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반품 대신해 드려요" 적과 손잡은 백화점 매출 껑충

[비즈]by 중앙일보

[세계 유통 아마겟돈3]


'제조업자→도매상→소매상→소비자'


전통적 관점에서 유통은 이렇게 단선적이었다. 하지만 이 룰은 모두 깨졌다. 제조업자가 유통사를 차리고, 소매상이 제조사를 고용해 자체제작 브랜드를 만들어낸다. 밀리미터(㎜) 단위의 요구사항을 제시하는 소비자와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원하는 것을 대령하라는 소비자가 공존한다. 정보기술(IT)과 제조사 다양화로 이를 맞추는 것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유통은 이제 상상력 영역으로 넘어갔다.



상상력이 유통을 지배한다

지난달 13일 미국 뉴저지에 있는 백화점 체인 콜스의 한 매장. 입구에 들어서자 노란 입간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 간판엔 ‘아마존 반품 서비스 준비 중’이란 문구가 쓰여 있었다. 콜스 매장에서 만난 제이미 타누스(38ㆍ뉴저지)는 “반품 서비스가 시작되면 이곳을 더 자주 찾게 될 것”이라며 “온라인으로 산 상품을 반품하면서 오프라인 매장에서 다른 제품도 살 수 있으니 더 편리하지 않겠나. 빨리 서비스가 시작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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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백화점 3강(롯데·현대·신세계 백화점)이 G마켓이나 쿠팡이 판매한 상품의 반품을 처리할 각오가 돼 있을까. 콜스의 서비스는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유통업 포식자’ 아마존을 위해 전통의 유통사인 백화점이 반품 처리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콜스는 지난 2017년 9월부터 로스앤젤레스와 시카고 등 82개 매장에서 아마존 고객의 반품을 받아 아마존 반품센터로 전달하는 서비스를 시범 운영해 왔다. 반품 사유나 비용도 받지 않고 소비자 대신 포장한 뒤 자체 물류센터를 이용해 아마존에 전달한다. 반품 소비자를 위한 전용 주차공간 마련은 물론 콜스 매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25% 할인쿠폰까지 발급했다.


콜스가 반품 대행으로 아마존과 협업에 나설 당시 ‘백기 투항’이라는 비난도 있었다. 2년이 지난 현재 콜스의 판단은 괜찮은 선택이었다는 평가다. 지난 4월 콜스는 “7월부터 48개 주 1150개 모든 매장에 아마존 반품 서비스를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콜스의 미셸 개스 최고경영자(CEO)는 “아마존 리턴 서비스를 전국 콜스 매장으로 확대한다”며 “이 서비스는 콜스가 고객 편의를 위한 혁신”이라고 자평했다.



뜨는 유통 동맹, 새로운 시도들


콜스는 아마존과의 협업을 통해 고객 유입 효과를 체감했다. 반품을 위해 콜스 매장을 찾은 이들은 백화점에서도 지갑을 열었다. 실제로 아마존 반품을 받은 시카고 지역 매장의 매출 상승률은 10%에 달해 미국 전국 평균 5%에 두 배에 달했다. 더 나아가 콜스는 지난 3월부터 200개 이상의 매장에서 아마존 전용 코너 운영을 시작했다. 아마존의 에코 스피커와 파이어 TV를 판매하는 ‘숍 인 숍’ 개념의 매장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가 몰리기도 했다.


다른 방식의 ‘아마존 극복 실험’도 많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종합 유통기업 크로거는 지난 4월 자율주행차를 이용한 배달 서비스 등에 40억 달러(약 4조6252억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로봇으로 창고를 관리하는 계획에 예산을 책정했다. 월마트는 직원이 퇴근길에 주문 상품을 소비자에게 배송하는 퇴근배송제를 도입했다. 우버ㆍ리프트와 같은 차량 공유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식료품 배달 서비스를 하고 오프라인 매장 혁신과 소비자의 쇼핑 환경 개선을 위해 인공지능(AI)과 정보기술 전문가를 대거 채용하고 있다.



이케아 옆 전통시장


지난 5월 14일 오후 영국 코번트리 시장. 중국 유학생과 지역 토박이인 노인이 채소와 생선과 같은 신선 식품을 사고 있었다. 15세기부터 명맥을 유지해 온 역사가 깊은 곳이다. 1953년 당대 최신 기술을 활용해 원형으로 재건축됐다. 현재는 복합 아케이드와 가구 전문점인 이케아에 둘러싸여 있다. 사방으로 뚫려 있는 시장 문은 각 쇼핑지로 연결된다. 쇠락해 가는 시장을 살리기 위해 상인회가 나서 적극적으로 백화점과 마트, 할인점을 유치해 여전히 사랑받는 지역 명소다2007·2010·2014년 영국 최고의 시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코번트리 시장 마케팅 매니저 브라이언 섹스톤은 “취급하는 품목이 달라 침범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시에서 인근에 월세가 저렴한 주거지를 대폭 늘리면서 유학생 인구가 늘었고 시장은 물론 주변 상권도 활기를 띠고 있다”고 소개했다.


