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열면 젊은 관람객 열광, '미술계 아이돌' 문성식이 누구니?

[컬처]by 중앙일보

2011년 개인전 '완판' 기록, 이번 전시작도 90% 판매

19일까지 전시 연장... 스크래치 기법 신작 공개 호응

배우 고소영도 전시장 찾아 인스타에 '인증샷' 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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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삶이 뭐냐고 물으면 이 그림으로 답하면 될 것 같다." "한국적인데 서양 벽화 느낌도 나고, 고전적인데 에로틱하다. 전시 보며 설렜다." "기법과 구도의 새로운 실험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전시장 안의 작품들 전부 다 갖고 싶었다."


SNS에서 작가 이름을 치니 그의 전시를 본 관람객들의 이런 코멘트가 줄줄이 떴다. 이 작가는 자신의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을 단숨에 시인으로, 또 비평가로 만들어버렸다. 이쯤 되면 '현상'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미술계의 아이돌'이라 불리는 문성식(40) 작가 얘기다.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최연소 작가로 이름을 올린 뒤 미술계에서 줄곧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다. 지금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그의 개인전 '아름다움. 기묘함. 더러움. (Beautiful. Strange. Dirty.)'이 열리고 있다. 2011년 이후 국제갤러리에서 선보이는 두 번째 개인전이자 두산 갤러리 개인전 이후 4년 만의 전시다.


이번에도 문성식의 힘은 남달랐다. 전시가 시작되자배우 고소영이 직접 전시장을 찾아 '인증샷'을 SNS에 올려 작가의 인기를 입증했다. 전시 한 달만에 110개 작품 중 90%는 모두 판매됐고, 이에 힘입어 지난해 12월 31일 막 내릴 예정이던 전시는 오는 19일까지 연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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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사람들로부터 잊혀질만큼 긴 시간", 그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작업실에서 보낸 4년은 헛되지 않았다. 직접 고안해낸 스크래치 기법을 처음 선보인 '그냥 삶' 회화 연작부터 과슈, 유화물감, 젯소, 연필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드로잉 연작이 시선을 오래 붙잡는다. 유화 바탕을 연필로 긁어 그린 '그저 그런 풍경' 연작도 서서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잔잔한 이야기가 피어나는 듯하다.


이번에 그가 풀어놓고 싶었던 이야기는 도대체 무엇일까. 사람들은 그의 작품에서 무엇을 보는 것일까. 연장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문성식 작가를 만났다.



'아이돌'이라는 고통과 부담 짊어져야 했다


Q : 2005년 데뷔 이래 '미술계 아이돌'이라 불려왔다.


A :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지만 제게 아이돌이란 자의식은 없다. 속은 굉장히 너덜너덜하다. 진짜 아이돌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 시절에 일찍 데뷔했고, 그곳(베니스 비엔날레)의 임팩트가 너무 컸다. 그때 이미 직감적으로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예견된 고난이었다. 더구나 제가 사람들의 관심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어서 창작에 대한 고민으로 더 힘든 시간을 보냈다.


Q : 그래도 벌써 1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A : 마음이 짓눌린 채 보낸 시간이었다. 동시에 자유를 갈망하고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갈구해온 것은,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최대한 자유로워지는 것이었다. 내가 자유롭다고 느낄 때 그림이 가장 좋으니까. 잘해낼 수 있을까 두려웠는데 지나고 보니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겪었어야 할 일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순 없지만 그 전보다는 나아진 것 같다.


Q : 4년 만의 개인전이다. 비교적 오래 걸린 것 아닌가.


A : 그 이유가 자연스러움을 위한 제 투쟁하고 연관 있는 것 같다. 전에 하던 작업을 반복하고 싶진 않았다. 지금 하던 작업에 대한 한계를 느끼거나 내가 새롭게 가지고 놀 요소가 더는 없다는 걸 느끼면 자연스럽게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했고, 그러면 다음 전시가 더 멀어지곤 했다. 그동안 전시 제안을 거절하는 게 제 일이었다. 그게 고통스럽기도 했고, 거절하면서 내가 이렇게 잊힐 수 있겠구나 하는 공포도 없지 않았지만 그게 최선이었다.



