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의 전설' 칼 라거펠트, 그가 떠났다

[컬처]by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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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계의 교황’ ‘위대한 칼’ ‘황제 칼’로 불리던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19일(파리 현지 시간) 별세했다. 85세.

현존하는 ‘패션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꼽히는 칼 라거펠트는 지금까지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샤넬’과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펜디(의상 파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했다. 마침 파리와 밀라노 패션위크가 막 시작된 때라 두 개의 쇼를 불과 며칠 앞두고 벌어진 그의 죽음은 전 세계 패션 업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지난달 22일 파리에서 열린 샤넬 오트 쿠튀르 쇼가 열렸을 때 맨 마지막 디자이너 무대인사 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그의 건강 이상설이 불거졌지만, 오는 목요일 있을 이탈리아 밀라노 패션위크 중 펜디 2019 FW 쇼를 준비해왔던 것으로 알려져 더욱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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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독일 북부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라거펠트는 학교에서 패션 디자인 공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술과 독서를 좋아했던 그는 52년 프랑스로 이주, 54년 국제양모사무국에서 주최한 콘테스트에서 코트 부문 1등을 수상하며 파리 패션계에 입문했다. 55년부터 피에르 발망 밑에서 견습 디자이너로 3년 간 일한 그는 60년대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스스로의 실력을 발전시켰다. 패션계가 라거펠트의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한 건 64년 ‘끌로에’ 수석디자이너로 부임해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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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년부터 이어진 펜디와의 인연도 깊다. 모피 의상으로 유명했지만 새로운 혁신이 필요했던 펜디는 가문의 딸인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가 가방을 포함한 액세서리와 남성복을 맡고, 라거펠트가 여성복을 지휘하면서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현재의 펜디를 상징하는 더블 F로고 또한 펜디 가문의 딸들과 라거펠트가 함께 창조한 것이다. 실비아는 2011년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라거펠트를 ‘아저씨’라고 부르며 “그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생각해 내는 사람이다. 그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언제나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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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 마침내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입성하게 된 그는 이후 지금까지 37년간 샤넬의 수장으로서 전 세계 패션계를 장악했다. 그의 합류로 샤넬 또한 브랜드 역사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마담 샤넬 사망 후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샤넬은 올드한 클래식 브랜드로만 여겨졌다. 라거펠트는 이런 샤넬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마담 샤넬의 정신과 샤넬 스타일의 핵심 디자인 요소들에는 충실하면서도 새로운 소재와 대담한 재단 등 자신이 생각한 시대적 혁신 요소들을 조합했다. 91년 격식 있는 상류층 패션의 대명사였던 샤넬 슈트를 ‘진(jean)’ 룩으로 선보이며 트위트 재킷과 스트리트 패션을 접목했을 때 업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에도 샤넬 슈트에 바이커 룩을 접목시킨 가죽 슈트를 만들어내는 등 라거펠트의 혁신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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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라인(무릎 아래로 오는 길이)’이라 불릴 만큼 정숙하고 우아한 여성의 대명사였던 샤넬 슈트는 남성 속옷 또는 반바지와 매치되는가 하면, 모델들이 재킷을 오픈한 채 가슴을 드러내고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때문에 전통적인 샤넬 스타일의 추종자들은 “라거펠트가 점점 샤넬 스타일에 불손함을 더한다”며 그를 공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디자인을 허를 찌르는 새로움, 유머와 현대성을 불어넣은 혁신이라며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많았다. 맨 다리가 훤히 보이는 비닐 바지, 내용물이 다 보이는 비닐 백 등 ‘저걸 실제로 사용할 수 있을까’ 할 만큼 그는 매 시즌 패션계의 이슈를 몰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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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팔방미인 칼’로도 불렸다. 패션 디자인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 예가 사진가로서의 활약이다. 87년 우연한 계기로 샤넬의 화보 촬영을 하게 된 그는 이후 샤넬 광고 사진을 직접 찍게 된다. 옷을 디자인하고, 그 옷을 모델에게 어떻게 입힐지 스타일링하고, 광고 사진까지 직접 찍는 천재였다. 최근 몇 년간은 광고 영상도 직접 감독했다. 또 오페라 무대 의상을 만들기도 했고, 패션과 현대미술을 융합한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다. 또 『황제의 새옷』이라는 어린이 책 일러스트를 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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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개인적으로도 늘 이슈를 몰고 다녔다. 2000년 그는 젊은 패션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이 디자인한 디올 옴므 수트를 입기 위해 무려 42kg이나 다이어트를 해 사람들을 놀래켰다. 그의 아름다운 옷에 대한 욕망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일화다. 하지만 예부터 지금까지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검은 선글라스와 포니테일의 흰 머리, 검은 수트, 검은 손가락장갑을 낀 모습이었다.

