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크면 이혼해야지" 했는데 이젠 남편이 애틋하다, 왜?

[라이프]by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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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색과 나에게 어울리는 색이 다르다는 것을 알 때마다 실망한다. 좋아하는 색이 정작 나한테는 어울리지 않는다니. 눈에 쏙 들어와 산 옷은 옷장에 모셔두고, 속는 셈 치고 사라고 해 산 옷은 허구한 날 입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부부도 마찬가지이지 싶다. 내 취향의 사람과 나에게 맞는 사람은 다르다. 내가 왜 저 사람과 결혼했을까 싶으면서도 ‘저 사람이 아니었으면 나랑 살아내지 못했을 거야’라고 확신한다. 콩깍지가 씌었든 타협을 했든 인연 없는 결혼은 없다.









‘천생연분’이란 말에 설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대상은 나와 살아주지 않았다. 나이를 먹으며 새삼 느낀다. 천생연분이란 나라는 인간을 포기하지 않고 ‘나와 같이 살아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대학생만 되면 이혼해야지'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 인간’하고 왜 사는지 절망했던 적도 있다. 둘째가 대학 2학년이 된 지금 나는 여전히 ‘이 인간’과 살고 있다.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애틋함까지 느낀다.

이래서 인생은 재미있다. 꼴도 보기 싫던 인간이 지금은 옆에 있어 줘서 고맙기까지 하니 말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르는 거라더니, 내가 내 속을 모르겠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나의 불같은 성질을 잘 소화해 내는 사람.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고 웃으며 말하는 사람. 아직 살아갈 날은 많지만 25년을 살아 본 현재의 결론은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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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도 천생연분을 뜻하는 말이 있다. ‘빨간 실로 맺어진 인연(赤い糸で結ばれた縁(아카이 이토데 무스바레타 엔))’. ‘결혼할 운명의 인연’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알콩달콩한 말이거늘 나는 이 말이 섬찟했다. 속박받는 느낌이랄까. ‘빨간 실’이라니, 결혼이 무슨 혈맹관계도 아니고…. 아직도 난 빨간 실로 묶이기는 싫다.


나는 종종 남편을 ‘남이 낳은 아들’이라고 부른다. 남이 낳아 다 키워버린 사람을 재교육하는 것은 어렵다. 내가 나를 고치기도 힘든데 어련할까. 그래서 깨끗이 포기하고 역으로 이용하고 있다. 남편 월급이 쥐꼬리만 해서 경제활동을 시작했다. ‘사모님’ 소리는 들어볼 수 없겠구나 싶어 ‘내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가사 일을 할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서 내가 낳은 아들들은 가사 일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


남편에 대한 불만이 커지던 어느 날 나를 후려치는 깨달음이 있었다. ‘성공한 남편을 원한다면 싫다는 사람 추궁하지 말고 네가 출세해’, ‘돈 많이 벌어오는 남편이 좋으면 네가 버세요’, ‘자녀 교육? 외국이라고 핑계 대지 말고 엄마인 네가 하세요’. 나는 불평불만으로 가득 찬 나날에서 해방됐다. 나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에게 나의 잣대를 갖다 대고 “이러면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자, 내가 못 하는 일을 상대방에게 요구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부부라 해도 꼭 손을 잡고 걸을 필요는 없다. 조금 떨어져 가끔 서로의 얼굴을 보며 걸어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우리 부부는 서로 간섭하고 속박하는 것을 싫어한다. 기본적으로 자기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한다. 남편은 자기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나에게 ‘아내의 정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나 또한 남편에게 그가 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서로 자립한 상태에서 같이 하기도 하고 따로 행동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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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중반이었을까. 결혼해서 처음으로 ‘나도 돈 잘 버는 남편이 있었으면’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에게 미안하다. 그때는 두 아이의 교육비가 겹치고 내 수입이 줄어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나는 벌이가 좋은 남편 덕분에 자유롭게 사는 듯한 사람을 보며 ‘팔자 좋네’라고 질투했다. 그러나 그런 미숙한 감정은 몇 개월 가지 않았다. 더 길어졌으면 아마 내가 힘들었을 것이다.









‘황혼이혼’이란 말이 나온 지 오래다. 햇수를 거듭하며 여자들의 이혼 준비도 치밀해졌다. 어떤 경우든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행동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혼서류를 내미는 것은 반칙이라고 본다. 그 전에 싸우자. 20년 정도 파란만장한 세월을 살아내다 보면 원수 같던 사람이 ‘하늘이 맺어준 인연’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도저히 아니다 싶으면 상대방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내 길을 가자. 어떤 길을 선택했든 내 삶은 이어진다.

‘빨간 실로 맺어진 인연’. 우리는 여러 가지 인연의 실로 연결돼 있지 싶다. 색깔도 다양할 것이다. 어느 실을 끌어당길지 선택은 어디까지나 나의 몫이다. 선택했다면 책임을 지자. 내가 선택한 사람, 내가 책임져야지 누가 책임지겠나. 천생연분은 하늘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키워가는 것이지 싶다. 물도 주고 비료도 주자. 언젠가는 꽃이 필 터이니. 비바람을 견뎌내고 뿌리가 튼튼해진 꽃은 강하다.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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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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