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실리콘밸리,판교] ‘엔씨 대학’까지 세운 김택진…판교의 힘은 사람에서 나온다

[비즈]by 중앙일보

[한국의 실리콘밸리,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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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판교 밸리의 게임업체인 엔씨소프트의 연구개발(R&D)센터. 이곳엔 판교 유일의 대학이 있다. 캠퍼스는 센터 내 C동 3층 전체. 대학 이름은 ‘엔씨 유니버시티(NC University)’다. 엔씨 유니버시티는 엔씨소프트의 사내 대학이다. 하지만 다른 기업이 운영하는 사내 대학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우선 한 해 개설되는 강좌 수가 200여 개에 달한다. 작은 규모의 대학에 버금간다.


강좌 분야도 다양하다. IT(정보기술) 기업답게 게임기획과 개발, 기술 동향 관련 강좌는 물론 리더십과 문화예술 관련 과정도 있다. 수강신청 경쟁은 일반 대학 못지 않다. 직원들의 관심이 많은 스토리텔링, 콘텐트 제작 등 인기 수업은 5분이면 신청이 마감된다. 개설 강좌는 직원용 인트라넷에 수시로 뜬다. 강사는 대학의 교학과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유니버시티 팀’이 섭외한다. 분야별로 최고 전문가를 우선 모신다. 한 예로 엔씨 유니버시티가 운영하는 ‘엔씨 컬처 클래스’에는 나영석 PD, 비올라 연주자인 리처드 용재 오닐, 역도 선수 장미란, 가수 강원래, 혜민 스님 등이 강사로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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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대학이지만, 강의의 수준과 깊이도 상당하다. 짧게는 1~2시간짜리 특강부터 외부 자격증 취득의 준비를 돕는 강좌는 30시간 이상 진행되기도 한다. 모든 수업은 일과 중에 진행된다. 덕분에 근무 중 강좌를 들으러 가는 일이 자연스럽다. 수강 횟수도 제한이 없고, 모두 무료로 진행된다.

직원의 가족과 친구 등과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엔씨 유니버시티는 김택진(사진ㆍ52) 엔씨소프트 대표 주도로 2013년 세워졌다. 김 대표는 사내 인력의 역량을 키워주는 일이 결국 회사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사옥 1개 층 전체를 할애해 전용 공간을 마련한 이유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엔씨 유니버시티에 대한 직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며 “다양한 지식을 접하면 게임 개발의 폭과 깊이도 더 확대될 것이란 게 김 대표의 생각”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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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소프트처럼 직원들의 실력을 키우기 위한 판교 밸리 기업의 발걸음이 더 빨라지고 있다. IT기업 경쟁력의 핵심은 바로 ‘사람’과 ‘그 사람의 실력’이라는 판단에서다. 미국 실리콘밸리를 떠받치는 힘도 결국 인재라는 분석이 많다. 실제 지난해 실리콘밸리 리더십그룹 등이 펴낸 ‘실리콘밸리 경쟁력 보고서(SVCIP)’에 따르면 미국 주요 대도시권(Metro areas) 중 실리콘밸리 일대는 비즈니스 비용이 4위~6위권에 들 정도로 높았지만, 실리콘밸리 지역 인재들의 노동 생산성은 다른 지역을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입장에선 돈이 많이 들어도, 실리콘밸리에서 사업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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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과컴퓨터(이하 한컴)는 올해 초부터 미국서 열리는 소비자가전쇼(CES)나 스페인에서 열리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같은 해외 IT 관련 전시회에 파견하는 출장 단의 규모를 기존의 3~4배 정도로 키웠다. ‘해외 현지에서 빠르게 변하는 기술의 흐름을 직접 느껴야 한다’는 이 회사 김상철(사진ㆍ66) 회장의 지론에 따른 것이다. 한컴판 ‘신사유람단’이다. 한컴은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9’에 48명의 출장단을 보냈다. 이 중 25명은 임원이 아닌 실무급 직원이었다. 지난달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2019’에는 이보다 많은 63명을 파견했다.


직원만 보내는 게 아니다. 매년 우수한 근무성적을 낸 직원과 가족을 동반해 단체로 해외여행을 보내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올해는 직원과 그 가족 등 96명이 미국 하와이로 떠난다. 김 회장은 올 초 “회사가 미래로 가기 위한 주체는 직원이 되어야 하고, 시스템 경영을 위해서도 직원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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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들도 직원 실력 키우기에 힘을 쏟는다. 부동산 플랫폼 ‘다방’을 운영하는 스테이션3은 홀수달마다 열리는 ‘다락방’을 통해 직원 역량을 강화한다. 다락방에서는 부동산 업계 전문가들을 초빙, 다양한 주제의 부동산 강연을 진행한다. 스테이션3 임직원들의 평균 연령이 30대 초반으로 비교적 부동산 거래 경험이 적어, 부동산업에 대한 이해가 적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강연에선 전문적인 부동산 용어는 물론 국내 부동산 시장의 흐름과 앞으로 부동산 시장의 변화 방향 등에 대해 설명해 준다.

종합숙박ㆍ액티비티 플랫폼인 ‘여기어때’의 운영사인 위드이노베이션은 직원들에게 읽고 싶은 책을 무제한 살 수 있도록 비용을 지원한다. ‘독서는 창의력의 기초’란 믿음에서다. 구매한 책은 직원 개인 소유다.



직원 스스로 학습 모임을 만들어 활발히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포스코ICT가 그렇다. 포스코ICT에는 현재 100여 개의 학습 동아리가 활동 중이다. 회사도 학습 열기에 맞춰 교육 참가와 도서 구매에 필요한 비용과 사무실을 지원한다. 학습 동아리의 연구과제가 회사의 정식 프로젝트로 추진돼 사업화되기도 한다. 한 예로 학습 동아리 ‘인공지능 연구회’가 내놓은 '인공지능 기반 안면 인식 솔루션(Face-Ro)'은 지난해부터 포스코ICT 판교사무소의 출입인증시스템으로 시범 적용되는 동시에 사업화가 진행 중이다. 이 솔루션 개발에 참여한 백지현 차장은 “인공지능 기술에 관심이 많았는데, 마침 주변에 관심 분야가 비슷한 동료들이 있어 학습 동아리를 만들게 됐다”며 “하루가 다르게 새 기술이 쏟아져 나오는 만큼, 필요한 기술을 스스로 공부해 나 자신의 경쟁력을 키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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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호 서울대 교수(개방형 혁신학회 부회장)는 “실리콘밸리의 비즈니스 비용이 다른 지역보다 압도적으로 높아도 지속해서 이 지역 기업이 성장하는 것은 결국 지속해서 인재가 유입되는 동시에, 기존 인재들의 실력이 고도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우리 기업들도 우수한 인재를 뽑는 데에만 주력할 게 아니라 이들이 지속적으로 실력을 키워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판교=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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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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