꽃이 좋아서, 그 생명력에 끌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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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이번 전시에선 대형 꽃그림인 장미 연작 '그냥 삶'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왜 꽃그림인가.


A :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꽃그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도 없지 않은데, 아이러니하게도 역사를 돌아보면 꽃은 모든 화가가 탐미한 대상이었다. 그런 만큼 그림이 실패했을 때 비난이 더 커질 수 있었다. 그렇게 부담이 큰데도 꽃을 그린 이유는 실제로 내가 꽃에 끌려있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틈만 나면 종로 5가에 있는 묘목 시장을 찾았고, 꽃을 직접 키우기도 했다.


Q : 꽃에서 무엇을 보았나. 꽃은 활짝 피어 있고 나비와 거미줄, 새도 보이는데 현실 풍경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A : "그림은 장미가 겪는 시간, 그 안의 사건들을 제가 관찰해온 것들을 재구성한 것이다. 실제의 장면이라기보다는 관념의 장면을 그린 것에 가깝다. 나고 자라고 살고 병들고 죽는 것, 장미라는 세계 안에 그 안에 기생하는 미물들, 그것이 공존하는 풍경을 담고 싶었다. "


그가 그린 꽃은 '아름다움, 기묘함, 더러움'이라는 전시 제목과 공명한다. 대형 화폭을 점령한 것들은 '그저 아름다운' 꽃을 넘어서 있다. 붉은 장미는 마치 핏자국처럼 화폭에 번져 있고, 미세한 거미줄과 나비들이 그 꽃봉오리 사이를 점령하고 있다. 검은 바탕에 젯소를 바른 후 마치 칼로 긁어낸 듯 만들어진 선들이 마치 날카롭고, 또 거칠다. 유년기의 추억들을 섬세한 연필 드로잉으로 펼쳐 보였던 과거의 작품과는 크게 다르다.



"'아이다움'의 경지 다다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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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처음에 봤을 땐 우리 민화가 떠올랐는데, 화면의 질감은 서양 벽화처럼 보이기도 하더라.


A : 실제로 이번 연작은 민화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민화가 보여주는 자유로움에 도달하고 싶은데 아직은 부족하다. 가장 고차원적인 선(線)은 '아이다움'에서 나오는 것 같다. 중국에서도 최고의 선은 '바보 같이 그려진 선'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에 동감한다. 지나치게 테크니컬한 선은 매력 없으니까.


Q : 설치나 영상 작업에 매달리는 작가들이 많은 시대다. 21세기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A : 제가 98학번인데 대학(한예종)에 들어갔을때부터 했던 고민이다. 그때도 이미 그림은 고리타분한 것이라는 분위기가 없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매체가 무엇이냐 보다는, 작가 자신이 그 안에서 자기 언어를 만들어낼 수 있고, 그것으로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는가가 아닐까. 무엇보다도 회화의 장점이자 단점이 바로 몸을 쓴다는 점이다. 저는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의지가 있고, 정신하고 육체가 하나가 돼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것 그게 굉장히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그 회화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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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이번 전시작 90% 이상이 판매됐다고. 소감은.


A : 2년 반 정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연 전시다. 서울서 창작이 막혀 뭔가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궁지에 몰려서 부산으로 갔다. 창작에 집중할 공간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부산에서 혼자 작업할 땐 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가 닿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번 전시를 하며 내가 그 전보다 성장했다는 것, 그리고 작품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었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Q : 다음엔 어떤 작품이 또 나올까.


A : 전엔 나무를 그렸고, 이번엔 꽃을 그렸다. 중요한 것은 제가 자연과 인간의 미스터리에 관심이 많다는 점이다. 무엇을 그리든 인간의 삶은 앞으로 작업에도 계속 등장할 것은 확실하다.


문성식은 198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1998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에서 수학했다. 두산갤러리, 국제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여러 차례 그룹전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리움 삼성미술관, 두산아트센터, 하이트컬렉션, 소마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전시는 19일까지.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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