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주변엔 왜 '풍'자 들어가는 병이 많을까?

[라이프]by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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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서 길목은 ‘큰길에서 좁은 곳으로 들어가는 어귀’나 ‘길의 중요한 통로가 되는 어귀’를 뜻하는 말이다. 사람이 모이는 시장에서 연결되는 좁은 곳은 병목현상이 일어난다. 널찍한 곳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가 좁은 곳으로 몰리면 어깨끼리 부딪치고, 행렬이 느려지고, 불편한 일이 생기기도 쉽다.


좁고 불편한 곳이지만, 도리어 그런 점을 역이용해 이곳에 상점을 차리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집중력이 높아질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목을 잘 잡아야 한다는 말은 중요한 위치를 잡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길목에 상점 차리면 돈 벌어

군사작전에서 '목진지'라는 곳이 있다. 너른 평원에서 적과 대치하다 갑자기 후퇴한다. 적이 신나게 뒤쫓아 오다 협곡을 만난다. 이곳 좁은 통로에 숨어 있던 아군은 적이 안쪽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길목을 차단해 버리고 좁은 곳에서 편하게 전투를 치른다. 중요한 곳으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지날 수밖에 없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지점을 군대에서 '목진지'라고 부른다.

우리 몸에서 ‘목’이라는 곳은 그래서 붙은 이름인가 보다. 아주 큰 기운이 있는 머리와 몸통을 잇는 중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생명과 직결되는 이곳의 숨길은 목숨이라 부른다. 전쟁할 때 길목을 잃으면 패하는 것처럼, 목에서 기운이 제대로 오고 가지 못하면 건강이 나빠지고 목숨까지 위태로울 수 있다.


좁고, 행렬이 느리고, 불편한 곳이기 때문에 이곳 관리는 세밀하게 해야 한다. 넓은 곳에서 좁은 곳으로는 압력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항상 바람이 분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면 기분도 좋고 편안한데, 어지럽게 불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옷을 여미고 숙이고 걷다 보면 행렬이 더 꼬이게 된다. 목 주변의 혈액순환이 안 좋아 막히게 되면 중풍이나 와사풍 같은 풍의 질환이 일어나는 것은 이런 원리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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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 가는 바람(혈액순환)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서 목의 경동맥을 살펴보게 된다. 경동맥이 막히면 중풍의 위험성도 비례해 높아진다. 바깥엔 바람도 불어대고, 안쪽 좁은 곳에서 불편하게 다니다 보면 여기저기 트러블이 생기는데, 몸에서는 그런 현상이 열로 드러난다.


목에 있는 구조물을 보면 음식이 오가는 통로를 '인'이라 부르고, 숨이 오가는 통로를 '후'라고 하며, 목 뒤쪽에 척추와 근육이 받치고 있는 부분을 '경항'이라고 부른다. 이 부분들은 순환이 중요하고, 열이 생기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동의보감에 인후병은 상당 부분이 열에 의한 것(咽喉之病皆屬火 : 인후병은 다 화에 속한다)이라고 한 것이 그 때문이다.


어린 시절 열 조절이 잘 안 되면 목에 열이 차서 이 부분이 붓는다. 바깥에서 나쁜 기운이 들어오면 몸을 지키는 1차 방어선인 '림프샘(임파선)'이라고 부르는 부분이 열이 나고 붓는다. 그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곳이 편도인데, 어린이들은 때로 편도가 굉장히 많이 부어 침을 삼키기 힘들 때조차 있다. 이럴 때는 폐 기운을 도와주고 열을 편하게 식혀주면 몸을 회복하는 데 근본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 약초 중에서 맥문동이 폐 기운을 돕고 열을 촉촉하게 식혀 주는 데 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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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부을 때 침 치료를 하면 상당히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다. 상부의 열을 떨어뜨리는 침법으로 목의 통증을 금방 없앨 수 있으니 가끔 옆에서 보조하는 직원들이 놀라곤 한다. 일상에서 알아두면 좋을 혈 자리는 엄지손가락 아래쪽에 있는 어제(魚際)라는 곳이다. 그곳은 폐의 열을 떨어뜨린다. 손바닥 안쪽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손가락의 뼈가 만나는 부위에 소부(少府)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몸 전체의 열을 조절한다.


도라지는 인후에 열이 생기는 모든 증상이 쓸 수 있다. 목감기, 가래, 목이 켕길 때, 목이 부을 때, 목을 많이 썼을 때…. 도라지가 들어있는 '필용방감길탕'이라는 처방은 인후부위에 이처럼 열이 몰려 고생하고, 림프가 잘 붓고, 목 속에 가래가 켕기며, 잔기침을 오래 할 때 쓸 수 있는 처방이다.







화병은 갑상샘 질환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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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후부위의 병이 열과 화에 속한 것이 많아 열을 올리는 행위는 인후부를 힘들게 만든다. 스트레스받고, 달고 매운 음식을 먹고, 피로가 쌓이면 열이 난다. 피곤함이 지나치면 소리를 지른 것도, 노래를 부른 것도 아닌 데 목이 쉬기도 한다. 외부의 나쁜 기운에 의해 림프샘이 부어 목에 붓기가 생기듯이, 내부의 스트레스로 인해 목이 붓기도 한다.


한국에는 이런 심인성 질환을 통틀어 화병이라 부르는데, 지나친 스트레스는 호르몬에 이상을 부른다. 갑상샘 질환이 왜 생기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논란이 있긴 하지만, 한의학적인 입장에서 갑상샘 기능 이상증의 상태는 일부가 화병의 범주에 놓여야 하는 것 같다. 실제 임상에서 화병을 치료하는 처방을 썼을 때 상당히 효과가 좋다는 것도 볼 수 있다. 갑상샘결절 뿐만 아니라 갑상샘기능항진증, 갑상샘저하증 같은 때 갑상샘 자체가 부어 목이 튀어나오는 것도 그런 면이 아닐까.


목이 머리와 몸 사이에도 있지만, 손목과 발목에도 목이라는 글자가 붙어 있다. 팔뚝과 다리의 신경, 힘줄, 근육들이 이곳 좁은 길을 통과해서 손과 발로 이어진다. 이곳 역시 그만큼 중요해서 그런 게 아닐까. 해부도를 보다 보면 손목과 발목에는 흰 띠를 따로 둘러놓았는데, 중요한 곳을 튼튼하게 받쳐주기 위해서인 것 같다.


목을 관리 못 하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 반대로 목을 잘 관리하면 머리와 몸의 소통이 원활해 지고 몸 전체가 편안해질 수 있다. 이번 편은 동의보감의 인후(咽喉)편으로 앞부분을 살펴보았고, 다음 편에는 경항(頸項)편으로 목 주변의 뼈와 근육을 관리하는 것을 알아보겠다.


박용환 하랑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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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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