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옥살이 끝낸 '화성 8차'도 증거는 자백과 체모 6가닥뿐

[이슈]by 중앙일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 이춘재(56)가 8차 사건마저 자신의 범행이라 주장하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해당 사건은 이미 이춘재가 아닌 윤모(당시 22세)씨가 범인으로 검거돼 재판 끝에 20여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상태다. 앞서 윤씨는 무죄를 호소했다.


6일 법조계는 “이춘재와 윤씨 주장을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면서도 “혹여라도 사실이라면 무고한 사람에게 옥살이를 시킨 사법부 최악의 사건이 될 것”이라며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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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서 발견된 체모 6가닥, 윤씨와 일치


윤씨가 범인으로 체포되고 유죄 선고를 받는 과정은 어땠을까. 중앙일보는 30여년 전 언론 보도와 윤씨의 1심 판결문을 토대로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했다.


1988년 9월 16일 오전 6시 50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 살던 박모(당시 13세)양이 자신의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박양의 하의는 벗겨진 상태였고 목 졸린 흔적이 있었다. 앞선 7차례의 화성 사건과 달리 피해자들 입에 재갈을 물리거나 옷가지로 매듭을 만들어 손발을 묶는 특유의 수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이 사건을 ‘화성 8차 사건’이라고 불렀는데 피해자가 폭행당했고 목이 졸려 죽었다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7차 사건과의 시간 간격은 약 열흘이었다.


경찰은 이렇다 할 범인을 특정하지 못한 채 수사에 매달렸다. 수사가 전환점을 맞은 건 약 1년이 지난 1989년 7월이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 6가닥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한국원자력연구소 분석 결과 중금속인 티타늄 13.7ppm이 함유된 것으로 드러나면서다. 음모 주인의 혈액형은 B형이었다.



7시간 조사 끝에 "소아마비 때문에 범행"


경찰은 그 일대 티타늄을 사용하는 공장 등을 샅샅이 뒤져 인근 농기구 센터에서 수리공으로 일하던 윤씨를 검거했다. 당시 중앙일보는 ‘종업원 가운데 혈액형이 B형인 460여명의 체모를 감정 의뢰한 결과 윤씨의 음모가 현장에서 발견된 것과 일치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경찰은 25일 밤 윤씨를 연행해 조사했으나 그는 처음에 범행을 부인했다. 하지만 거짓말탐지기에서는 윤씨의 진술이 거짓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어 경찰이 사건 발생 무렵의 행적과 국과수 감정 결과를 들이대며 7시간에 걸쳐 추궁하자 윤씨는 다음날 새벽 3시쯤 범행을 모두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는 “3살 때 왼쪽 발에 소아마비를 앓게 되면서 여성과 교제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던 차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살해 동기를 밝혔다. 29일 윤씨는 구속됐다.



당시 언론도 "과학수사 첫 사례지만 논란될 수도"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와 당사자의 자백. 이 두 가지는 결정적 증거일까. 당시 언론들은 ‘최첨단 장비를 동원한 과학 수사의 첫 사례’라고 경찰을 치켜세웠지만 부정적 전망도 함께 내놨다.


동아일보는 ‘앞서 경찰이 화성 사건 3건에 대해 범행 자백까지 받아냈지만 증거 불충분과 자백 신빙성이 문제가 돼 수사가 원점으로 되돌아갔었다’며 윤씨 역시 ‘재판에서 논란이 될 듯하다’고 전망했다. 당시 경찰이 용의자로 연행한 10대 소년이 고문으로 숨졌다는 점도 강조했다. 중앙일보 역시 ‘경찰이 결정적인 물증이 없어 고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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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씨의 구속을 알리며 '화성 사건 미궁에서 벗어나려나'를 기대한 1989년 7월 29일자 중앙일보 기사.

법원은 경찰 손을 들어줬다. 수원지법은 1989년 10월 윤씨가 수사단계와 법정에서 진술한 내용이 일관됐다며 1심에서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후 2심에서 형이 20년으로 감형,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하지만 윤씨는 2003년 5월 시사저널과 진행한 옥중 인터뷰에서 “나는 8차 사건 범인이 아니다”라고 돌연 주장했다. 그는 “나처럼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놈이 어디다 하소연하나. 그때 나는 국선 변호인을 쓸 수밖에 없었다.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수사 과정에서 폭행을 당했다고도 했다. 피해자인 박양의 오빠와 친구 사이였고 박양을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춘재 허세일 수 있지만 다시 조사해봐야"


이에 대해선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판사 출신 도진기 변호사는 “당시는 자백이 ‘증거의 왕’이었던 시절로, 더불어 체모라는 강력한 보강 증거가 있으니 유죄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체모가 다른 경위로 현장에 떨어져 있었다는 게 증명되고 수사기관이 과학 증거로 인해 오히려 선입견을 가져 자백을 강압적으로 받아낸 것이라면 윤씨가 충분히 무죄로 뒤집힐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공정식 교수는 “과거에도 대전 지역 금은방 강도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머리카락의 주인이 대구 지역 거주자로 나와 용의자로 지목된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판넬에 묻은 머리카락이 대전까지 갔었다. 윤씨의 체모가 피해자의 체내에서 발견된 게 아닌 이상 확증편향을 가지면 안 되는 일이다”고 지적했다.


영화 ‘암수살인’처럼 이춘재가 단순히 자신의 범죄를 부풀렸을 수도 있다. 공 교수는 “강력 범죄자들은 차라리 희대의 살인마가 돼서 교도소 내 지위를 확보하려는 심리도 있다”며 “이춘재가 윤씨가 교도소에서 함께 있었거나 서신을 주고받는 등 서로 공모한 흔적이 있는지, 80년대의 동위원소 분석 기술이 정말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이었는지 재평가도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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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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