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가족이 사는 법] 음식은 배달, 설거지는 세척기…1인1행복 추구

[라이프]by 중앙일보

소비생활 이끄는 '밀레니얼 가족'

가사시간 아껴 자기계발에 투자

'1인1행복' 악기방·운동방 꾸며

간편식 늘며 요리하는 남성 대세

호텔 같은 침실, 휴식·명상 앞세워

TV·냉장고 대신 의류건조기 선택


소비 트렌드 예측서인 『트렌드 코리아』는 올해의 10대 트렌드 중 하나로 ‘밀레니얼 가족’ 키워드를 제시하며 “낯선 사고방식을 가진 새로운 가족 집단이 등장했다”고 분석했다. 1980년대 생으로 대변되는 밀레니얼 세대의 가족 풍경이 이전과 다른 독특한 양상을 보인다는 의미다. 과연 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밀레니얼 가족이 사는 법’을 깊숙이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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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노동으로 즐거운 식사를


30대를 중심으로 부부 중심이거나 초등학생 이하의 자녀를 둔 밀레니얼 세대는 부모인 베이비부머 세대와는 전혀 다른 삶의 패턴을 보인다. 전통적인 아내·남편의 역할과 절대적인 희생은 거부한다. 부부가 가사를 분담하고, 가사노동 시간을 아껴 자기계발에 투자하거나 여유를 즐긴다.


『트렌드 코리아』의 공동저자인 이향은 성신여대 교수(서비스·디자인공학과)는 밀레니얼 가족의 가장 큰 특징을 “노동의 가성비 추구”라고 분석했다. 최소한의 노동으로 최대의 효율을 내는 살림을 지향하는 게 이들의 방식이다. 이 교수는 “특히 식생활의 경우, 최소한의 노동으로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는 효율성 높은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고 강조했다.


맞벌이 부부가 많은 밀레니얼 가족의 엄마는 집에서 식재료를 일일이 다듬어 요리하는 대신, 가정간편식(HMR)을 사와 간단한 조리를 통해 식사를 준비하거나 배달 서비스를 이용해 맛집의 이름난 메뉴로 상을 차린다. HMR 시장의 성장은 이런 밀레니얼 가족의 성향을 대변한다. 관련 업계가 추정하는 국내 HMR 시장 규모는 2017년 기준 2조5131억원에 달한다. 최근 2~3년간 매년 15~20%씩 성장했고, 올해는 3조원을 넘길 전망이다.


‘구매한 음식’을 가족에게 낸다는 심리적 죄책감은 유기농 식재료와 프리미엄급 제품을 사는 것으로 상쇄한다. 최근 한 단계 진화한 HMR 형태인 ‘밀키트’가 인기를 끄는 이유다. 밀키트는 메뉴에 필요한 고기·해산물 등 생물과 신선한 채소를 미리 손질해 양념과 함께 포장 판매하는 제품이다. 간단한 조리과정만으로 그럴듯한 요리를 완성할 수 있다. 미국·일본에선 이미 성숙한 시장으로 국내에선 2016년 한국야쿠르트·동원·GS리테일 등 대기업들이 서비스를 시작했고, 지난 4월 말엔 CJ제일제당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새벽배송을 해주는 음식 유통 서비스 또한 활용도가 높은 서비스다. 저녁에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신선한 식재료·음식이 배달되는 서비스는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밀키트가 상용화되면서 남편의 식사 준비 동참률도 높아졌다. 맞벌이 부부가 많다 보니 바쁜 아내를 대신해 아이와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는 30~40대 남편의 모습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됐다. ‘요리는 여자의 일’이라는 성 역할이 깨진 셈이다.


집에선 쉬고 싶어…'각자, 따로'


밀레니얼 가족의 또 다른 특징은 ‘1인 1행복 추구’다. 가족 공동체를 중시하며 희생을 미덕으로 삼았던 전형적인 한국의 가족상을 탈피, 공동체만큼이나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게 됐다. 이향은 교수는 “‘나’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게 됐다”며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집을 꾸미기보다 진정한 휴식을 위해 내가 편하고 만족스러운 공간을 꾸미는 가족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집은 삶을 정비할 수 있는 가치 있고 생산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2017 집의 의미 및 홈인테리어 관련 인식 조사(전국 만 19~59세 성인남녀 1000명 대상)’에 따르면 집을 ‘가장 사적인 공간’으로 꼽는 응답자가 56.1%(2015년)에서 65.6%(2017년)로 증가했고, ‘나만의 공간’으로 보는 시각도 41.6%(2015년)에서 51.8%(2017년)로 증가했다. 특히 집이 나만의 공간이라는 인식의 경우 젊은층(20대 66.4%, 30대 51.2%, 40대 44.4%, 50대 45.2%)과 1~2인 가구(1인 가구 78.5%, 2인 가구 67.1%, 3인 가구 48.8%, 4인 가구 46.4%, 5인 이상 가구 37.3%)에서 두드러졌다.


