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브밤노 이중생활 이젠 지겹다" 여성들의 노브라 반란

[이슈]by 중앙일보

[江南人流] “노브라,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국 거주 남녀 1765명 설문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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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브래지어(이하 브라) 착용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노브라’(no pa) 이야기다. 지난 4월 가수 겸 배우 설리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노브라 차림의 사진과 영상을 잇달아 올려 논란이 된 뒤, 이달 7일엔 그룹 마마무의 멤버 화사가 노브라 차림으로 흰 티셔츠를 입은 공항패션을 선보여 다시 한 번 불을 지폈다. 두 연예인의 행보로 시작된 노브라 패션에 대한 논란은 “보기 불편하다”는 반대 의견과 vs “여성에게만 들이대는 사회적 편견”이라는 찬성 의견으로 팽팽히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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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브래지어는 그냥 액세서리다. 어울리는 옷이 있으면 하고, 안 어울리는 옷을 입을 땐 안 한다.”


지난 6월 21일 JTBC2 ‘악플의 밤’에 출연한 설리의 말이다. 그는 “(노브라 사진에 대한 비난을)무서워하고 숨어버릴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많은 사람이 이것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면서 “틀을 깨고 싶었다”고 말해 많은 여성의 지지를 받았다. 지난 3일에는 노브라 차림으로 ‘소녀를 지지하는 소녀들’(Girls supporting girls)이란 문구가 새겨진 빨간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44만 개가 넘는 하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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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사람들은 노브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강남인류가 SM C&C의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을 통해 직접 의견을 들어봤다. 조사 대상은 전국에 거주하는 남녀 1765명(남자 684명, 여성 1081명)으로, 세대 간 의견 차이를 비교해 보기 위해 세대별로 300명씩(10대는 224명) 나눠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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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20대 남성은 50대, 노브라에 긍정


먼저 ‘노브라 차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43.7%(771명)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부정적’(28.2%·497명) 의견을 표현한 응답자보다 약 1.5배 가량 많은 숫자다. 나머지(28.1%)는 ‘관심 없다’고 답했다. 긍정적이라고 답한 응답자의 성별은 여성(40.9%)과 남성(47.8%)이 비슷한 비율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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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로는 몸을 죄는 압박감, 땀 등으로 인한 ‘신체적 불편함’(32.2%)이 가장 컸다. 다음은 ‘개인의 자유 보장 차원에서 노브라 선택자를 지지한다’(30.3%), ‘입는 이가 불편하다면 안 하는 게 좋다는 생각’(26.5%) 순이었고, 소수 의견으로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보인다’ ‘패셔너블해 보인다’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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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별로는 20대(46%)가 가장 많은 비율로 호감도를 표시했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부정적인 의견을 가질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10대ㆍ40대ㆍ50대ㆍ60대가 43~44%대의 비슷한 비율로 ‘긍정’을 표현했다. 미묘한 차이였지만 오히려 응답자 중 가장 낮은 호감도를 표시한 세대는 30대(39.5%)였다.


흥미로운 건 세대별로 나타난 남녀의 시선 차이다. 10대의 경우 남녀가 비슷한 비율로 긍정과 부정을 표시했고, 20대는 여성이 남성보다 긍정적 의견을 표시한 응답자가 많았다(48.9% 대 37.7%). 반면 30대부터는 노브라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답한 남성 응답자 비율이 여성보다 높았다. 보수적일 것으로 예상했던 40~60대 중·장년층의 경우엔 긍정적인 입장을 표시한 여성 비율이 35~37%인 것에 반해 남성은 50%가 넘었다.


한국 여성 대부분 ‘낮브밤노’ 이중생활


노브라를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신체적 불편함 때문이다. 설문에 응답한 여성의 절반 이상이 ‘가슴을 조이는 압박감’(50.9%)을 브라 착용 시 가장 큰 불편함으로 꼽았다. 이 외에도 덥고(14.6%), 땀이 차고(17.8%), 소화 불량(8.8%) 등의 불편함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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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를 착용하는 이유에 대해선 ‘유두 등 가슴 윤곽이 옷 위로 드러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43.8%)라고 답한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노브라 차림의 대표적 단점으로 ‘남들의 따가운 시선’(45.4%), ‘입는 사람 스스로의 수치심 유발’(12.5%) 등을 꼽은 것과 일맥상통하는 답변이다.


