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쓴 도쿄올림픽 주경기장 ‘황당 영어표기’에 글로벌 망신살

[이슈]by 중앙일보

장애인 시설에 "Calm down, cool down"

경기장에는 "HELLO, OUR STADIUM"


올해 7월 24일 개막 예정인 도쿄 올림픽의 경기장에 쓰인 영어 안내문 가운데 정작 영어권 사용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 많아 논란이 되고 있다.


25일 일본 언론과 SNS 등을 종합해보면 도쿄올림픽 및 패럴림픽 주 경기장이 될 국립경기장 내의 영어표기 안내판 중 의미불명의 표현이 다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표적인 예가 '컴 다운, 쿨 다운(Calm down, cool down)', '안녕, 우리 경기장(HELLO, OUR STADIUM)' 등이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웃음거리가 될 뿐만 아니라, 혼란을 부를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월스트리트저널 편집위원인 앨러스터 게일은 지난해 12월 15일 올림픽 경기장을 소개하는 언론인 대상 공개 행사에 참석했다. 다음날인 16일 그는 트위터에 'Calm down, cool down'이라는 문구를 지적하는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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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m down, cool down'은 장애인을 위한 공간에 부착된 문구다. 많은 사람으로부터 시선을 차단하고 기분을 가라앉히는 공간이라는 설명인데 문제는 이 문장이 자칫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유명 동시통역가이자 번역가인 토리카이 쿠미코(鳥飼玖美子) 릿쿄(立教)대 명예교수 는 "명령형으로 '진정하라'고 하는 것은 실례되는 표현인 데다 '일본에서는 스포츠 경기를 보러 왔다가 흥분하면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인가'라는 식으로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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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OUR STADIUM(안녕, 우리 경기장)'이라는 표현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일본 기타큐슈 대학에서 강의하는 미국인 교수 로셸 코프는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경기장에 있는 부자연스러운 영문 표기를 트위터에 소개하는 한편, 일본에서 발행되는 영어신문인 저팬 타임스 오피니언란과 뉴스위크 일본판에도 기고했다. 그는 "국립 경기장에 1000억 엔(약 1조 원) 이상이나 투자하면서, 왜 영어 표기에 대해서는 충분히 생각할 수 없었는가"라고 지적했다.


문제가 된 또 다른 문구는 '조호 노 니와(Joho no Niwa·정보의 정원)'라는 문구다. 정보(情報)는 일본어로 '조호'이며 '니와'는 정원이라는 뜻이다.


일본 스포츠 진흥센터에 따르면 'Joho no Niwa(情報の庭)'는 행사용 구역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외국인이 이 의미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 "일본인들도 이게 뭘 의미하는지 모른다"는 반응도 있다.


이밖에 '아래 버튼을 눌러주세요'라는 문구가 올림픽 경기장엔 'PLEASE PUSH THE UNDER BUTTON'으로 쓰여 있지만 보다 자연스러운 표현은 'Please push the button below'라고 코프 교수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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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표기에 비하면 일본식 영어 표기는 '사소한' 실수다. 앨러스터 게일은 3층 스탠드라고 표기한 일본식 영어 '스탠드(stand)'를 두고 'tier(여러 줄·단으로 이뤄진 것의 줄)'를 의미한다고 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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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잘못 번역된 영어 표현은 과거에도 있었다. 지난해 오사카의 지하철에서는 '사카이스지'라는 역 이름이 '사카이 근육(Sakai muscle)'이라고 번역돼 망신을 샀다. '스지'는 일본어로 근육을 뜻한다. 현지 언론들은 "직역이 나온 건 자동 번역기가 원인이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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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에도 도쿄 올림픽에서는 어색한 영어 표기가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있다. 1960년대 일본에선 기업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을 일본식 영어로 'BG'(비즈니스 걸)라고 불렀다. 그러나 영어권에서는 이것이 '접객 여성'으로 받아들여졌다. NHK가 1964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BG를 방송금지 용어로 삼으면서 '접객 여성' 논쟁은 일단락됐다. 그 후 'OL'(오피스 레이디)이라고 하는 새로운 일본식 영어가 태어났다.


한편 국립경기장 홍보 담당자는 'Calm down, cool down' 등의 영어 표기에 대해 "현 시점에서 변경할 예정은 없다"고 밝혔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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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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