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기다리던 전쟁포로가 살아 갈 힘을 찾게한 이것

[라이프]by 중앙일보


[더,오래] 정수현의 세상사 바둑 한판(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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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하고 나서 금방 늙어버리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는 병이 나서 수년 내에 세상을 떠나는 이도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제 퇴물이 되었다는 상실감 때문일 것이다. 그 외에도 사회성이 부족해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한 것이 원인일 수도 있다. 크게 보면 이런 케이스는 ‘생의 목표’가 사라져 버린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생의 목표를 가진 액티브 시니어


일본군 포로수용소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미국인이 있었다. 그는 한 중국 노인의 간단한 질문을 받고 자신의 생명을 구했다. 그 질문은 이것이었다. “여기서 나가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뭔가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질문에 그 포로는 놀랐다. 질문을 받고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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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잭슨의 『책의 힘』에 나오는 이야기다. 저자는 이 포로가 살아나온 비결을 ‘목표의 힘’이라고 한다. 목표로 인해 그 미국인은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고, 온갖 역경을 견뎌낸 끝에 마침내 귀환하게 된 것이다. 이 미국 포로처럼 삶의 목표를 갖는 것이 액티브 시니어가 되는 길이다. 목표를 가질 때 활발한 삶을 살 수 있다. 시니어가 아니더라도 목표가 있는 사람은 삶이 즐겁고 역동적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삶의 목표가 분명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성공을 더 많이 하고 수익을 더 많이 올린다고 한다. 출처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인터넷 등을 통해 사람들의 입에 많이 회자된 내용이다. 목표가 있는 사람은 시간과 에너지를 그 목표 달성에 집중하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바둑에서도 목표는 매우 중요하다. 바둑이란 목표를 향해 수를 선택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상대방 돌을 공격해야 할 상황에서 엉뚱한 목표를 정하면 좋은 기회를 놓치기 쉽다. 자기 진을 수비해야 할 장면에서 무리한 침입을 하면 형세를 망칠 가능성이 크다.


유명 바둑인 중에서 목표의 중요성을 생생하게 보여준 인물이 있다. 현대 한국 바둑의 개척자로 불린 고 조남철 9단이다. 조남철 9단은 17세 때 일본의 선진 바둑기술을 배우기 위해 현해탄을 건넜다. 몇 년 후 그는 프로 초단 자격을 얻어 귀국했다. 그 무렵 한국에는 바둑팬이 3000명 정도에 불과했고 바둑에 관한 인프라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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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조남철은 ‘기도보국(棋道報國)’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기도’는 태권도나 합기도처럼 바둑을 하나의 도로 부르는 명칭이다. 조남철은 기도를 보급해 나라에 보은한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그는 일본이 한국보다 잘 사는 이유는 전문가가 많기 때문이라고 보고 당시로는 생소한 ‘프로기사’ 제도를 도입했다. 그리고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바둑을 가르치고, 언론사에 프로기전을 중계하고, 바둑의 전당인 한국기원을 건립했다.




바둑 한류 열풍의 주역 고 조남철 9단


개척자 조남철 9단의 목표는 1989년 조훈현 9단이 응씨배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며 빛을 보게 되었다. 이후 우리 기사들이 일본을 꺾고 세계 정상으로 올라서며 한국은 바둑 최강국이 되었다. 전 세계 바둑팬들은 한국 바둑의 경이적인 도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조남철 9단은 척박한 환경에서 바둑계를 개척하고 한류 바둑 열풍을 일으켜 국위를 선양케 한 공로로 은관문화훈장을 받았고, 타계한 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 받았다.


목표가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하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독자도 나름대로 목표를 정해 보면 어떨까? 건강증진이나 삶의 즐기자는 개인적인 목표도 좋다. 자신의 능력과 경험을 살려 사회에 봉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더욱 좋다. 목표를 세워 그것을 달성하려고 노력한다면 갑자기 늙어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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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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