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없기로 유명한데···캄보디아 北식당 왜 인기일까

[푸드]by 중앙일보

시엠레아프 평양랭면관 냉면 시식기

심심한 서울 냉면집과 판이한 맛

짜장면·자라탕·김밥 등 메뉴 다양

봉사원 노래·연주 실력은 수준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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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여자 직원들 예쁘고 노래도 엄청 잘합니다.”

캄보디아 시엠레아프, 한국어를 구사하는 현지인 가이드가 북한식당을 설명한 말이다. 공연은 관심 없었다. 사흘간 앙코르 유적을 취재하며 37도가 넘는 더위에 시달려 시원한 냉면 생각이 간절했을 뿐이었다. 저녁시간, 시엠레아프 시내의 ‘평양랭면관’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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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0석은 족히 돼 보이는 대형 식당이었다. 공연 시간이 30분 이상 남아서였는지 자리는 비어 있었고, 무대 앞쪽 자리에만 예약 단체를 위한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단체석에서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앉았다. 한복 입은 봉사원(식당 직원)이 메뉴판과 볶은 땅콩을 내줬다. ‘평양랭면(물냉면, 7달러)’을 주문한 뒤 곁들일 음식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평양 정통 소고기 요리나 동태찜이 정말 좋습니다. 아, 혼자 오셨습니까? 그럼 만두를 드셔보시면 좋겠습니다.”


봉사원은 내내 웃는 낯이었다. 사투리는 심하지 않았다. 만두(6달러)와 배추김치(3달러)를 주문했고 메뉴판을 더 뒤적였다. 짜장면, 김밥, 순댓국, 자라탕 등 의외의 음식도 있었다. 메뉴 구경이 재미나서 사진을 찍었더니 “뭘 이런 걸 찍으십니까!” 하며 메뉴판을 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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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이 나왔다. 메뉴판 그림에 시뻘건 다진 양념이 듬뿍 올려진 걸 보고 빼달랬더니 종지에 따로 내줬다. 냉면 모양이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때 나온 옥류관 냉면과 비슷해 보였다. 국물은 탁하고 면발은 까맸다. 메뉴판을 채간 봉사원이 다시 상냥한 미소로 겨자와 식초, 가위를 내줬다.

“평양랭면은 식초를 듬뿍 쳐서 드서야 맛있습니다.”


어라? 젓가락으로 휘져었더니 면발이 떡처럼 뭉쳐져 있었다. 식초를 부어가며 면발을 푼 뒤 호로록 흡입했다. 면발이 질겅거렸다. 메밀보단 전분 함량이 높은 듯했다. 국물 간은 센 편이었다. 달고 짰다. 동치미 맛도 났다. 서울 ‘우래옥’ 냉면을 1, 동네 분식점 냉면을 10이라고 하면 5~6 정도 되는 맛이었다.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덥고 습한 캄보디아 날씨에는 이런 맛이 어울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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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원에게 냉면에 관해 물어보려는 찰나, 한국인 단체 관광객 100여 명이 들이쳤다. 중국 단체도 있었다. 모든 직원이 종종걸음치며 음식을 날랐다. 뒤늦게 김치와 만두가 나왔다. 김치는 속초에서 먹어본 이북식 김치 맛과 비슷했고, 김치가 가득한 만두는 입이 얼얼할 정도로 매웠다. 서울의 평양 음식 전문점에서 먹은 심심한 만두와는 전혀 결이 달랐다. 만두는 절반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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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시작됐다. 음식 나르던 봉사원들이 무대에 올랐다. 익숙한 ‘반갑습니다’부터 낯선 북한 가요까지 네댓 곡이 이어졌다. 3단 고음이나 고난도 안무는 없었지만, 음정이 무척 안정적이었고, 드럼·색소폰·전자기타 연주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장년층 단체 여행객은 손뼉 치며 공연을 즐겼다. 사진 촬영을 막았지만,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지는 걸 모두 제지하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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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곡은 ‘생일 축하합니다’였다. 세 명이 노래를 불렀고, 공연을 마친 나머지 봉사원은 무대서 내려와 한국 여행사 가이드와 함께 케이크를 썰어 날랐다. 봉사원과 가이드는 손발이 착착 맞았다. 봉사원들이 애절한 목소리로 “또, 만납시다!”를 외치며 공연이 끝났다. 옆 테이블에 있던 어른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괜히 뭉클한데?”

중국, 러시아는 물론 오랜 수교 국가인 베트남, 캄보디아 등지에는 북한 정권이 운영하는 식당이 많다. 2016년 외교부는 북한의 외화벌이를 견제할 목적으로 여행객에게 이용 자제를 당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기는 여전하다. “가격 대비 음식 맛이 없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데도 북한에 대한 원초적인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엔 충분하다”는 어떤 가이드북의 설명이 꽤나 적절한 것 같다.


시엠레아프(캄보디아)=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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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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