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집 텐트 짊어지고 세계로···4년째 신혼여행 중인 이 부부

[여행]by 중앙일보

[눕터뷰]


일상을 떠나 세계 각지를 여행하는 꿈을 한 번쯤 바라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세계 곳곳을 누비고, 발길이 닫지 않는 곳을 걸으며 나를 찾는 여행. 그것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기에 녹록지 않다. 게다가 혼자서 도전하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아 언제나 마음속 고이 접어두는 꿈으로만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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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종(35, 이하 양)·이하늘(34, 이하 이)씨 부부는 과감하게 그 꿈에 도전했다. 30대까지 쌓아온 경력이나 안정된 삶의 추구는 여행을 떠나는 그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2016년부터 미국, 캐나다, 멕시코, 캄보디아, 호주 등 9개국을 여행했다. 그중 미국 동부 애팔래치아 산맥을 따라 형성된 ‘애팔래치아 트레일(Appalachian Trail, 3500km)’, 서부 태평양 연안의 산들을 연결한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 4300km), 대륙분수령을 이은 ‘콘티넨털 디바이디드 트레일(Continental Divide Trail, 5000km)’ 등 3대 트레일을 완주해 '트리플 크라우너(Triple Crowner)'에 오르기도 했다. 약 1만3000km를 걷고, 1만km를 자전거로 느리게 움직였다. 두 다리와 두 바퀴로 세계를 여행한다는 뜻의 ‘두두부부’를 함께하는 이름으로 내걸고 끝나지 않는 신혼여행을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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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희종 씨였다. 지난 2015년 4300km의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걷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도망치듯 떠났고, 스스로를 찾기 위한 길을 고통스럽게 걸었다. 트레일의 끝에서 그는 생각했다. 그 무엇이 됐든 스스로가 행복한 삶을 살고, 그 행복을 찾기 위한 여정을 계속하자고. 완주를 마친 희종 씨는 한국으로 돌아와 하늘 씨를 찾아갔다. 그리고 고백했다. 우리의 행복을 함께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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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의형제같이 지내며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이였다. 농담처럼 “마흔까지 혼자라면 그땐 결혼하자”라고 던지기도 했다. 길 끝에서 희종 씨는 앞으로 펼쳐질 삶을 하늘 씨와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간 쌓아온 시간 때문인지 하늘 씨도 흔쾌히 희종 씨의 곁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Q : 결혼식을 하지 않았는데


A : (이) 희종이 고백하고 3일 만에 다시 길을 떠났다. 4개월 후 그가 있는 곳으로 갔다. 처음 고백받았을 때 깨달았다. 나를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사람이 이상형이었는데, 그가 해줬던 말들이 딱 내 이상형이란 것을. 그리고 궁금했다. 왜 그렇게 걸으려 하는지. 같이 걸으며 휘트니산 정상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둘만의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하며 의미 있는 장소마다 결혼사진을 찍고 다시 둘만의 결혼식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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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가족, 직장, 친구 등 이전까지 삶을 구성하던 것들을 두고 떠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A : (양) 부부가 되면서 함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장소가 어디든 상관없다. 내가 걷는 것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들어간다고도 했다. 하늘에게 결정권을 줬다.


(이) 이상하게 자신감이 들었다. 큰 것들을 포기한다기보단 또 다른 삶의 선택권이 열린 거라 생각했다. 지금 당장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와도 무엇이든 다시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Q : 스스로 확신이 있었다는 건가


A : (이) 떠남이 탈출구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으니 여행도 잘할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상황이든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의 순간, 순간이 쌓인 하루, 그렇게 모인 소중함이 용기를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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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길 위에서 무슨 생각을 하나


A : (양) 생각할 시간이 정말 많다. 사회에서 떨어지니 자신에 대한 생각도 많아지고 상대방도 다시 보게 된다. 욕심도 많이 버렸다. 사회생활하며 힘들었던 건 욕심이 많아서였다. 그걸 버리니 많이 여유로워졌다. 그리고 보고만 있어도 좋은 사람이 곁에 있지 않나.


Q : 모든 것을 함께하다 보면 싸우기도 하지 않나


A : (이)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 서로의 흠결을 보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항상 모든 것을 함께 하다 보니 순간적인 감정 표출보단 이해하려 노력한다. 좁은 텐트 안에서 자야 하니 싸우면 떨어질 공간도 없다. 다만 격한 토론을 할 때가 있다. 서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종교, 커피, 트레일 문화 등을 주제로.


