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T자로 꺾였던 강릉선 KTX 탈선…사망자 없었던 비결은

[테크]by 중앙일보

KTX ‘관절대차’ 덕 피해 줄여

객차 꽉 연결, ‘잭나이프’ 방지

ICE·신칸센 관절대차 안 써

과속, 규정 무시 땐 효과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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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8일 아침 아찔한 열차사고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강릉역에서 승객 198명을 태우고 서울로 향하던 KTX-산천 열차가 출발 5분 만에 탈선한 사고였는데요.


당시 사고의 충격으로 열차 10량 전부가 탈선했고, 특히 앞쪽 2량은 ‘T(티)’ 자로 꺾인 채 튕겨 나갔습니다. 얼핏 보면 승객들의 피해가 엄청났을 것으로 추정이 되는 상황이었는데요.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사망자는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작지 않은 사고에서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건 정말 ‘천운(天運)’ 이나 마찬가지인데요. 여기엔 철도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꼽는 ‘비결’이 있었습니다.


바로 KTX-산천에 적용된 ‘관절 대차’ 입니다. KTX와 KTX-산천 열차를 자세히 보면 객차와 객차 사이에 ‘대차’가 설치된 걸 확인할 수 있는데요.


대차는 바퀴와 차축 등 여러 장치로 구성돼 차체 중량을 지지하고 철도차량의 주행을 쉽게 하는 장치를 말합니다. 보통 바퀴 4개가 달려있는데요.


일반열차는 통상 객차 한량(칸) 밑에 이런 대차가 2개 들어갑니다. 그리고 객차 사이는 별도의 연결장치로 잇는데요.


하지만 KTX와 KTX-산천은 객차와 객차 사이에 대차를 넣습니다. 이렇게 하면 무엇보다 객차 사이가 단단하게 연결되고, 유사시 충돌의 충격도 상당 부분 흡수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마치 뼈와 뼈 사이를 연결해 원활한 움직임을 가능케 하는 인체의 ‘관절’과 기능이 비슷하다고 해서 ‘관절대차’라고 부른다고 하는데요. ‘연접대차’로 부르기도 합니다.


강릉선 탈선사고 때 맨 앞 동력차와 바로 뒤 객차는 관절대차로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T’자로 꺾였을 뿐이고 나머지 객차는 약간 틀어진 정도였습니다.


철도 전문가들은 “만일 다른 열차들이었다면 객차들이 분리되고 관성에 따라 차곡차곡 접히면서 서로 충돌하는 이른바 ‘잭나이프’ 현상이 발생해 피해가 컸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사실 고속열차에 관절대차를 처음으로 사용한 건 프랑스의 TGV(테제베)입니다. 우리는 국내 고속철도에 TGV를 도입하면서 자연스레 관절대차를 쓰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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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독일 ICE(이체)나 일본 신칸센은 관절대차를 쓰지 않는 대신 객차와 객차를 꼼꼼하게 연결해주는 장치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들 열차가 동력집중식인 TGV나 KTX와 달리 동력분산식인 점도 관절대차를 쓰기 어려운 이유로 얘기되는데요.


동력집중식은 앞쪽의 동력차가 열차 전체를 끌고 달리는 방식을, 동력분산식은 말 그대로 여러 대의 객차에 분산된 동력원으로 달리는 방식을 말합니다.


동력분산식은 동력원이 여러 개인 만큼 힘이 좋고 속도를 더 빠르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요. 그러려면 대차를 여러 개 넣어야 하기 때문에 열차 전체의 대차 수가 훨씬 적은 ‘관절대차’ 방식은 사용하기 어렵다는 설명입니다.


권병구 코레일 차량기술단장은 “20량 한 편성을 기준으로 할 때 일반 열차는 대차가 한량에 2개씩 40개가 필요하지만 관절대차를 쓰는 KTX는 거의 절반 수준인 23개만 들어간다”고 설명합니다. 그만큼 열차 무게가 줄고 중심도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네요.


국내에서 차세대 고속열차로 개발한 해무(HEMU-430)도 동력분산식이어서 관절대차를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ICE나 신칸센 등이 객차와 객차 사이를 단단하게 연결하는 장치들을 사용한다고는 해도 TGV의 관절대차보다는 유사시 대응력이 떨어지는 건 사실입니다.


1998년 6월 독일 에세데에서 발생한 열차 사고가 대표적인데요. 함부르크로 향하던 ICE의 바퀴가 파손되고 그 여파로 선로 분기기까지 이상이 생기면서 결국 열차가 탈선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객차들이 관성의 법칙에 따라 차곡차곡 밀고 들어와 쌓이면서 피해가 엄청나게 커졌다는 분석이 나오는데요. 사망자만 승객을 포함해 103명에 달합니다.


여기까지만 얘기하면 관절 대차가 여러모로 상당한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요. 관절대차에도 단점은 여럿 있습니다.


우선 관절대차를 쓰면 지탱할 수 있는 차체 폭과 너비에 제한이 생겨 ICE나 신칸센에 비해 수송력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또 열차 칸수를 늘릴 수 없고, 유지 보수에도 시간이 더 든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고 상황에서 관절대차가 결코 ‘무적’은 아닙니다. 과속하거나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은 상황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에는 그 대응력도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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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에서 발생한 고속열차(AVE) 탈선사고를 이를 입증하는데요. 급 곡선 구간에서 무리하게 과속 주행을 한 탓에 열차는 탈선했고, 무려 80여 명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강릉선 KTX도 사고 당시 시속 100㎞ 안팎으로 서행했기에 망정이지 만일 시속 200㎞ 이상으로 달렸다면 어떤 피해가 발생했을지 가늠키 쉽지 않은데요.


이렇게 보면 유사시 완전한 방비책은 존재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결국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것만이 최선일 것 같습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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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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