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뉴스]범인 잡고 인명 구조도…우리 동네는 시민경찰이 지킨다

[이슈]by 중앙일보

지난 3월 31일 오후 7시 30분쯤 경기도 광명시의 한 거리. 땅거미가 내려 어둑한 거리에 "도둑이야"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인근 금은방 주인이었다. 손님인 척 금은방을 찾은 A씨(19)가 귀금속을 사는 척하고 230만원 상당의 순금팔찌를 들고 달아난 것이다. 도망가는 A씨는 근처를 지나던 우의기(17)군의 눈에 포착됐다. 그는 망설임 없이 A씨를 홀로 추격했다. 200m가량을 뛰어 A씨를 붙잡은 우군은 출동한 경찰에 넘겼다. 조사 결과 A씨는 전에도 비슷한 범죄로 처벌을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A씨를 절도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성지고 3학년에 재학 중인 우군은 교내 축구선수로 활약해 왔다. 우군의 아버지도 광명시에서 25년간 자율방범대로 활동해 왔다. 경찰은 범인 검거 등의 공으로 우군을 '우리 동네 시민 경찰 1호'로 선정했다. 우군은 "'도둑이야' 소리와 함께 도주하는 A씨가 보여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달렸다"며 "당연한 일을 했는데 우리 동네 시민 경찰 1호로 선정해 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지난 3월부터 '우리 동네 시민 경찰'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3개월 만인 현재까지 96명의 시민 경찰이 나왔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선정된 이들의 활동 내용도 다양하다. 우군처럼 절도범 등을 잡은 이들도 많지만 큰 사고를 막기 위해 몸을 던진 사례도 있다. 지난 4월 10일 오후 어머니 병문안을 마치고 귀가하던 김휘섭(28)씨는 성남시 분당구의 한 사거리에서 교통사고를 목격했다. B씨(76)가 몰던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 맞은편 2차로에서 주행하던 승용차를 들이받고 30m가량을 역주행하더니 또 다른 차량과 정면충돌한 뒤 멈춰섰다. 소방서 등에 신고를 한 김씨가 차 안을 살펴보니 B씨는 가속페달을 밟은 채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인근엔 인도와 횡단보도가 있어 B씨의 차가 이동한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우려도 있었다. 이에 김씨는 인근에서 도끼를 가져다 잠긴 B씨 차량의 뒷좌석 창문을 깼다. 김씨의 행동에 횡단보도에서 보행 신호를 기다리던 길요섭(44)씨도 가담했다. 김씨가 창문을 깨자 김씨는 차 안으로 들어가 기어를 주차(P)에 놓은 뒤 B씨를 구해냈다. 김씨는 차 유리창을 깨면서 양손 검지 인대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기도 했다. 경찰은 김씨와 길씨를 우리 동네 시민 경찰 2·3호로 선정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씨는 "당시 인도에 사람이 많아서 자칫 큰 사고로 번질 수 있다는 생각에 그냥 뛰어들었다"며 "나중에 B씨가 직접 찾아와 '고맙다'고 하는데 당연한 일을 했는데도 인사를 받으니 쑥스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제공해 미궁에 빠진 범죄 사건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제공한 이들도 '우리 동네 시민 경찰'이다. 송모(53)씨가 제공한 블랙박스 영상의 경우 성남시 중원구 일대에서 폐쇄회로 TV(CCTV)를 피해 신출귀몰한 절도 행각을 벌인 C씨(58)의 얼굴이 포착됐다. 경찰은 6차례에 걸쳐 금품을 훔친 C씨를 절도 혐의로 구속했다. 송씨처럼 개인 영상을 제공해 범인 검거에 기여한 이들만 5명에 이른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선의의 행동을 한 이들도 있었다. 지난달 27일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힘든 시기 감동을 준 여학생'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전날 광주시 보건소 인근에서 한 여학생이 맨발로 도로를 헤매는 노인을 인도로 데려오고 본인의 신발을 벗어 신겨줬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미담의 주인공인 박모(23)를 수소문해 '우리 동네 시민 경찰'로 선정했다. 지난 4월 이천시 대월면에서 트랙터와 함께 논으로 추락한 70대 노인을 구조한 이모(73)씨도 선정됐다.

경찰 관계자는 "일상 속 이웃에 대한 관심이나 실천도 효과적인 치안 활동이 될 수 있다"며 "많은 시민이 '우리 동네 시민 경찰'이 될 수 있도록 이들의 활약상을 적극적으로 알리겠다"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