부에 제일 중요한 가치가 내가 사회에, 이웃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존감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우리 부부의 제주 프로젝트(앞으로 10년 정도는 제주에서 살며 여러 일을 해볼 계획이다)를 위해서는 현지에서 부부가 함께 봉사하는 활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데 마다할 이웃이 없고, 내가 먼저 봉사해야 상대편도 마음을 열고 이웃으로 맞아주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혹자는 나이 60 넘어 무슨 복지사 자격증이며 무슨 요양보호사 활동을 할 거냐고 의아해한다. 내 자존감 높이고 이웃에게 사랑받고, 거기다가 일정의 소득도 올릴 수 있다면 이거야말로 주저할 이유가 없으며 일거양득 아닐까?










인생 120세를 바라보는 인류가 당면한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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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에게 왜 봉사를 중요시하냐고 묻는다. 왜 나이든(?) 아내가 복지사 활동하는 걸 찬성하냐고 묻는다. 모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으로 답을 대신한다. 봉사란 이타를 통한 이기의 실현이라고. 그렇다. 나는 봉사를 이기를 실현하기 위해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쇼펜하우어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인간은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자기의 이익을 포기하지 않는 존재라는 것.


혹자는 봉사를 오해하고 있다. 봉사란 자기희생이며 손해 보는 일이고 힘든 일이라고 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상대적 보상 없는 일방적 베풂이란 없다. 그것이 비단 경제적, 명예적 보상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봉사의 가장 큰 보상은 인생후반부, 점점 나이 들어가면서 시나브로 식어가는 삶의 열정을 되살리는 역할을 하며 내가 필요한 곳이 많다는, 내가 정말 필요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 준다는 점이다.


80 인생을 외치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인생 100세를 갈구하고 있다. 거기에 더 나아가 현대의학과 생활환경의 개선은 사람의 생을 120세까지 기대하게 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한 사회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사망하는 연령대인 최빈사망연령이 92세를 돌파했다고 한다. 이러한 추세는 세계적 현상으로 이런 추세가 지속한다면 인류의 수명이 120세를 돌파할 거라는 예측이 막연한 것만은 아니다.


과거의 개념대로 60세 이전에 일을 끝내고 피부양의 위치로 20여년을 보내던 인류는 사라진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제3의 섹터, 서드 에이지(The third age) 등의 용어가 등장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60세 이전 은퇴 후 또다시 40년 이상을 일해야 하는 삶이 전개된다는 얘기다. 평생 일만 하다가 삶을 마감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취미와 장기를 살린 보람찬 일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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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인류는 경제적 이유만으로 평생 일만 하다가 삶을 마감해야 하는 불쌍한 존재로 전락했는가? 아니다. 이를 일찍이 깨달은 선각들이 주목하는 분야가 있다. 정부도, 기업도 아닌 민간단체 위주로 이루어지는 자신의 취미와 경험, 장기를 살린 사회공헌활동과 생계유지 기능을 융합한 인생후반부의 삶이다.


그 중심에는 봉사가 있다. 타인과 비교해 상대적 경쟁우위를 지켜야 하고 남과 비교해 평가받고 그를 통해 능력을 인정받아야 하는 스트레스를 받던 삶을 인생 후반부에도 지속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삶일까? 그런 삶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욕심을 내려놓고 자신을 스스로 낮추며 내 본연의 삶을 찾는 일이다.


과거 자신이 했던 기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성취 가능성이 점점 낮아진다. 과거를 고집하면 결국 불행감만 남는다는 얘기인데 이를 극복하고 내 삶에 대해 만족할 수 있는 일, 그게 봉사이다. 봉사하고 보면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갖고 살았나, 내 현실이 얼마나 만족스러운 현실인지를 깨닫게 된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는 과거의 지위와 명예와 부를 내려놓고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통해 인생 전반부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인생후반부의 삶을 영위하는 분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취미 삼던 연주 활동을 통해 봉사활동을 하다가 지자체의 전속(?) 유료순회연주자로 활동하는 분, 시 낭송을 취미로 하던 이가 시각장애우들을 위한 시 낭송 봉사활동과 전문 낭송가로 지평을 넓힌 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사례가 있다.


내 경우 취미로 걷고, 여행하고, 그림 그리던 일이 이제 봉사활동을 넘어 미래의 내 생활이 돼 가고 있다. 모두 취미와 장기가 봉사활동으로 승화하고 그것이 인생후반부의 업이 되는 사례다. 이런 사례를 보며, 또는 인류의 미래상을 예측한 의학자나 사회철학자들의 의견을 고려한다면 아내가 복지사 자격증에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에 이어, 치매 교육을 받겠다는 얘기에 찬동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제 60은 서드 에이지의 시작이다. 그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가장 중요한 역할이 봉사라는 미래학자들의 얘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익종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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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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