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블리도 '팔이 피플'···인스타 장터는 왜 진흙탕 됐나

[비즈]by 중앙일보

저비용 고효율 인스타에 몰려

팔이는 사생활 노출 마케팅

팬은 화려한 팔이 삶에 열광

진짜 아는 사람으로 믿다가

제품 하자에 극도의 배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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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즙에서 검출된 곰팡이로 위기를 맞은 온라인 쇼핑몰 임블리와 같은 형태의 사업자를 부르는 용어는 다양하다. 이중 다소 비하적으로 들리는 ‘팔이’가 널리 쓰인다. 요즘 이 동네가 소란스럽다. 임블리는 지난 3일 가시화된 호박즙 곰팡이 사태에 대해 사과했지만, 다른 제품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호박즙 사태와 전혀 무관한 강용석 변호사의 폭로가 더해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이다. 임블리가, 팔이가 도대체 무엇인데 이 난리일까. 왜 문제 제품 환불로 매듭지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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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랑드보떼 운영자 릴랑[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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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블리를 운영하는 부건에프엔씨의 임블리[인스타그램]

우선 팔이 업계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소셜미디어 장터 규모는 파악이 되지 않을 정도로 광범위하다. 현재 논란의 중심인 임블리는 인쇼 업계의 대표적 성공신화이자, 팔이 꿈나무의 롤 모델이다. 임블리는 배우 출신 임지현(32) 부건에프엔씨 상무의 애칭이다. 2013년 온라인 쇼핑몰 사업을 시작해 단기간에 연매출 1700억원의 패션·뷰티·생활 브랜드를 키웠다. 당시 남자친구(현재 남편인 박준성 부건에프엔씨 대표)의 쇼핑몰에서 피팅모델로 활약하다 1인 브랜드로 성장한 사례다. 임블리의 성공에는 임씨의 귀여운 외모와 친근함이 절대적이었다. 인스타 마케팅의 덕을 톡톡히 봤다. 임블리의 사랑과 결혼, 임신·출산·성공·도전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중계됐다.

특정한 계기로 팬덤을 얻고, 축적된 팬심을 비즈니스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인스타 장터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큰 자본 없어도 안목과 호감 가는 캐릭터만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각종 ‘인스타 보부상’이 양산된다.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만명이 확보되면 사업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연간 10조원이 넘는 모바일 쇼핑 거래의 한 조각만 차지하면 되기 때문이다. 네이버 쇼핑박스에 쇼핑몰 정보를 올리는 비용이 치솟은 것도 사업자가 인스타그램으로 몰린 배경 중 하나다. 인스타는 임블리와 같은 대박이 아닌 ‘중박’만 터뜨려도 괜찮은 저비용, 고효율 비즈니스라는 인식이 강하다.


다만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만큼, 피도 눈물도 없는 레드오션이다. 물건을 조달할 수 있는 곳은 한정적(대부분 동대문)이라 품질이나 제품 차별화는 쉽지 않다. ‘괜찮은 가격의 트렌디한 제품’을 지속적 공급해야 현상 유지할 수 있다. 매출을 올리기 위해 유명 브랜드 카피 제품, 묻지마 건강식품 판매가 난무한다. 이런 식으로 돈만 되면 무엇이든 가져다 팔다 탈이 나는 경우가 많다. 또 주문이 몰리면 이에 상응하는 품질 관리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데도 이럴 여력이 있는 개인 판매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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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큼 솔깃한 마케팅은 없다. 팔이의 시작은 어김없이 ‘보통사람’이다.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주변 사람들의 소비나 생활에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 즉 인플루언서의 마음을 얻어 좋은 소문을 내고 그 주변을 장악하는 방식이다. 인플루언서 마케팅 전문가로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쓴 테드 라이트에 따르면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인플루언서들은 ^정보와 경험을 나누고 싶어하고 ^열정을 갖는 대상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모든 것을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고 ^내적 동기에 이끌려 입소문을 내는 집단이다.

