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해줘서 고마워요" 먼 길 달려온 환자 어머니의 눈물

[라이프]by 중앙일보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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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틀 무렵 전화를 받았다. 30세 환자의 전원 문의였다. 병원 이름이 생소했다. 차로 몇 시간은 족히 걸리는 곳이었다. 환자는 상태가 몹시 안 좋은 듯했다. 어젯밤 혼수상태로 발견되었다고 했다. 여러 검사에서 원인을 찾지 못했다고. 무언가 독성 물질에 중독된 게 아닌가 싶단다. 그렇다면 시급한 처치가 한둘이 아니었다. 굳이 여기까지 이동하려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치료에 써야 할 소중한 시간을 버리게 될 것이었다.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보내시는 좋을 듯합니다."


환자를 받겠다는 병원이 없다고 한다. 여기저기 연락했지만, 전화를 거는 족족 거절당했다고 한다. 반경 수 시간 내의 병원에서 모조리. 밤새도록. 중환자실 부족을 이유로. 기계 부족을 이유로. 중독 진료 불가능을 이유로.


끔찍한 밤이었을 것이다. 환자에게도 의사에게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병과 사투를 벌였을 환자. 여력이 안 되는 환자를 떠안은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을 의사. 둘의 모습이 중첩되어 그려졌다. 가슴 속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래, 대한민국. 이게 현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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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전북에서 소아 외상 환자가 발생했다. 수많은 외상센터가 하나같이 환아 수용을 거부했다. 결국 아이는 수술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보다 몇 해 전 대구에서는, 장중첩을 치료받지 못하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목숨을 잃은 환아도 있었다.


우리나라 의료는 곳곳에 구멍이 있다. 해결은 오로지 하나. 이슈에 달렸다. 외상센터는 이국종 교수가 석 선장을 살린 게 화제가 되어 뒤늦게나마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강릉에서 펜션 화재 사건이 문제가 되니, 그제야 비로소 고압산소치료가 도마 위에 오를 수 있었다. 이렇게 이슈의 순번을 기다리는 사이, 많은 생명이 길을 잃고 꺼져간다. 밤새 치료받을 곳을 찾지 못한 이 환자(중독)처럼.


환자는 먼 길을 달렸다. 한나절이 지나서야 겨우 우리 병원에 도착했다. 상태는 전화로 들은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과연 살릴 수 있을까?' 마음이 무거웠다. 빠르게 손을 놀려야 했다.


뇌파 모니터를 달아 경련부터 잡았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전신 마취에 들어갔다. 동시에 환자의 혈액을 채취해 중독 물질 분석을 시작했다. 경련을 일으키는 약물들을 광범위하게 스크리닝했다. 어렵지 않게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특정 약물이 비정상적으로 높게 검출된 것이다. 과량 섭취 시 경련을 일으키는 약물이었다. 치료는 오직 하나. 투석으로 걸러내는 것뿐이었다.


보호자인 어머니는 눈물을 보였다.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어 고맙다고. 밤새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 안타까웠다고. 여기저기 병원에서 거절당하는 걸 지켜보며, 이대로 끝날까 봐 너무 두려웠다고. 아이를 받아준 것만도 고마운데, 염치없게 하나만 더 부탁해도 되겠냐고 했다. 아이를 꼭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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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환자는 폐렴과 호흡부전이 겹쳤다. 기계 호흡에도 불구하고 산소 수치는 걷잡을 수 없이 떨어졌다. 동맥혈에서 꺼낸 피는 빨갛지 않고 까만색에 가까웠다. 이대로는 버틸 수 없었다. 환자의 피를 몸 밖으로 꺼내 산소를 주입한 뒤 다시 몸속으로 넣었다. 덕분에 환자에겐 커다란 장비가 하나 더 달리게 됐다. 우리는 그 곁에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머리를 맞댔다.


다행히 환자는 치료에 반응을 보였다. 힘든 시술을 모두 견뎌냈다. 아마도 젊기 때문이리라. 아니면 어머님의 기도가 통한 것인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마침내 약물 농도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모니터에 더는 경련 파가 잡히지 않았다. 멈추었던 폐도 산소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기계를 뗄 수 있었다.


몇 주의 시간이 흐른 뒤, 그가 병동에서 퇴원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시원섭섭했다. 퇴원 전에 한 번 찾아볼걸. 바쁜 일정에 시간을 내지 못한 게 후회됐다. 그래도 아침부터 훈훈한 기분이 들었다.


오후 늦게 중환자실을 지나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러 세웠다. 뒤를 돌아보니 환자가 보였다. 퇴원하는 길에 인사하러 들렀단다. 어머니는 내게 아들을 한번 안아줄 수 없겠냐고 부탁했다. 기꺼이. 나는 두 팔을 벌려 그를 안았다. 녀석은 산만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멋쩍어했다.


"다시는 병원에서만큼은 보지 말자." 내 말을 들고 그는 웃음을 지었다. 함박웃음이 아름다웠다. 대한민국 의료의 사각에서, 어쩌면 다신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30살의 찬란한 웃음이었다.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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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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