라거펠트는 휴가도 잘 안가는 일 중독자로도 유명했다. 또 엄청난 독서광으로도 유명한데, 92년 그의 집을 방문했던 한 업계 관계자는 그가 4개국에 7개의 집을 소유하고 있으며, 각각의 집은 박물관급 앤티크 가구와 아트 작품들로 장식됐고, 25만여권의 책이 소장돼 있다고 전했다.


버마산 애완묘 ‘슈페트(shupette)’로도 화제가 됐다. 루이비통 캐리어와 은식기를 사용하고 전속 하녀 두 명과 운전기사, 주치의를 거느린 이 고양이를 두고 라거펠트는 “나의 집에서 나는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라며 “슈페트는 늘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존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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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거펠트는 우리와도 인연이 깊다. 2015년 동대문 DDP에서 샤넬 2015/16 크루즈 패션쇼를 열었는데 이때 한국의 전통 한복에서 영감을 얻은 옷들을 선보여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색동저고리와 조각보 등에서 영감을 얻은 옷들이 대거 선보였고 이때 그가 선보인 옷 중에는 한글이 쓰인 재킷도 있었다. 지난해 김정숙 여사가 파리를 방문했을 때 입었던 바로 그 옷이다. 그는 DDP 패션쇼 당시 “한글은 정말 아름다운 글자”라고 칭송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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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대림미술관에서 열렸던 '칼 라거펠트 사진전'. [사진 대림미술관]

2011년 10월부터 12년 3월까지는 대림미술관에서 ‘칼 라거펠트 사진전’을 열어 엄청난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 사진들 중에는 남성복 컬렉션의 모델이자 칼의 또 다른 자아(애인)이기도 했던 밥티스트 지아비코니의 사진들도 여럿 있어 관객들의 관심을 모았다. 유명 패션 칼럼니스트인 수지 멘키스는 칼 라거펠트의 사진들에 대해 “박학다식한 패션 디자이너가 종이, 펜, 잉크 그리고 카메라를 가지고 만드는 창작물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고 소감을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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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천재 패션 디자이너는 ‘언어의 마술사’이기도 했다. 2014년 국내에서 출판된 『칼 라거펠트, 금기의 어록』에는 이 천재의 삶과 철학을 고스란히 알 수 있는 어록들이 빼곡히 수록돼 있다. 혁신과 유머를 무기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 천재 디자이너가 수많은 책과 예술을 벗하며, 고독하지만 단단하게 자기만의 세계를 지킬 수 있었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그의 어록들로 기사를 마무리한다.

“옷이 당신한테 어울리는지 고민하기 전에 당신이 그 옷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먼저 고민하라.”


“나는 살아 있는 상표다. 내 이름은 라벨펠트(LABELFELD). 라거펠트가 아니다.”


“샤넬을 숭배해 마지않는다. 그러나 나는 샤넬이 아니다.”


“샤넬의 이상은 품위 있는 여성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품위’가 지루함으로 여겨지게 된 때가 온 것이다. 나는 그 지루함과 싸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은 오늘날에 어울리는 재미있는 샤넬의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과거는 그저 이상일 뿐이다. 과거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순간, 당신은 죽게 된다.”


“내가 해야 할 일-지난 일을 되돌아보지 않는 것. 내가 하는 일-이미 한 일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 내가 한 일-무엇을 했는가 잊는 것. 이미 끝난 일은 끝이다.”


“패션이란 음악 같은 것이다. 수많은 음표가 있는…. 이 음표로 우리들 각자가 자기만의 선율을 만들어야 한다.”


“다이어트란 당신이 잃어야 이기는 유일한 게임이다.”


“책은 중독성 강한 마약과 같다. 과다복용의 위험성이 전혀 없는 마약.”


“독서는 내 인생에서 가장 럭셔리한 것.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인생의 럭셔리.”


“단지 알고 싶어서 읽는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다. 책을 살 때마다 그 책을 읽을 시간 또한 사는 거라고.”


“산더미처럼 책을 쌓아놓고, 그 속에서 책과 함께 하는 기쁨은 나를 언제나 편안하게 한다.”


“내가 책을 사들이는 건 불치병과도 같다. 영원히 낫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의 방에 책이 없다면, 그 공간은 죽은 것과 다름 없다.”


“내가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 다시는 되풀이 될 수 없는 유일한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 한 번 가버리면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나는 휴가가 싫다. 그건 항상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만 죽어라 하는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나? 나는 밀라노와 파리, 뉴욕을 종횡무진 한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 주도로 하루 20시간씩 일한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삶을 살라. 그것이야말로 궁극적인 럭셔리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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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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