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로또 1등' 43억 당첨된 60대, 2년 만에 쪽박 찬 사연

[이슈]by 중앙일보

전직 공무원, 10년 전 전주서 인생 역전

도박판 전전하다 로또 당첨 후 '회장님'

가족 몰래 흥청망청…2년 만에 빈털터리

음식점 사장 부부는 로또 당첨 후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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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하쇼. 나는 임충식(가명)이란 사람이오. 나이와 직업은 비밀이오. 각설하고, 로또에 관심 있소?


얼마 전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지 뭐요. 전북 전주에서 과거 로또 1등에 당첨된 50대가 빚 문제로 다투던 친동생을 칼부림한 사건 말이오. 동생은 부인과 초등학교 1학년 딸이 보는 앞에서 숨졌고, 형은 살인 혐의로 철창신세를 지게 됐으니 비극이 아닐 수 없소.


처음에는 내 귀를 의심했다오. 동생을 살해한 형이 내가 아는 '그 남자'인가 싶어서요. 하지만 뉴스에 나온 로또 당첨금 액수(12억원)와 형 나이가 달라 가슴을 쓸어내렸소. 하지만 교도소에 가지 않았을 뿐 로또 1등 당첨이 '독이 든 성배'가 됐다는 건 두 사람이 다르지 않소.


내 얘기를 한번 들어보시오. A씨(61)는 원래 전북 모 자치단체 토목직 공무원이었소. 비리에 연루돼 파면됐지만 말이오. 이후 도박판을 전전했소. 주머니가 가볍다 보니 끼니때마다 주위 사람들에게 얻어먹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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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뻘인 사람이 A씨에게 4000원짜리 짬뽕을 사주면서 "넌 짬뽕 먹을 자격도 없다"고 구박하는 건 일상다반사였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멸시를 당했다오.


그러다가 약 10년 전쯤 꿈 같은 일이 벌어졌소. 전주 복권집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산 로또 한 장이 1등에 당첨된 것이오. A씨는 세금 빼고 43억원을 움켜쥐었소.


도박판에서 '동냥아치' '천덕꾸러기' 소리를 듣던 그는 하루아침에 '회장님' 소리를 듣게 됐다오. 벼락부자가 된 A씨는 그러나 부인(59)과 자녀에게는 로또 당첨 사실을 철저히 숨겼소.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지만, 10원짜리 한 장도 안 줬다고 하오.


대신 A씨는 거의 매일 술집과 도박판을 돌아다니며 흥청망청 돈을 썼소. 손안에 자그마치 수십억원이 있는데 뭐가 두려웠겠소.


한풀이였을까. 호주머니에 단돈 1000원이 없어 끼니를 걱정했던 A씨는 말 그대로 물 쓰듯이 돈을 뿌렸다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A씨가 조폭이 낀 불법 사행성 오락실에 6억원을 투자했다 경찰에 적발돼 게임기를 몰수당한 일화는 유명하오. '친구에게 외제차를 사줬다'는 등 A씨를 둘러싼 소문은 무성했소. 일일이 세기도 벅찼던 돈은 유흥비와 도박 자금 등으로 2년 만에 연기처럼 사라졌소. 다시 빈털터리가 된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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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대신 술집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렸던 부인은 뒤늦게 A씨가 '돈벼락'을 맞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하오. 하지만 이미 A씨 혼자 43억원을 허공에 날린 뒤였소. 이 일로 이혼은 안 했지만, 두 사람은 무늬만 부부인 '쇼윈도 부부'로 살고 있다고 하오.


다시 쪽박을 찬 A씨는 요즘도 1000원짜리 고스톱판을 기웃거리며 푼돈을 빌려주는 '꽁지' 노릇을 한다고 하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소. '웃프다(웃기면서 슬프다)'는 말이 적확한 표현 같소.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도 A씨에게 직접 전화하는 건 참아 주오. 연락해 봤자 '겨우 잊었는데 염장지르냐'며 발끈할 게 뻔하기 때문이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실화란 사실만 기억해 주시오.


그러고 보니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로또 1등에 당첨된 이가 또 있소. 약 2년 전 일이오. 전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던 B씨(60)가 한 번에 로또 1등 2개와 2등 여러 개가 당첨됐소. 당첨금은 20~30억원으로 추정되오.


B씨 부부는 당첨 직후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임대하고 야반도주하듯 다른 지역으로 홀연히 떠났소. 소문이 나면 주변에서 돈 달라고 할까 봐 선수를 친 거요. 지금은 이들 부부가 어디 사는지 아무도 모르오. 다만 '쪽박은 안 찼다'는 소문은 들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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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사람들은 "로또 당첨이 됐으면 조금이라도 베풀고 가지"라며 B씨 부부를 욕하오. 하지만 B씨 부부가 여전히 전주에 살았다면 당첨금이 아직 남아 있을지 의문이오.


지난 11일 전주 완산구 한 전통시장에서 벌어진 '로또 1등' 형제의 비극만 봐도 그렇소. 2007년 로또 1등에 당첨된 형(58)은 세금 떼고 받은 12억원 중 5억원을 누이와 남동생 등에게 나눠줬다고 하오. 형제간 우애가 얼마나 깊었을까.


숨진 동생(49)도 형이 준 1억5000만원을 보태 집을 장만했소. 정작 형은 친구들에게 수억원을 빌려줬다가 떼이고, 정읍에 차린 정육식당도 장사가 잘 안됐다고 하오.


최근까지 전셋집에 살던 형은 동생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4600만원을 대출받아 친구에게 빌려줬다가 사달이 났소. 친구가 잠적했기 때문이오. 담보대출 이자(월 25만원)가 두어 달 밀리자 형제는 말다툼이 잦아졌고, 사건 당일 동생에게서 "형이 이자를 갚으라"는 말과 함께 '양아치'라는 욕설을 들은 형은 홧김에 살인을 저질렀소.


문득 이런 의문이 드오. 로또 1등 당첨은 대박일까, 쪽박일까.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본 기사는 익명을 원한 제보자가 들려준 로또 1등 당첨자 2명의 사연과 최근 전주 전통시장에서 발생한 '형제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제보자 1인칭 시점에서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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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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