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녀 찾기' 드라마 속 진짜 VIP, 늑대의 유혹 벗은 이 배우

[컬처]by 중앙일보

[민경원의 심스틸러]

‘VIP’ 백화점 전담팀 에이스 이현아 과장

갑을관계 뒤섞인 욕망 속에서 중심 지켜

속시원한 사이다 발언 이어 패션도 화제

‘늑대의 유혹’ 캔디 이미지 벗고 외연 확장

중앙일보

드라마 ‘VIP’에서 백화점 VIP전담팀의 이현아 과장 역을 맡은 이청아. [사진 SBS]

SBS 월화드라마 ‘VIP’가 매주 최고 시청률(12.7%)을 경신하고 있다. MBC가 지난 9월 ‘웰컴2라이프’를 끝으로 월화드라마를 폐지한 데 이어 KBS2까지 지난달 ‘조선로코-녹두전’ 종영 이후 ‘정해인의 걸어보고서’ 등 신규 예능으로 그 자리를 대체한 상황에서 홀로 남은 지상파 드라마로서 그 반사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것이다. SBS가 여름 시즌 편성한 월화예능 ‘리틀 포레스트’ 최고 시청률(6.8%)의 두배 가까운 성적이니 ‘편성의 묘’가 통한 셈이다.


하지만 ‘VIP’가 맘 편히 볼 수 있는 드라마는 아니다. 백화점 상위 1% 고객을 관리하는 VIP 전담팀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갑을 관계를 밑바탕에 깔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VIP 중에서도 연간 99명만 선정되는 블랙 다이아몬드 등급 회원들의 다양한 요구사항을 실현하기 위해 이들은 그야말로 사력을 다한다. 교도소에 수감된 VIP가 출소할 때 신고 나올 한정판 구두를 일본에서 비행기로 공수하는 것은 기본이고, 주얼리 경매 행사에 각각 내연녀와 내연남을 동반한 VIP 부부의 심기 경호는 물론 육탄전까지 벌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시청자들도 ‘을’이 되어 고개를 조아릴 지경이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도 최대한 예의를 지키되 기품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이를테면 “당신 팀에 당신 남편 여자가 있어요”라는 문자를 받은 나정선 차장(장나라)은 팀원들을 차례로 의심하면서도 끝까지 ‘좋은 사람’이고 싶어한다. “넌 니가 주인공이어야 되는 거지? 니가 다 알아야 하고, 도움 줘야 되고, 사람들이 널 다 좋아해야 하고”라는 이현아 과장(이청아)의 말처럼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해외 유학까지 다녀온 덕분에 남들보다 승진도 빠르고 행복한 가정까지 이룬 이상적인 모습을 쉽게 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극 중 등장인물들의 욕망도 모두 그 이상향에서 비롯된다. 혼외자로 태어난 박성준 팀장(이상윤)이 아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을 같은 처지의 온유리(표예진)에게 들켜서 마음을 주고받은 것도, 두 아들을 둔 워킹맘으로 번번이 승진에 밀려 남편 몰래 셋째의 임신중절수술을 꾀한 송미나(곽선영)도 결국 그 갖지 못한 하나를 채우고자 그릇된 선택을 하고 만다. 드라마는 ‘불륜녀 찾기’라는 자극적 프레임을 앞세웠지만 실은 그걸 보고 있는 나 역시 별반 다를 바 없는 결핍과 욕망에 시달리는 존재라는 걸 자꾸만 깨닫게 하면서 스스로 불편함을 느끼게 만드는 셈이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현아 역을 맡은 이청아(35)의 연기가 유독 돋보이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비단 그가 사이다 발언을 일삼아서가 아니라 그에게는 꼬인 구석도, 과한 욕심도 없기 때문이다. 찌질한 전 남자친구가 “시장 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니네집 같은 거 우리 세계에선 취급도 안 한다”는 말로 깎아내리려 해도 “니 와이프는 아니? 급 떨어지는 애 만나다 헤어지고 스토커 노릇하다접근 금지명령 당한 거”라고 받아칠 수 있는 당당함이 그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도 꼿꼿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상황이 남들보다 더 나은 것도 아니다. 빚쟁이에 쫓기게 만든 엄마가 원망스러울 법도 하고, 먼저 승진한 동기가 배 아플 법도 한데 그는 다른 사람을 탓하는 대신 모든 에너지를 지금의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직장 동료의 대시를 거절할 때도, 동료의 흠결을 발견했을 때도 그는 상대방을 평가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지 않는다. “VIP에겐 한없이 을이 업체들에는 갑이 되는” 돌고 도는 세상 속에서 “공짜는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고 적정선을 지킨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는 얼핏 쉬워 보이지만 쉽지 않은 연기다. 감정을 쌓아서 폭발시키는 사람들 속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적잖은 내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청아는 2002년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으로 데뷔 이후 오랫동안 청춘을 대표하는 얼굴이었다.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재학 시절 첫 주연을 맡은 ‘늑대의 유혹’(2004)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이후 ‘동갑내기 과외하기 레슨 2’(2007)나 드라마 ‘꽃미남 라면가게’(2011) 같은 이미지가 굳어진 탓이다. 허나 그 명랑한 기운을 뽐내던 캔디 같은 모습은 ‘VIP’에서 한순간도 등장하지 않는다. 소녀에서 숙녀로, 아니 그보다는 그 대척점 어딘가에 있는 신여성으로 완벽하게 다른 단계에 접어든 셈이다.


일찌감치 성공을 맛본 그가 조바심을 내는 대신 내실을 쌓는 데 집중한 결과이기도 하다. 2016년 장진 감독의 연극 ‘꽃의 비밀’로 소극장 무대에 오르고, 지난해 ‘시골경찰 3, 4’ ‘아모르파티’ 등 예능 프로그램으로 보폭을 넓히면서 그가 품을 수 있는 세상이 한결 넓어진 덕분이다. 스스로 배우라는 직업을 “하나씩 벽을 넘어가는 사람”이라 정의한 것처럼 그는 천천히 경계를 허물어왔다. “어릴 때는 지레 겁을 먹고 도전하지 못했지만 서른이 되고부터 조금씩 바뀌었다”는 고백처럼 급격한 변화는 없었지만 꾸준히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온 셈이다.


매회 ‘VIP’ 방송이 끝날 때마다 그가 입고 나온 수트며 들고나온 가방 등이 화제가 되는 걸 보면 이제는 닮고 싶은 ‘워너비’로서 자리까지 꿰찬 게 아닐까. 극 중 이현아는 “취향에는 돈이 드는 법”이라 했지만 현실 속 이청아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남들이 골라준 역할에 자신을 맞춰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색깔로 채워갈 수 있는 역할을 만날 때까지 충분히 스스로에 대해 고민하고 가꿔올 시간 말이다. 어쩌면 이제부터 보여줄 얼굴이 진짜 그의 모습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