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남 장면 자제"···로맨스가 혹평받는 이 드라마 '검블유'

[컬처]by 중앙일보

로맨스 쏙 뺀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임수정ㆍ전혜진ㆍ이다희 걸크러시로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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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본 적 없는 새로운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 임수정(40)이 밝힌 tvN 수목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이하 ‘검블유’) 출연 이유다. 2001년 ‘학교 4’로 데뷔한 그녀가 지난 18년 동안 출연한 드라마가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 ‘시카고 타자기’(2017) 등 4편밖에 되지 않는 것을 고려한다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선택이다.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송은채 캐릭터로 큰 사랑을 받았지만 그 이미지를 깨는 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포털 업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검블유’에서 임수정이 맡은 배타미는 확실히 새로운 캐릭터다. 업계 1위인 유니콘에서 경쟁업체인 바로로 옮겨온 본부장이라는 스펙은 물론이거니와 그녀가 일하고 말하는 스타일도 그렇다. 통상 한국 드라마에서 성공한 여성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다거나 망한 집안을 일으켜야 하는 대단한 동기 부여가 있기 마련. 한데 그는 “내 욕망엔 계기가 없어. 내 욕망은 내가 만드는 거야”라고 말하니 놀랄 수밖에. 그저 자신이 하는 일로 인정 받고 싶은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이다.



“내 욕망 계기 없어”…구질한 사연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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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에서 특이한 건 그뿐만이 아니다. 유니콘에서 배타미의 사수였던 송가경 이사 역을 맡은 전혜진(43)도, 바로에서 경쟁 구도를 형성하는 차현 본부장 역을 맡은 이다희(34)도 모두 자기 욕망에 충실한 캐릭터다. 한번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이뤄야 하는 성미이므로 이들은 각기 다른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치열하게 싸운다. 여기에 유니콘 대표(유시진)도, 그 뒤를 받치고 있는 KU그룹 회장(예수정)도 모두 여자다. 그야말로 여성이 다투고, 쟁취하고, 이끄는 사회인 셈이다.


자연히 이들에게 로맨스는 뒷전이다. 연하남이 다가와도 “일이 우선”이라며 밀어내거나 호스트바를 찾아 정략결혼의 외로움을 달래는 식이다. 그동안 로맨스 드라마에서 백마 탄 재벌 2세 혹은 본부장님이 짠하고 나타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줬다면 이들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동료 여성에게 SOS를 보낸다. 남성보다 더 큰 권력을 지녔거나 더 힘이 센 여성이 주위에 수두룩한 덕분이다. 심지어 막내 직원에게 어디서나 함부로 무시당하지 않을 만한 ‘백’을 선물하는 것도 여자 상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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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 역시 남녀주인공의 로맨스보다는 여배우들의 걸크러시에 더 열광한다. 극 중 각각 회사와 학교에서 선후배 사이로 만난 임수정-전혜진-이다희는 서로를 향한 애증이 뒤섞여 삼각관계로 보이기도 한다. 덕분에 한지민-정해인 주연의 MBC ‘봄밤’이나 신혜선-김명수 주연의 KBS2 ‘단, 하나의 사랑’에 비해 시청률은 밀리지만 화제성은 뒤지지 않는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 출연자 화제성 조사 결과도 임수정ㆍ전혜진ㆍ이다희가 고루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렸다. 전체 시청률은 3%대지만, 극 중 주인공들의 나이로 설정된 30~40대 여성 시청률은 두배에 달한다.



로맨스 말고 언니들 보는 재미에 푹


오죽하면 가물에 콩 나듯 등장하는 박모건(장기용)과 배타미의 로맨스마저 시청자들 사이에서 ‘모건 타임’이라 불리며 자제를 요망할 정도.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지난해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등 여성 중심 서사의 드라마가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결국 화제가 된 것은 연하남과 로맨스였다. 반면 ‘검블유’는 로맨스가 끼어들 자리를 찾기 힘을 정도로 여성의 이야기가 충분히 그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기존 남녀 성 역할만 바꿔 놓은 영화 ‘차이나타운’이나 ‘마녀’ 등과 달리 장르적 특성에 맞는 유의미한 미러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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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작가가 소속된 화앤담픽쳐스가 제작한 작품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이번 작품으로 입봉을 권도은 작가는 ‘시크릿 가든’(2010)부터 김 작가의 보조작가로 활동해 왔다. ‘미스터 션샤인’(2018)을 공동 연출한 정지현 PD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김은숙 작가가 ‘파리의 연인’(2004)부터 ‘상속자들’(2013)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신데렐라 스토리를 선보이며 로맨스의 절대 강자로 자리매김했다면, 권도은 작가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첫 단추를 끼운 셈이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반응도 긍정적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제목 중 ‘WWW’가 여자주인공 3명을 뜻하는 우먼들로 읽힐 정도로 여성의 욕망이 잘 반영돼 있다”며 “명품 백으로 대변되는 전통적 욕망과 페미니즘이라는 새로운 욕망까지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작품”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여성 캐릭터가 감정적이거나 의리 없는 모습으로 그려져 ‘민폐’ 캐릭터로 불렸던 것과 달리 자매애로 똘똘 뭉쳐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인상적”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여성 리더 많아” 업계도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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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업계 종사자들도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현실 반영이 잘 되어 있는 편”이라고 입을 모았다. 유니콘은 구글과 네이버를 합친 대기업으로 묘사되고, 바로는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카카오(다음)처럼 등장한다. 지난 연말까지 포털 회사에 다니다 이직한 30대 중반 여성 A씨는 “네이버 한성숙 대표도 여성이고, 카카오 김범수 의장의 영어 이름도 브라이언인데 드라마에서도 유니콘은 여성 대표, 바로는 브라이언(권해효) 대표로 나와 깜짝 놀랐다”며 “실제 여성 임원이 많진 않지만 팀장이나 파트장 급에서는 30대 여성 리더도 많은 편”이라고 밝혔다.


또다른 업체에 재직 중인 20대 후반 여성 B씨는 “직급에 관계없이 수평적 분위기에서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는 맞지만 기업 오너의 지시에 따라 검색어를 임의로 삭제한다거나 특정 업체가 조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규정에 따라 자동 모니터링되는 시스템으로 비속어나 욕설 등은 실시간검색어로 노출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포털의 힘이 강화되면서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나 기술의 중립성 여부 등은 현재 업계에서도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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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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