활동 중인 팔이 중 자연 발생적 인플루언서를 가려내기는 쉽지 않다. 속내야 어떻든 대부분 우연히 인스타에 올린 사진에 등장하는 제품 정보를 알려달라는 댓글이 쇄도해 공구로 이어졌고, 공구와 매입을 반복하다 판매자가 됐다는 보편적 ‘팔이의 서사’를 보유하고 있다.


일반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다 보니, 사생활 팔이는 주요 마케팅 수단이 된다. 성장 과정, 가정 환경, 우정, 실패와 성공, 연애와 이별, 육아, 결혼생활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생활은 낱낱이 공개된다. 공개된 정보가 사실인지는 무관하게 소비자는 ‘잘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아이가 아파서 먹였다는 건강식품, 판매자가 피부 트러블에 직접 쓴 화장품, 매일 해 먹는 요리 등이 올라오는 피드를 보다 팬이 되는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판매자를 믿는 추종자가 된다. 다른 곳에서 훨씬 싸게 살 수 있는 제품이라도 꼭 좋아하는 판매자에게서 산다거나 하자에 항의하는 사람들과 싸우며 대리전을 치르기도 한다. 이들을 향해 ‘시녀’라는 비하적 명칭이 따라붙는 배경이다.




‘팬(소비자)이 원해서’라는 단서가 달리지만, 이것도 결국은 장사다. 더군다나 진짜 팬의 요구인지 일일이 확인하긴 어렵다. 소셜미디어에서 ‘댓글’과 ‘좋아요’는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검색 몇 번으로 한국인 팔로워ㆍ좋아요 100개는 약 13만원, 외국인 팔로워ㆍ좋아요 100개는 1만4000원에 파는 소셜미디어 PR사를 만날 수 있다. 사업을 시작하는 인스타그램 팔이가 초기에 반응을 사 계정을 띄우는 일은 흔하다. 팔로워 수가 곧 힘, 신용장으로 통해 벌어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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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커뮤니티에는 이런 제목의 글을 자주 볼 수 있다. 하루에도 수십명의 팔이가 등장하면서 베스트 10은 자주 변화한다. 팔이는 조금씩 다른 이유로 사랑받지만 대부분 같은 이유로 미움 받는다. 청담언니로 불리는 치유(손루미ㆍ개인계정 팔로워 16만)는 유쾌한 입담과 부유해 보이는 이미지, 1억원어치의 명품을 한꺼번에 사들여 언박싱(새로 산 물건을 열어보는 행위)하는 이벤트로 영향력 키워왔다. 현재는 자체 제작으로 홍보한 제품이 유명 명품 브랜드나 국내 디자이너의 카피인 게 드러나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동안 간간이 밝혀 온 이력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도 공격을 받는 이유다. 여기에 마약 투약 혐의를 받은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씨와의 친분에 대한 의혹도 문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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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부터 판매 활동을 하는 마드모아젤(홍담기ㆍ개인 계정 팔로워 9만명)은 영수증 발급 회피 의혹을 시작으로 ‘수소수가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노화방지에 탁월하다’는 잘못된 정보를 마케팅에 이용해 안티를 만들었다. 릴랑 드 보떼(여선주ㆍ팔로워 12만명)는 각종 건강제품 판매 이후 미흡한 대처, 판매 화장품 부작용, 과도한 마진 등의 논란을 빚었다. 이들은 문제가 발생하면 일부에 대해서 사과문을 올리거나 사과 방송을 한다. 이런 뒤에도 특정 부분에 대해서는 고소, 인스타 계정 댓글 창 닫기 등을 반복하면서 사업은 이어가고 있다.








임블리를 겨냥한 대표적 까계정 ‘임블리쏘리’를 운영하는 A씨는 평범한 30대 전업주부다. 그가 잠도 안자면서 임블리 저격에 나선 이유는 전적으로 배신감 때문이다.


