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제 산모' 낙태시킨 그 의사, 유죄 돼도 의사 자격 지킨다

[트렌드]by 중앙일보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강서구의 한 유명 산부인과에서 6주 된 태아를 실수로 낙태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낙태 수술을 집도한 의사와 간호사, 해당 병원 측을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현 법리상 그리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강서경찰서에 따르면 서울 강서구의 한 산부인과 의사 A씨와 간호사 B씨는 지난달 7일 환자 신원을 착각해 임산부인 베트남 여성 C의 동의 없이 낙태 수술을 한 혐의로 입건됐다. 사산된 태아를 품고 있던 다른 환자의 차트와 C의 차트가 바뀐 상태였지만, 의사와 간호사 모두 C를 상대로 본인 확인 절차 없이 낙태 수술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C는 해당 병원에서 임신 6주 진단을 받고 영양제 주사를 처방받기로 돼 있었다.



'실수로 한 낙태'는 처벌 조항 없어


C는 사건 발생 직후 경찰에 의료진을 '부동의 낙태죄'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법리 검토 끝에 '업무상 과실치상'으로 입건했다. 형법상 낙태죄는 낙태를 시키려는 '고의성'이 인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부동의 낙태죄는 산모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낙태를 고의적으로 했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과실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 업무상 과실치상으로 입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C의 경우와 같은 낙태에 대한 범죄를 묻기 위해서는 '과실로 인한 낙태 범죄를 처벌한다'는 규정이 있어야 하지만, 현행법상 해당 조항은 없는 상태다.


태아가 사망했지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역시 적용되지 않는다. 형법상 태아는 사람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정혜승 의료전문 변호사는 "태아의 법적 지위를 놓고 '태아도 사람으로 봐야 한다'는 학설이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판례나 법리상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며 "이 때문에 태아가 받은 피해가 아닌 산모가 받은 피해로 판단해 과실치상 혐의를 적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무상 과실치상·과실치사는 의사 자격에 영향 안 줘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해당 의사가 유죄 판결을 받는다 해도 의사 자격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현행 의료법상 의사 면허 취소 요건은 업무상 비밀누설, 허위 진단서 작성, 진료비 부당 청구,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이다. 2000년까지는 업무상 과실치상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금고형 이상 처벌을 받으면 의사 면허가 정지될 수 있었지만 '의사들의 적극적 진료를 막는다'는 이유로 사라졌다.


정 변호사는 "의사의 의료 행위를 보호하기 위해 해당 조항을 삭제했으나, 이렇게 터무니없는 부주의로 인한 실수까지 보호돼야 하는 것은 지나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다시 해당 조상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고 말했다.



"의료기관 시스템도 조사해야"


일각에서는 의료진뿐만 아니라 해당 병원의 시스템에 대한 조사도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현정 의료전문 변호사는 "피 한방울을 뽑더라도 이름과 주민번호를 모두 다 확인하는데 어떻게 낙태 수술에서 차트가 바뀔 수가 있나"며 "이 같은 의료 사고가 그 의료기관에 한정된 것인지, 그 의료기관의 환자안전시스템은 안정이 돼 있는 것인지 정확하게 조사해서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에서도 해당 사건을 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현지조사를 진행할지는 결정된 게 없다"면서도 "관련 보건소와 기관 등을 통해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으며, 필요한 경우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피해자인 산모 C는 한국어에도 능숙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의료진 쪽에서 제대로 된 확인 절차도 없이 수술을 진행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의료진에 대한 조사는 마무리된 상태"라며 조만간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이런 분야는 어때요?

ESTaid footer image

Copyright © ESTaid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