(양) 상대를 고치고 싶은 것도 욕심이다. 걸으면서 이런 것들을 많이 내려놓게 된다. 나는 원래 센 사람이었는데 걸으면서 아내와 함께하면서 많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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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걷는 여행은 어떻게 진행되나


A : (이) 4000km가 넘는 구간을 한 번에 완주할 수는 없다. 3~5일 정도 일정으로 걷고 마을에 내려와 식료품들을 보충해 다시 걷는다. 하루 평균 10~12시간, 20~30km를 걷는다. 날씨가 좋지 않을 땐 짧게 걷고 많이 걸을 땐 50km 이상 걷기도 한다. 대부분 등산길이라 설악산 종주를 매일 반복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 달에 하루 정도는 ‘제로데이’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을에서 쉰다.


Q : 여행하며 사람들도 많이 만나겠다


A : (양) 우리같은 장거리 하이커들도 많고 중간구간만 걷는 사람들도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비슷한 곳에서 잠을 청하는 경우가 많아 마을로 내려왔을 땐 공동으로 숙소를 구하기도 한다. 길 위에서 만나는 가장 반가운 존재는 뭐니뭐니해도 ‘트레일 엔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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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트레일 엔젤’이 무엇인가


A : (이) 여행자들을 도와주는 사람이다. 쉼터를 제공하거나 사막구간에 물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마을로 이동하는 차량을 태워주는 사람도 있다. 음식을 만들어주기도 하는데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을 때 뉴햄프셔에서 소문으로만 듣던 ‘오믈렛 가이’를 만났다. 1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오믈렛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즉석에서 만들어준 오믈렛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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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여행하며 평창 올림픽 홍보도 했다고


A : (양) 캐나다에서 무전여행을 할 때 밴쿠버 패럴림픽에서 자원봉사했던 경험이 있다.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이 동계 스포츠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정작 평창에서 동계올림픽·패럴림픽이 열리는 건 모르고 있는 게 안타까웠다.


(이) 홍보를 위해 펀딩을 하고 사비를 보태 스티커, 인형, 열쇠고리 등을 배낭에 넣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음료수 캔에 홍보 문구를 붙여 트레일 곳곳에 두며 트레일 엔젤 역할도 했다. 이걸 계기로 평창 올림픽과 패럴림픽 성화봉송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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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여행 경비도 많이 들 것 같은데


A : (이) 솔직히 많은 돈이 들어가진 않는다. 여행의 가장 큰 지출이 교통비와 숙박료인데,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하고 잠은 텐트에서 잔다. 라면, 즉석밥, 빵 등으로 식사를 해결한다. 둘의 퇴직금과 모아둔 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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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걷거나 자전거를 탄다. 여행의 수단을 나누는 기준이 있나


A : (양) 먼곳으로 이동할 때는 주로 자전거를 탄다. 도착한 곳에 좋은 길이 있으면 그땐 걷기 시작한다. 배낭 두 개, 자전거 두대가 우리의 전 재산이다. 매일 이동하니 체력적으로는 힘들지 않은데 자전거를 탈 때는 텐트 칠 자리 찾기가 힘든 편이다.


Q : 위험한 상황도 많았을 것 같다


A : (양) 산에서는 곰보다 소가 더 무섭다. 곰은 사람을 만나면 놀라서 도망간다. 말벌에 물려 응급차로 병원에 옮겨진 적도 있었고, 진드기 때문에 한 달 넘게 고생하기도 했다.


(이) 설원에서 선글라스를 끼지 않아 설맹이 왔다. 자고 일어났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정말 두렵기도 했다. 밤새 울었다. 4일 만에 시력이 돌아왔는데 정말 감사했다. 해발 5000m 설산에서 미끄러져 낭떠러지로 떨어질 뻔한 걸 남편이 달려와 잡은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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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그럴 땐 그만두고 싶지 않나


A : (이) 트라우마가 생기기도 하지만 다음 여정에서 더 신중하게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그리고 하루하루가 가치 있고 소중해진다.


(양) 그때의 위기만 지나간다면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게 된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욕심도 서서히 버려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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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다음 목적지는 어디인가


A : (양) 원래는 남미로 가려고 했는데 최근에 바꿨다. 여행하다 보면 ‘한국은 어디가 좋아?’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들에게 소개해줄 만한 홍보물이 많지 않은 것 같아 한국에 머물면서 좋은 장소를 여행하고, 담아내고 싶다. 다음 목적지는 대한민국 구석구석이다. 내년 1월부터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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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여행의 끝이 있는지


A : (이) 세상의 모든 곳을 다 가보고 싶다. 그렇지만 여행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더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여행을 통해 얻은 행복을 자양분으로 앞으로도 쭉 걸어나갈 거다.


사진·글·영상 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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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눕터뷰


'누워서 하는 인터뷰'의 줄임말로, 인물과 그가 소유한 장비 등을 함께 보여주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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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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