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가면 얼마나 살겠냐"…전과23범 전자발찌남의 두 얼굴

[이슈]by 중앙일보

[사건추적]

보호관찰관에 폭언…경찰 오면 '순한 양'

지난해 3월 출소 후 만취상태로 술집 전전

경찰, 야간외출 제한 명령 위반 50대 구속

같은 혐의로 2차례 기소…벌금 900만원

보호관찰소 "처벌 약하니 안일하게 대응"



"어차피 (교도소에) 들어가면 얼마나 살겠냐? △같은 씨X!"


지난 7일 A씨(55)가 보호관찰관과 경찰에게 이 같은 폭언을 퍼부으며 격렬히 저항했다. 전날 보호관찰관의 지도에 불응하고 야간외출 제한 명령을 어긴 혐의(특정 범죄자에 대한 보호관찰 및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체포된 직후 무릎까지 꿇고 용서를 빌던 그가 구속영장이 신청됐다는 소식을 듣자 하루 만에 돌변한 것이다.


전북 익산에 사는 A씨는 특수강간·마약·사기 등 전과 23범으로 전자발찌(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대상자다. A씨는 지난해 3월 19일 교도소 출소 후 군산준법지원센터(이하 보호관찰소)의 보호관찰을 받아 왔다. 2009년 새벽 주점에서 술을 마시다가 혼자 가게를 지키던 여주인을 성폭행하는 등 강간상해·강도·상해·폭력(집단·흉기 등 협박) 혐의로 기소돼 2010년 11월 서울고법에서 징역 8년과 전자장치 부착 명령 10년을 선고받고 만기 복역했다.


보호관찰소에 따르면 출소 후 배우자와 단둘이 살던 A씨는 일정한 직업 없이 공사장 일용직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일반 회사에도 다닌 적 있지만, 한 달 만에 그만뒀다.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었다.


A씨는 교도소에서 나온 지 한 달도 안 돼 밤거리를 만취 상태로 돌아다녔다. 새벽까지 단란주점과 노래방·호프집·모텔 등을 전전하며 술을 마셨다. 보호관찰관이 말려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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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관찰관이 귀가 지도를 하면 "야, 씨X! 마음대로 해. 내가 지금 (전자)발찌를 자를 테니까 잡으러 오든지 확인하러 오든지 알아서 해!", "씨XX, 가만두지 않겠다" 등 욕설과 협박이 날아왔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보호관찰소 측은 지난해 7월과 올해 8월 두 차례에 걸쳐 A씨에 대한 야간외출 제한 명령을 법원에 신청했다. 전주지법 군산지원은 A씨에게 6개월간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외출을 금지했다.


하지만 A씨는 이후에도 보호관찰관의 귀가 지도에 응하지 않았다. 야간외출 제한 명령을 계속 위반하자 보호관찰소 측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A씨의 성폭력 전력 3회 모두 심야 시간대 술 취한 상태에서 여성을 흉기 등으로 제압하고 성폭행한 것이어서 재범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해서다.


보호관찰소는 익산경찰서와 공조해 지난 6일 오전 1시쯤 익산의 한 주점에서 술을 마시던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당시 그는 만취 상태였다. 전주지법 군산지원은 8일 "도주 우려가 있다"며 A씨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A씨는 이미 최근 1년여 사이 보호관찰관의 귀가 지도를 무시하고 야간외출 제한 명령을 어긴 혐의로 두 차례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혐의로 세 번째 처벌 위기에 몰렸는데도 A씨가 당당하게 나오는 이유는 뭘까.


임춘덕 군산준법지원센터 관찰과장은 "앞서 1심 재판에서 처벌(형량)이 약하니 안일하게 대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지난해 7·8월께 야간외출 제한 명령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900만원이 선고됐다. 징역형을 구형한 검찰은 "형이 너무 가볍다"며 항소한 상태다. A씨는 한 달여 전에도 같은 혐의로 기소돼 군산지원에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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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관찰소 직원들은 "관내 전자발찌 부착 대상자 대부분은 보호관찰관의 지도에 순응하지만, A씨만 유독 지도에 불응하고 직원들을 조롱해 골칫거리였다"고 입을 모았다. 군산준법지원센터가 관할하는 군산·익산 지역 전자발찌 착용자는 총 38명으로 강도·살인·성폭력 전과자 등이다.


보호관찰관들은 A씨에 대해 "한마디로 훤칠한 외모에 말솜씨가 유려하다"고 평가했다. 지능이 뛰어나고 교묘해 '두 얼굴의 사나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임 과장은 "보호관찰관에게는 행패를 부리다가도 경찰이 출동하면 순한 양으로 바뀌었다"며 "본인이 궁지에 몰리면 무릎을 꿇고 빌지만 경찰이 돌아가면 다시 욕했다"고 전했다. 보호관찰소 측은 공무집행방해죄 적용도 검토했지만, 포기했다. A씨가 직접적·물리적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아서다.


A씨 때문에 전자발찌 신속대응팀은 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A씨가 자정을 넘겨 술집 등을 돌아다니면 즉시 현장에 출동했다. '집에 들어가라'고 설득해도 말을 듣지 않으면 주변에서 몇 시간씩 잠복하기 일쑤였다.


보호관찰관 노력 덕분에 추가 범죄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결국 지난 8일 구속되면서 A씨의 일탈은 교도소 출소 1년 7개월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안성준 군산준법지원센터 소장은 "전자발찌 대상자의 재범을 막기 위해 심야 귀가 지도, 행동 관찰, 실시간 모니터링 등 선제적 조치를 다하고 있다"며 "보호관찰관의 귀가 지도에 불응하거나 야간외출 제한 명령을 위반하는 전자발찌 대상자는 엄벌을 받게 된다"고 밝혔다.


군산=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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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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