시장 상인들은 대를 이어 매대를 지킨 사람이 대부분이다. 저렴한 임대료를 유지해 구두 수선집이나 열쇠복제 상 같은 영세 업종도 자리를 지킬 수 있다. 쇼핑몰에선 사라졌지만, 주민에겐 여전히 필요한 업종이다.


섹스톤 매니저는 “향후 5년간 200만 파운드(30억원)를 투자해 리모델링이 계획돼 있다”고 소개했다. 현재 180여개인 매대를 대폭 줄이고 시장에 꼭 필요한 것만 남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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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상거래 지배적 환경에서 오프라인 사업자가 살아남는 방식은 다양하다. 연일 새로운 동맹이 생기고 새 아이디어가 나온다. 과거의 적으로 간주하던 업체는 의외의 동지가 되기도 한다. 새로운 투자를 통해 없던 가치, 현상을 만들어낸다. 미국과 영국에선 대대적인 최근 쇼핑센터 개보수 작업이 한창이다. 대부분 소비자를 공간에 머무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숭실대학교 경영학과 안승호 교수는 “이제 사람의 서비스는 단순 물건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오프라인 쇼핑몰은 원스톱 생활 솔루션을 제공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라고도 했다.


전통 시장이나 대형마트에서 원재료를 파는 것만으로는 소비자를 끌어들이지 못하지만 보다 높은 수준의 가치를 부여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 또 다양한 업종이 모여 시너지를 낼 수도 있다. 안 교수는 “상생이 아닌 공생을 해야 한다”며 반포 고속버스터미널 상가를 예로 들었다. 그는 “대기업이 대규모 개발을 위해 투자를 하고 손님 유인력을 키운다. 사람이 모여야 작은 매장도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과학기술대학교 조춘한 교수도 “골목상권은 지키는 분과 새로 유입되는 자영업자의 경쟁이 된다”며 “새로운 아이템 창출하는 것이 기존 소상공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도록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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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 관념을 깬 유통 실험


숙명여대 경영학부 서용구 교수는 “오프라인 유통 시장에선 규모로 압도하거나, 특징을 가진 독특한 업체가 소비자의 눈길을 끌 수 있을 것”이라며 “국내 유통업체의 체질 개선도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자 상거래를 통해서는 얻지 못하는 가치 채워주기가 무기가 될 수 있다. 스웨덴 동남부 에스키스투나에 있는 쇼핑몰 리투나의 방향성도 ‘가치 충족’이다. 리투나는 2015년 지자체가 만든 재활용 복합쇼핑몰로 재활용을 활용한 업사이클링(Up-Cycling) 제품이나 일부 수리된 리퍼(Refurbish) 제품만 판매한다. 외관만 봐서는 근사한 쇼핑몰과 차이가 없지만, 환경 운동을 겸한 가치 소비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매출은 지난해 기준 1170만 크로나(약 15억원)으로 크진 않다. 하지만 재활용 제품으로 보이지 않는 근사한 제품을 볼 수 있어 관광객이 몰리면서 지역 명소로 됐다.


최근 글로벌 유통사 사이에선 ‘미니미(mini-me) 매장’ 실험도 한창이다. 매장 규모를 줄이고 개인화 서비스 등 차별화된 특징이 있는 부티크 매장을 늘려가고 있다.


규모를 줄이다 보니 무엇이든 다 있는 매장이 아닌 큐레이션 매장을 표방한다. 2012년 시애틀에 처음 문을 연 ‘미니 타깃’은 시카고와 보스턴, 뉴욕과 같은 대도시와 캠퍼스 인근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2017년부터 연 30개 정도의 미니 매장을 출점하고 있는 타깃은 올해 말까지 130여 개의 소규모(Small-box) 점포망을 갖추겠다고 발표했다.


소규모 점포의 상품 가격은 대형 매장에 비해 다소 비싸지만, 인건비와 평방피트 당 매출, 임대료 등을 고려한 판매 효율이 2배 가까이 높다. 시내 중심부 소규모 매장은 판매는 물론 온라인으로 주문한 제품을 찾고, 배달 서비스 거점으로도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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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한 세포라 매장에서 쇼핑을 마친 소비자가 나오고 있다. 뉴욕=곽재민 기자

화장품 유통점인 세포라도 기존 매장의 절반 규모인 소형 점포 ‘세포라 스튜디오'를 늘려나가고 있다. 뷰티 상담과 개별 맞춤형 서비스에 초점을 둔 실험을 을 하고 있다. ‘미용실 같은 내밀한 서비스’가 모토다. 인근 대형 세포라 점포를 활용해 상품을 수급하고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당일 상품을 수령하는 서비스도 한다. 독일 할인점인 알디와 리들, 아르고스 등도 도심형 점포를 지향하는 소형 매장을 확대하는 추세다.


코번트리·뉴저지=전영선·곽재민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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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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