대부분의 여성이 낮엔 브라를 착용하고, 저녁에는 귀가 즉시 브라를 풀어버리는 ‘낮브밤노’의 이중생활을 한다. 30대 직장인 최모씨는 “브라를 하고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식사 후에도 속이 더부룩한 느낌이 있다. 여름엔 너무 더워서 집에 오자마자 브라부터 풀어버린다. 아마도 대부분 여성이 나와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30대 워킹맘 김인희씨는 “퇴근해서 노브라로 있다가도 택배를 받거나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면 브라부터 찾는다”며 “옷을 벗고 있는 것도 아닌데 노브라 상태로 남과 마주치면 안된다는 생각 때문인데 이런 강박에서 자유롭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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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5개월 차인 이진주씨는 “임신 후부터 노브라로 원피스에 카디건을 걸치고 마트에 종종 가는데 기분은 홀가분하고 좋지만 동시에 남들이 쳐다보는 것 같아 자꾸 옷깃을 여미게 된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40대 주부 박지원씨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려다주면서 급한 마음에 노브라로 갔다가 할머님 한 분에게서 ‘정신이 없었나 보네. 여긴 할아버지도 많이 오니 챙겨 입으라’는 핀잔을 들었다”고 했다. 인스타그램 ‘브라운헤어리사’ 계정 운영자는 ‘여자는 가슴을 보이면 안 된다고 해서 브라를 입었더니, 브라가 비치면 안 된다고 해서 나시를 또 입어. 길거리에 가슴이 보이는 남자도 많은데 왜 여자는 이 불편한 브라를 해야 하는 걸까’라는 게시물을 올려 브라 착용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꼬집었다.





브라렛ㆍ니플밴드ㆍ노꼭지티…브라의 변주


브라는 가슴의 형태를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가슴을 안으로 모으고 위로 올려 고정시켜주기 때문에 브라를 착용하면 하지 않았을 때보다 옷맵시가 살아난다. 대신 가슴을 단단히 조여야해서 답답한 느낌은 피할 수 없다.


해외 패션업계에선 노브라 차림이 세련된 모습으로 비춰지는 경우가 많다. 캔달 제너, 제니퍼 애니스톤 같은 톱모델·배우 등 셀럽들이 공식 석상은 물론이고 평소에도 노브라 차림의 모습을 드러내다 보니 자연스레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노브라=세련됨’이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최근엔 국내에서도 ‘자기 몸 긍정 주의’를 기반으로 한 ‘탈코르셋’ 운동이 번지면서 답답한 브라 대신 브라렛(와이어가 없는 브라) 또는 니플밴드(유두에 붙이는 스티커형 제품)등의 제품을 선택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여성 근무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30대 김모씨는 1년 전부터 노브라로 출근한다. 그는 “운동할 때는 가슴 흔들림을 잡아주기 위해 스포츠 브라를 입지만, 평상시에는 노브라가 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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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어가 없는 브라렛은 최근 몇 년간 기존 브라 대비 편안함을 장점으로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브라 상품으로는 브라렛만을 내놓고 있는 신세계백화점 속옷 편집매장 ‘엘라코닉’은 올해 5월 설립 2년 만에 최대 매출 신장률을 기록했다. 엘라코닉을 담당하는 송지은 신세계백화점 과장은 “올해 5월 지난해 대비 197%의 매출 신장률을 올렸다”며 “무엇보다 연령대가 다양해진 게 성장 원동력”이라고 분석했다. 기존엔 30~40대 여성이 주요 고객이었다면, 요즘은 20대부터 50~60대까지 고객층이 확대돼 매출이 올랐다는 이야기다.


유두가 도드라지는 것을 막기 위한 ’노꼭지티‘라는 제품도 등장했다. 티셔츠 안쪽 가슴 부분에 두꺼운 천을 덧대 브라를 안 입어도 유두가 옷 위로 드러나는 걸 막아준다. 처음엔 임산부 사이에서 입소문 났다가 최근엔 일반 여성들 사이에서도 관심을 받고 있다.


“단정치 못해”…부정적 시선 여전


여러 형태로 브라 착용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는 있지만, 노브라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설문 조사에선 ‘단정하지 못해 보인다’(39.6%)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60대 여성 서모씨는 “브라 착용이 불편하더라도 남들 앞에선 옷을 갖춰 입는 게 예의라고 생각한다”며 “지금까지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을 구식이라고 몰아붙이며 무조건 거부하는 게 여성해방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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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눈에는 노브라 문제가 어떻게 보일까. 한국의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는 프랑스 여성 마리 프라데흐(24)씨는 “프랑스에서 살 때는 브라를 안 입고 외출했지만 한국에선 꼭 한다”고 했다. 이어서 그는 “프랑스에선 노브라를 미니스커트 정도의 선택사항으로 받아들인다”며 “변태 같은 남자들이 쳐다보긴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괜찮다’고 합의된 상태인데 한국에선 노브라를 하고 나가면 사회 규범에 어긋난 행동을 한 것 같은 눈초리를 받는다”고 전했다. 한국 생활 3년차인 50대 중반 이탈리아 주부 대니씨는 “유럽에선 많은 여자가 브라를 사용하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한국에선 가슴 크기와 상관없이 모든 여성이 브라를 착용하는 것을 보고 이상했다”며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입을 자유가 있다”고 말했다.


이미지 컨설턴트 강진주 소장은 노브라 논쟁에 대해 “지금까지 쉬쉬하던 문제를 수면 밖으로 드러낸 것 자체가 긍정적인 현상”이라며 “성 평등에 대한 인식 수준을 높이고 취향의 차이를 존중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어떻게 사느냐’로 관심이 바뀌기 시작했고, 생활 속 많은 부분에서 현 세대에 맞는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했다”며 “앞으로 노브라 문제뿐 아니라 성소수자·하위문화 등 지금까지 차별이나 편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생활 속 일들이 화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경희·유지연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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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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