인테리어 시공 업체 아파트멘터리의 김지원 공간 디자이너는 “남편을 위한 게임룸, 아내를 위한 작업실 등 가족의 취미에 따라 악기 방, 운동 방, 카페 방 등을 따로 만들기도 한다”며 “가족 모두가 공용으로 사용하는 공간도 중시하지만, 각자의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데도 인색하지 않다”고 말했다. 신축 아파트를 설계할 때 '알파룸'을 만드는 추세도 이런 트렌드와 일맥상통한다. 서비스 면적을 모아 아예 하나의 방으로 만드는데, 취미 생활을 즐기며 정서를 나눌 수 있는 플러스 공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만큼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공간은 침실이다. SM C&C의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를 통해 전국 2030 남녀 500명에게 설문조사 결과, 밀레니얼 세대를 아우르는 2030 젊은층은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자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으로 ‘침실(58.2%)’을 꼽았고, 가장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싶은 가구로는 ‘침대(51.6%)’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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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주보경

자연스레 이전 세대보다 ‘홈 퍼니싱(home furnishing·집 단장)’에 공을 들인다. 아파트멘터리 김 디자이너는 “단순히 잠자는 공간을 넘어 적극적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집을 꾸미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설문 조사에선 가장 선호하는 인테리어 키워드로 ‘쾌적한 호텔 스타일’을 꼽은 응답자(48.6%)가 가장 많았고, ‘쉼 명상 센터’를 꼽은 응답자(34.2%)가 뒤를 이었다.

새로운 ‘가전 3대장’의 등장


적은 노동력으로 집안일을 해결할 수 있는 ‘도우미 가전’과 미세먼지로 인한 ‘건강 가전’이 전에 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과거 필수 가전으로 꼽혔던 TV, 대형 냉장고는 이제 선택 가전이 됐다. 밀레니얼 가족은 TV대신 휴대폰으로 영화·드라마를 보고, 음식은 사 먹거나 필요한 만큼만 사오니 큰 냉장고가 필요 없다. 혼수가전으로 꼽혔던 김치냉장고 역시 뒷순위로 밀려났다.


지금 밀레니얼 가족이 관심을 쏟는 3대 가전은 의류건조기,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다. 실제로 이들 세 가전은 온라인 쇼핑사이트 G마켓·옥션에서 높은 매출 신장률을 보인다. 지난해 의류건조기의 G마켓 매출은 3년 전인 2016년 대비 934% 성장했다. 옥션에선 그보다 높은 974%의 신장률을 보였다. G마켓의 김충일 디지털실 실장은 "사회생활에 왕성하게 참여하는 가구일수록 노동의 강도와 빈도를 줄일 수 있는 제품 소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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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식기세척기.

식기세척기는 최근 새로운 필수가전 후보로 강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맞벌이로 살림의 무게가 남편과 아내에게 동등하게 배분되면서, 지친 저녁시간이나 쉬고 싶은 휴일의 설거지 부담을 덜어내려는 선택이다. 30대 직장인 이모씨는 "식사 후 그릇을 세척기에 넣고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는 여유가 생겼다"며 웃었다. 로봇청소기 역시 샤오미·에코백스 등 30만원 대 제품이 대거 출시되며 사용 가구가 늘었다. 걸레질까지 해주는 물걸레 로봇청소기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미세먼지에 대한 공포 때문에 공기청정기는 중요한 가전이 됐다. 신세계백화점의 가전담당 바이어 서정훈 부장은 "공기청정기는 과거 선택적 소비가 이루어졌는데, 지금은 우선 집에 들여놓는 가전으로 인식이 달라졌다"며 "특히 어린 자녀가 있는 집은 거실은 물론이고, 방마다 작은 것 1~2대를 더 설치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같은 맥락으로 밖에서 묻은 미세먼지 등 오염물질을 털어내 줄 수 있는 의류관리기 역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3년간 G마켓의 의류관리기 매출은 1344% 성장했다. 2016년 대비 의류관리기 시장은 9배 성장한 45만 대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윤경희·유지연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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