계정 소개까지 ‘임블리빠에서 변질된 VVIP’다. A씨의 계정엔 임블리 원피스를 구매해 입고 올린 사진이 아직 남아있다. A씨는 “처음에는 손해에 대한 피드백이 명명백백하게 오지 않아 답답해서 댓글 달다 이렇게 됐다”고 설명했다. 불리한 댓글을 삭제해버리는 판매자 태도에 화가 난 경우다. A씨는 그동안 판매된 제품 하자에 대한 제보에서부터 직원에 대한 갑질 사례까지 다양한 폭로를 모아 연일 몇 건씩 임블리 저격글을 터뜨리고 있다. A씨는 “피해를 입으신 분들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해주고 장사도 양심적으로 했으면 좋겠다”며 “소비자 기만은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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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까계정’은 인스타그램 장터의 취약함이 만들어 낸 문화다. 소비자는 이곳에 집결해 목소리를 높인다. 팔이의 과거 발언, 댓글 하나하나 모두 무기다. 막대한 시간을 들여 캡처(이들은 피드를 ‘찐다’고 표현한다)하고 경험담을 모아 압박의 증거로 사용한다.

까들은 자신들은 단순한 안티가 아닌 ‘공익을 위한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임블리 폭로 계정 ‘시발블리임’을 운영하는 B씨(30대 회사원)는 “10년 전 임씨의 따따따(여성 쇼핑몰) 모델 시절부터 팬이었고 임블리가 생기면서 초창기 가입 멤버로 활동했다”고 말했다. B씨는 “집에 임블리 옷이 50벌 넘게 있고 이 순간 입고 있는 티셔츠조차 임블리 제품”이라며 “유명해지면 어느 순간 가격이 올라가고 불량에 대해 문의를 해도 대응도 제대로 안 해 크게 실망했다”고 설명했다. B씨는 특히 “직원에 대한 부당한 처우가 많았다는 제보에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판매자 치유를 겨냥한 ‘치유 뉴스2’를 운영하는 C씨(30대 자영업자)는 “내가 까계정을 하고 있는 것은 가장 친한 친구한테도 말하지 못할 정도로 쪽팔린다”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멈출 수 없다는 이유는 역시 거짓말에 대한 분노다. C씨는 “크고 작은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 치가 떨린다”며 “인스타 장사꾼들이 옷 팔다가 명란젓을 팔지 않나, 줏대 없이 돈 되는 건 다하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이미 한 차례 계정이 정지돼 새로 계정을 만들어 활동하는 C씨는 다시 정지될 것에 대비해 ‘치유 뉴스3’을 만들어 둔 상태다. 취재에 응한 까들은 입을 모아 ‘마치 가족이나 친구한테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고 말했다.


조창환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과 교수는 “팔로워들은 인플루언서가 돈을 받는 것을 알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적 신뢰를 기반으로 구매한다”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어떤 때보다 분노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병관 광운대 심리학과 교수도 “인스타 셀러는 얼굴을 내세워 마케팅을 하기 때문에 소비자는 제품의 하자를 인플루언서의 도덕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임블리 호박즙 사태는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한 유통이 성장하면서 나타난 부작용이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서울시가 지난 1일 발표한 전자상거래 이용자 4000명을 대상으로 한 ‘소셜미디어 쇼핑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용자의 28%가 피해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불ㆍ교환을 거부하거나 판매자가 연락 두절이 되는 경우가 잦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발표한 지난해 소비자 관련 법 위반 행위 감시한 결과에서도 거래량이 급증한 소셜미디어 마켓 판매자에 대한 불만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접수된 제보 1713건 중 소셜미디어 마켓 분야 제보가 879건에 달했다. 역시 정당한 사유 없이 교환이나 환불을 거부하는 경우가 가장 빈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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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갱이 악덕 팔이를 만든다”는 말이 사라지려면 소비자가 현명해지는 것도 중요하다. 인스타그램 판매자는 어디까지나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자다. 유명 인플루언서라고 무턱대고 믿는 것은 위험하다. 조창환 교수는 “인플루언서 마케팅에 대한 자각이 늘어나면 소비자가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늘 것”이라며 “맹목적 소비에서 배우고 깨닫는 현명한 소비가 정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영선ㆍ최연수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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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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