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노잼으로 추락한 '개그콘서트'의 위기가 소재 제한 때문?

[컬처]by 중앙일보

19일 1000회 특집방송 개그콘서트

시청률 저조로 축하 못받는 분위기

스타개그맨 부재,실험성 부족이 원인

달라진 시대, 새 웃음코드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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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간판 코미디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가 19일로 방송 1000회를 맞는다.


1999년 9월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무려 20년간 서민들을 웃게 해주며 역대 최장수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해왔다. 모든 이들이 우울해질 무렵인 매주 일요일 밤, 안방극장을 폭소로 몰아넣는 '월요병 예방주사'란 찬사도 얻었다.


'갈갈이 삼형제' '마빡이' '대화가 필요해' '분장실의 강선생님' '달인' '봉숭아 학당' 등 수많은 히트 코너와 스타 개그맨을 배출한 산실이기도 했다.


지상파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이 말라붙은 상황이기에 개그콘서트의 '장수(長壽)'의 의미는 더욱 돋보인다.


하지만 개그콘서트 1000회를 축하하는 분위기는 달아오르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개그콘서트가 시청자들에게 외면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30%에 가까웠던 시청률은 현재 5~6%대로 주저앉았다. 회복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13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개그콘서트 1000회 특집 기자간담회 분위기 또한 무겁게 가라앉았다.


간담회에는 원종재·박형근 PD와 전유성·김미화·김대희·유민상·신봉선·강유미 등 지금껏 개그콘서트의 영광을 함께 한 개그맨들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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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간담회에 앞서 제작진은 개그콘서트 20년 연대표와 최다출연 개그맨, 수상내역 등 1000회의 기록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기자들의 질문 또한 여기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제작진과 개그맨들에게 쏟아진 질문은 축하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질문의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핵심은 한가지였다. '그렇게 화려했던 개그콘서트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위기를 벗어날 대안은 있나'였다. 비슷한 질문이 거듭되면서 간담회 참석자들의 표정도 굳어만 갔다.


김미화는 "1000회 특집 기자간담회여서 인기코너 등과 관련한 질문이 많이 나올 줄 알았는데…"라며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기자들의 질문에 원종재 PD는 "꾸준히 노력하고 있지만, 가시적 성과가 보이지 않아 연출진도 답답하고 개그맨들도 힘들어한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원론적 답변을 반복할 뿐이었다.


프로그램 침체에 대한 원인과 대안에 대해 언급은 제작진이 아닌, 기자들의 몫이었다.


'현재의 제작방식에서 벗어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 '과거에 비해 소재의 제약이 늘어난 상황에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유튜브 시대에 공개코미디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뒤 시즌2로 돌아올 계획은 없나' 등의 질문에 어느 누구도 뾰족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1000회를 맞았지만 축하만 받을 순 없는 심각한 상황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옛날에 비해 (개그로 삼을 만한) 재료가 부족하고, 좋은 요리사들(연출자·개그맨)도 많이 나갔다"(개그맨 정명훈)


"예전에 비해 제약이 많아졌다. 과거 인기 코너들을 지금 무대에 그대로 올릴 수 없는 시대가 됐다"(개그맨 신봉선)


일부 개그맨들은 한층 향상된 인권의식과 성인지 감수성 때문에 여성·외모 비하, 가학, 인종차별 등 과거에 애용해왔던 개그 소재를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데 대한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원PD 또한 "못생긴 걸 못생겼다고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어쩔 수 없는 세상의 변화 속에서 제작진과 개그맨들이 더 힘들어진 건 맞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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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개그콘서트의 침체 원인을 소재의 제한 탓으로만 돌리는 건, 위기의 본질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란 지적도 많다.


김선영 TV평론가는 "시청자들의 각성과 세상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이 때문에 소재의 제약이 많아졌다고 억울한 투로 말하는 건 잘못된 태도"라고 못박았다.


그는 "개그콘서트의 위기는 권력과 기득권층에 대한 풍자의 칼날이 무뎌지고, 웃기면서도 날카로운 사회적 메시지가 실종됐기 때문이지, 인권감수성의 강화 탓은 아니다"라며 "박나래·이영자처럼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시청자들과 소통하며 공감을 얻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개그콘서트는 현 위기에서 한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침체의 원인을 자기들 안에서 찾아야지, 변한 세상에서 찾으려 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그콘서트의 가장 큰 문제는 명맥을 이어갈 스타 개그맨이 배출되지 않고 있는데다, 개그맨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다듬고 발전시켜가는 유능한 작가가 없다는 것"이라며 "이런 저런 제약 때문에 과거의 개그 코드가 지금 시대와 맞지 않으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웃음의 의미를 성찰하고 새로운 웃음 코드를 발굴해야 하는데, 지금의 시스템 안에서는 요원한 일 같다"고 꼬집었다.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한 버라이어티와 관찰예능, 재기발랄한 실험적 콘텐츠가 넘쳐나는 유튜브 등 개그콘서트가 힘을 잃을 수 밖에 없는 외부적 요인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개콘은 이같은 시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외모·젠더·나이 등의 예민한 소재를 거친 방식으로 다루거나, 시도때도 없이 몸노출을 하는 식의 억지 개그로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아왔다는 비판 또한 거세다.


'민상토론' '대통형'처럼 정치권과 세태를 예리하게 풍자하는 코너 또한 실종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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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은 과거에 사랑받았던 '레전드' 코너들과 현재 코너들을 적절히 섞어 1000회 특집을 만들겠다고 했다. 800회, 900회 특집과 다를 게 하나 없는 '향수팔이' 기획이 될 게 뻔하다. 1000회 특집을 현 위기에 대한 뼈저린 반성과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정덕현 평론가는 "앞으로 이렇게 변화하겠다는 청사진을 갖고서 1000회에 임해야지, 예전 인기 코너들을 울궈먹는 식의 '경로당' 특집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이 재미없다고 하면 프로그램은 없어질 수 밖에 없다.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보는 수 밖에 없다"는 원로 개그맨 전유성의 조언을 제작진이 곱씹어봐야할 때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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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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