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상 심한 1·4번 환자에 썼다···에이즈 치료제, 코로나에 등장

[이슈]by 중앙일보

효소 억제해 바이러스 증식 막아

한국도 증상 심한 1·4번환자 투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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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전세계로 확산하고 있지만 치료제 개발은 아직까지 요원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바이러스(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바이러스 치료제가 신종 코로나 치료제의 대안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3일 태국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태국 보건부는 지난 2일 신종 코로나 환자인 71세 중국 여성에게 HIV 항바이러스제 혼합물을 투여해 치료 효과를 봤다고 밝혔다. 여성에게 투입한 약물은 HIV치료에 쓰이는 리토나비르ㆍ로피나비르 혼합제(칼레트라)와 독감 치료에 쓰이는 오셀타미비어(타미플루)다.


이 여성을 치료한 의료진은 기자회견에서 “약물을 투여한 뒤 48시간 만에 (바이러스 검사에서) 음성 반응이 나왔다”라고 설명했다. 앞서 중국에서도 신종 코로나 환자들에게 칼레트라를 투여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국내 확진자 중에서도 폐렴 증상이 심한 1번과 4번 환자에게 이 약물을 투약하고 있다. 왜 신종 코로나 환자들에게 HIV치료제를 쓸까.


송대섭 고려대 약대 교수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증식에는 ‘단백질분해효소’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HIV치료제인 칼레트라는 단백질분해효소를 억제해서 바이러스 증식을 막는 역할을 한다”며 “신종 질병이 터지면 신약 개발까지 몇년이 걸리다보니 기존 약물 중에 과학적으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약물을 시도해본다”라고 설명했다.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2015년 메르스 사태때도 환자들에게 에이즈 치료제를 투여했다. 당시 확진자들에게 심각하게 직접 노출된 의료진들이 몇명 있었는데 이들에게 칼레트라ㆍ인터페론(항바이러스제)ㆍ리바비린(C형간염 치료제)를 예방적으로 투여했고, 단 한명도 감염되지 않았다”며 “호흡부전을 동반하는 중증 폐렴으로 진행하는 것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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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국내 확진자가 늘어가지만 해당 치료제의 국내 재고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이 약을 복용 중인 국내 환자 수는 400명에 불과하다. 수요가 적다보니 국내에 남아있는 물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관계자는 “중국 보건당국이 칼레트라 제조사인 미국 제약사 애브비에 '제품을 찍어내는 대로 달라, 거의 무한대로 달라'고 요청을 했다고 한다. 치료제를 빨리 확보하지 않으면 써보지도 못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은 미국 제약사 길리어드 사이언스가 개발 중인 에볼라 치료 신약 ‘렘데시비르’도 신종 코로나 환자들에게 투약하고 있다. 아직 미국에서 임상시험이 진행중인 약이다.


엄 교수는 “최근 감염학회 차원에서 ‘한국에서도 임상 연구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제품을 요청해서 써보자’는 제안을 해둔 상태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메르스 때도 그랬지만 신종 감염병이 돌아 난리가 나도 신약을 빨리 구하거나 기존 약을 허가 사항 이외에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없다. 이럴때마다 현장에서 의료진들이 제발 구해달라 난리를 쳐야 해결이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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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국내 SNSㆍ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외신을 통해 중국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 환자에 에이즈 치료제를 투약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엉뚱하게 “중국이 에이즈ㆍ코로나 바이러스 등으로 생화학 무기를 개발하다 신종 코로나 사태가 난 것”이라는 괴담이 힘을 받고 있다.


고려대 송 교수는 “신종 감염병이 돌다보니 말도 안되는 괴담이 생겨난다. 신종 코로나에 HIV 치료제를 쓰는건 이론적 근거가 분명한 시도”라고 일축했다.


그는 “엊그제 인도 과학자들이 발표한 논문을 하나 읽고 깜짝 놀랐다. HIV 유전자에서 어떤 특정 부분을 빼내 신종 코로나를 제작한 증거를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꼼꼼히 보니 논문 자체가 말이 안되는 수준이엇다. 이 논문은 세계 과학자들이 집단 지성의 힘으로 반박했고,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신종코로나 사태는 이미 지난해 예견된 사태다. 지난해 박쥐에게서 유래한 코로나바이러스가 종의 장벽을 뛰어넘어 돼지에게 전파된 일이 있었다. 돼지에게 심각한 급성 설사를 일으키는 ‘사드(SARD)’ 바이러스가 생겨난 것이다.


당시 과학계에선 ‘조만간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한 신종 감염병이 돌 수도 있겠다’는 추정이 제기됐다. 새로운 병을 목격하고 공포감을 느낄 수 있지만 괴담보다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이야기에 집중할 때”라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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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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