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체인저]화장실·지하철 플랫폼까지…어디든 찾아간 성수동 수제 구두의 성공 전략

[자동차]by 중앙일보

남 다름으로 판 바꾼 게임체인저

⑦ 박기범 맨솔 구두 대표


손님이 어디에 있든 찾아와 자신의 발 치수와 모양대로 구두를 만들어주는 남성 맞춤 수제화가 있다. 고급 가죽을 사용해 성수동 구두장인이 한땀 한땀 정성껏 만들어 집으로 보내주는 맞춤 서비스에 지불하는 가격은 14만9000원. 주문 접수에서부터 제작 상황, 배송 일정은 카카오톡을 통해 받고, 구두가 잘 맞지 않으면 수정도 해준다. 박기범(39) 대표가 세운 신발 개발·제조 스타트업 '신발연구소'의 맞춤 수제화 브랜드 '맨솔'이 하는 서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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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솔은 성수동 구두 장인과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다. 2016년 시작해 자사 온라인몰과 페이스북을 통해서만 주문을 받고 있는데, 바쁜 직장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찾아가는 가성비 좋은 구두로 입소문이 나면서 류승룡·남주혁·이태성 등 연예인들까지 신는 신발이 됐다. 서비스 지역은 서울을 중심으로 판교·김포·인천·수원 등 수도권 일대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구두를 맞춘 사람은 1만7000여 명. 평균 나이 38.4세로 이 중 30% 이상이 한 켤레 이상을 재구매했다.



고객의 시간, 철저하게 아끼는 맞춤 구두


“점심시간, 회사 앞 공원에서 만나시죠.”


맨솔의 직원들이 흔하게 듣는 말이다. 맨솔을 성공으로 이끈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심지어는 퇴근길 지하철 플랫폼, 회사가 있는 건물 화장실에서 잠깐 만나기도 하고 늦은 저녁 회식 자리에서도 구두를 맞추는 사람도 있다. 주문을 하면 그게 어디든 직원이 직접 찾아온다는 얘기다. 여기에 내가 원하는 디자인의 구두를 맞출 수 있으니 기성품에 부족함을 느꼈던 사람이라면 귀가 솔깃할 만하다. 여기에 15만원 미만의 가격은 맨솔의 매력을 높여주는 큰 무기다.


“한국 남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발에 대해 잘 모른다. 조금만 알았다면 지금처럼 불편한 구두를 신지 않을 거다.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남자들이 1년에 구매하는 구두 수는 평균 1.7켤레다. 이 중에서도 50% 이상이 자신의 신발을 스스로 사지 않았다. 아내나 어머니가 대신 사주고, 신어봤을 때 사이즈가 안 맞아도 그냥 신는다고 대답했다. 자신의 발에 안 맞는 신발을 신으니 발이 불편한 건 당연했다. 자신의 발에 잘 맞는, 잘 만든 구두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면 안 신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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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으로 익힌 '구두 DNA'


박 대표가 이런 생각을 한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신발과 가까웠다. 아니 신발과 함께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대표의 외작은할아버지가 ‘엘칸토’의 창업자인 김용운 전 회장이고, 국내 제화업계에 체계적인 생산 매뉴얼을 전파한 김봉빈 전 엘칸토 고문은 그의 외할아버지다. 아버지 또한 남성구두 공장을 운영했다. 이런 배경 덕에 그는 학창시절 아버지의 공장에서 사용할 박스를 접으며 용돈벌이를 했고, 대학 졸업 후엔 신발이 좋아 전공(경제학과)과 상관없이 '무크'에 MD로 입사했다.


그렇다고 소위 말하는 '금수저'는 아니었다. IMF 시절 아버지 공장이 부도를 맞으면서 어려운 시기를 지냈다. 무크에 입사한 후에도 가족이라고는 하지만 특별한 대우를 받지 않았다. 첫 월급 116만원의 일반 사원으로 시작했고 2년 이상 승진도 월급 인상도 없었다. 그만 두고 다른 곳으로 이직도 했지만, 신발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2년만에 다시 무크로 돌아왔다. 대신 "구두 DNA가 뼛속 깊이 박혀 있다"고 자부할 정도로 구두 제조와 유통에 대해 몸으로 익혔다. 무크에선 소비자가 직접 구두를 디자인하는 어플 '유 아 더 디자이너'를 만든 게 계기로 독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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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구두장인, 유통 간소화로 모두 만족


박 대표는 온라인 유통으로 직접 제조 공장과 거래해 중간 유통 마진을 없앴다.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국내 브랜드 구두의 경우 가격의 30~35%는 백화점 수수료로, 나머지 15~25%는 담당 매니저가 가져가는 유통 구조를 잘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온라인 판매를 통해 유통을 간소화하면 같은 품질의 구두를 절반의 비용으로 살 수 있다는 결론"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구두장인들에겐 제대로 된 공임을 지불하고 소비자에겐 저렴하지만 잘 만든 구두를 제공하는 게 첫 번째 목표였다"며 "기존 국내 구두업계의 패러다임만 바꿔도 승산이 있다고 확신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먼저 편한 구두를 만들기 위해 정확한 치수를 측정하고 이를 분석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맨솔이 사용하는 건 '풋 프린트 시스템'인데 말 그대로 발 도장을 찍어 이를 분석해 구두를 만드는 기술이다. 박 대표는 "3D 측정기도 도입해봤지만 이동이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전문가가 풋 프린트와 발 치수를 직접 재서 분석하는 게 오히려 빠르고 정확도가 높다"고 강조했다. 풋 프린트는 발 모양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발에 실리는 체중에 따라 농도가 다르게 나타나며 발의 어느 부위에 힘이 쏠리고, 또 어떻게 걷는지 등 보행 습관을 보여준다. 이 결과를 가지고 전문가들이 구두를 어떻게 제작해야 가장 편할지 분석하고 이를 주문서로 만들어 장인들에게 의뢰한다.


박 대표의 회사는 O2O를 통한 맞춤 수제화를 시작으로, 패션 브랜드의 구두 아웃소싱하는 ODM 업체로 몸집 키웠다. 올해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건 소비자 스스로가 직접 디자인하는 여성 구두 브랜드 '솔어바웃' 론칭이다. 그에게 창업을 결심하게 한 여성 구두에 다시 한번 도전하는 셈이다.


인터뷰 말미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성수동'을 걱정을 털어놨다.


"성수동은 맞춤 구두를 만들 수 있는 생산 공정을 다 갖추고 있는데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성수동에서만 할 수 있는 특화 제품을 개발하는 것만이 살 길이 될 거다. 제대로 대우 받는 장인이 만드는, 소비자가 원하는 디자인의 신발로 그 해법을 제시하고 싶다."


글=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byun.sung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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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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