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넉 달은 버티지만, 더 끌면 일본도 치명상”

[비즈]by 중앙일보

반도체 전문가 박재근 한양대 교수

일본 측 수출규제 대상 3개 품목

소재·완제품 4개월치 비축 상태


한국이 올레드패널 공급 끊으면

소니는 하이엔드TV 생산 못해


이번 사태로 일본업체 신뢰 추락

양국 정부 서둘러 실타래 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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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소재 공급이 당장 끊겨도 한국 반도체는 4개월은 버티겠지만, 길어지면 한·일 업체 모두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본다.”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인 박재근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의 진단이다. 일본은 4일부터 한국 반도체·TV·스마트폰 제조에 쓰이는 필수 소재 3개 품목의 수출을 규제한다. 소재 재고 3개월, 완제품 재고 한 달을 합쳐 한국 기업이 버틸 수 있는 최대 기간은 길어야 4개월이라는 것이다. 박 회장은 “일본에 맞서 우리도 올레드 패널 공급을 끊으면 소니는 하이엔드 TV를 접어야 할 것”이라며 “그 상황까지 가기 전에 양국 정부가 나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박 회장과의 일문일답.


Q : 포토레지스트(감광액)와 고순도 불화수소(HF), 스마트폰·올레드TV용 폴리이미드 등 3품목 수출 규제 중 어떤 게 가장 큰 문제인가.


A : “굳이 따지자면 포토레지스트다. 포토레지스트는 크게 메모리 반도체를 만드는 일반 제품과 스마트폰의 두뇌 격인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칩이나 EUV(극자외선) 같은 고정밀 공정에 필요한 고급 제품이 있다. 이중 일반용은 일본 공급사인 TOK가 평택에 지은 공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공급한다. 그런데 일반용이라도 TOK가 원재료를 일본서 갖고 와야 한다. AP 칩과 EUV용 포토레지스트는 일본 신예츠 케미칼과 JSR, 스미토모 3사가 공급한다. 3개 회사 외에는 마땅한 조달처가 없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모두 재고도 넉넉지 않다고 한다.”


Q : 고순도 불화수소 상황은 어떤가.


A : “고순도 불화수소의 공급사인 일본 스텔라 케미파가 대만 파운드리 업체인 TSMC 근처에 공장을 갖고 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모두 대만으로 달려가 여유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일본 스텔라 케미파 공장 근처에 저장 기지를 갖고 있다. 4일까지 스텔라에서 물량을 최대한 미리 확보하는 중이다. 일본의 저장기지나 대만 등에서 3개월 치의 재고를 확보할 거로 보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장기적으로는 중국 등으로 조달처를 다변화하기 위해 중국 업체들의 제품도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 순도가 낮은 게 한계다. 고순도 불화수소는 원래 한국에도 공장을 지으려고 했는데 구미 불산사고 이후 시민단체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 지금 생각하면 아쉽다.”


Q : 스마트폰이나 올레드TV는 일본산 폴리이미드가 없으면 어떤 영향을 받나.


A : “삼성전자의 경우 하이엔드(고급) 스마트폰엔 스미토모 제품만 쓴다. 국내 SKC나 코오롱 인더스트리 등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 검토 중이지만, 아직은 품질면에서 차이가 난다. 갤럭시 폴드에도 스미토모의 폴리이미드가 100% 들어간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처음 시도하는 폴더블 폰인데 가장 좋은 재료를 쓰고 싶지 않겠나. 그런데 지금 상황에선 수급 차질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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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일본은 규제 품목을 확대하는 걸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반도체 재료(소재)의 일본 의존도를 낮출 수는 없나.


A : “반도체 공정에 들어가는 재료의 국산화율은 40% 남짓이다. 특히 가격이 비싸고 첨단일수록 일본과 미국에 많이 의존한다. 국내서도 최근 재료 공급사가 늘고 있지만, 기술력에 차이가 있는 건 분명하다. 다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입장에서 앞으로 국내나 중국 등으로 공급처 다변화를 시도할 것으로 본다.”


Q : 디스플레이 장비를 일본이 규제하면 어떤 영향을 받나.


A : “디스플레이 노광 장비는 일본 캐논과 니콘이 절대적인 강자다. 그런데 삼성·LG디스플레이가 전 세계 디스플레이 패널의 30% 정도를 생산한다. 삼성이나 LG디스플레이가 거꾸로 캐논이나 니콘 장비를 안 사면 두 회사는 매출의 상당액이 줄어든다. 단순히 갑을 관계로 보기보단 협력 관계로 봐야 하지 않을까.”


Q : 그 협력 관계인 글로벌 공급 체인을 이번에 일본이 깬 것 아닌가.


A : “그렇다. 어쨌든 일본 업체들은 신뢰에 타격을 입고있다. 국내 업체도 탈일본을 꾀할 테고, 해외의 다른 기업들도 일본 기업을 보는 시각이 전과 같을 수는 없다. 막말로 우리도 올레드 패널을 일본 전자산업의 자존심이라는 소니에 공급하지 않을 수 있다. 소니는 그러면 올레드 패널을 구할 수 없어 일본이나 미국에서 하이엔드 TV를 판매할 수 없다. 또 반도체를 일본 소니나 샤프 등에 팔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그 회사들도 가전이나 스마트폰 생산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다.”


Q : 그럼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하나.


A : “아베 총리 입장에서는 오는 21일 참의원 선거도 의식한 거로 보인다. 하지만 사태가 길어지면 일본 기업들의 자국 정부에 대한 항의가 이어질 것이다. 당장 고순도 불화수소를 만드는 회사들의 경우 3개월 생산을 못 한다, 그래서 공장 가동을 멈춘다, 그러면 코스트(비용)가 엄청 올라간다, 그 피해를 누가 감당할 것인가. 국내 기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양쪽 다 기업들은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 양국 정부가 서둘러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장정훈 기자 cc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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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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