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벙글쇼' 떠난 김혜영, "정치권 러브콜도 청취자 불쾌해할까 사양"

[컬처]by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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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지금 ‘싱글벙글쇼’를 할 시간이네요. 이 시간에 스튜디오 밖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신기하네요.”


11일 오후 1시, 시계를 보던 김혜영씨는 웃으며 말했다. 33년간 진행한 방송을 마친 다음날이어서 그랬을까. 그는 '자유인'이라는 게 실감 나지 않는 듯 했다.


1만2169일. 그가 강석씨와 함께 MBC 라디오 ‘싱글벙글쇼’를 진행한 날이다. 1987년 1월 16일 잡은 마이크를 2020년 5월 10일 내려놓았다. 그동안 20대를 지나고, 당시 그녀보다 더 나이 많은 두 딸의 어머니가 됐다.


1시간 30여분의 인터뷰 동안 전화벨은 쉴 새 없이 울렸다. 개그맨 이용식씨 등 지인의 위로전화도 있었고, ‘우리 지역으로 휴양오시라’는 한 지자체의 제안부터 ‘홈쇼핑에 출연해달라’는 섭외까지 다양한 ‘러브콜’도 이어졌다. 그는 “휴가도 제대로 못 갔으니 그동안 기다려 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라 했지만 ‘휴식’은 그리 길지 못할 것 같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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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장수 비결이 무엇일까.


A : “사실은 청취율 조사 덕을 많이 봤다. 내가 ‘싱글벙글쇼’를 맡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입됐다. 이전까지는 ‘감’으로 교체했다. ‘3~4년 했으니 오래 했네, 새 얼굴을 기용해야지’라는 식이었다. 그런데 청취율이 숫자로 찍히니까 라디오 전체 1위인 우리를 교체할 수 없었다. 또, 우리가 좀 미련할 정도로 무던하다. 30여 년 동안 담당 피디랑 얼굴을 붉힌 적도 없고, 출연료 이야기도 꺼낸 적이 없다. 그런 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Q : 진행자끼리 다툰 적도 없나.


A : “왜 없겠나. 그런데 다퉜다기보다 강석씨가 혼자 서운해하는 식이다. 불쾌한 일이 있으면 말을 안 해서 내가 이유를 찾아야 했다. 한번은 ‘스타명콤비’라는 특별 노래자랑 프로그램에 가수 현숙씨와 콤비로 나선 적이 있다. 이후 한 달 가량 말을 잘 안 하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너는 나랑 콤비지, 왜 현숙이랑 콤비냐’라는 불만이었다. 그것도 본인이 말을 안 해서 건너 전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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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33년 10개월 동안 휴가도 거의 가지 않았다고 들었다.


A : “‘강석ㆍ김혜영의 싱글벙글쇼’인데 프로그램에 강석, 김혜영이 없으면 안 되지 않나. 나나 강석씨나 그런 점에서 의견이 같았다. 요즘엔 DJ가 휴가 내고 대타를 세우는데, 우리는 그럴 생각을 못 했다. 1996년에 ‘싱글벙글쇼’가 미국 한인방송 초청을 받아 간 적이 있다. 그 기간의 방송을 사전 녹음해서 내보냈는데, 때마침 강릉에서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터졌다. 그런데 하필 녹음한 것은 신혼부부들의 첫날밤 사연을 소개하는 ‘신혼일기’ 코너였다. 전국이 난리가 났는데 신혼부부 첫날밤 이야기만 나가니 어떻게 되겠나. 돌아와서 엄청나게 혼이 났다. 그 후로 외유는 우리 팔자에 없다고 생각했다. 가족과 해외여행도 간 것도 3박4일 사이판에 딱 한 번이다.“


Q : 결혼식에도 진행을 했다.


A : “결혼식 당일 웨딩드레스를 입고 진행을 했다. 방송 마치고 강석씨가 결혼식장(서울 신길동 공군회관)까지 태워주고, 사회도 봤다. 신혼여행은 제주도로 갔는데, 나는 제주 MBC에서 강석씨는 서울 MBC에서 진행을 했다. MBC 라디오에서 첫 이원중계라고 알고 있다. 콩트 코너가 많았지만, 대본을 미리 짠 덕분에 사고는 없었다.”


Q : 수십년간 다양한 사연을 통해 서민들의 애환을 나눴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은?


A : “떠오르는 게 너무 많은데… 어느 부부가 이혼하려고 법원으로 갔다. 트럭을 타고 둑길을 가면서 우리 프로그램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울고 웃으면서 결국 이혼서류를 찢어버리고 중국집으로 가서 짜장면을 먹고 돌아왔다더라. 어려운 형편 때문에 결혼식을 갖지 못한 부부들의 합동 결혼식을 올려드린 것도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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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기억나는 가장 큰 위기는 언제였나?


A : “청취자가 첫날밤을 전해주는 ‘신혼일기’ 코너는 아슬아슬한 면이 있었다. 그런데 한 번은 정말 수위가 높았다. 웃지 않으려고 입을 틀어막았는데, 강석씨는 허벅지를 꼬집고 있더라. 밖을 보니 작가도 피디도 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결국 방송심의위원회에 불려갔는데 ‘진행자를 교체하라’고 했다. 당시 라디오 국장이 그건 절대 안 된다고 우겨서 결국 피디만 교체했다. 우리는 ‘꿀단지’ 사건이라고 부른다.”


Q : ‘싱글벙글쇼’ 하차 계기에 대해 청취자들이 궁금해한다.


A : “하차 이유는 물어보지 않았다. (MBC 측에서) 이유가 있고, 생각이 있을 것이다. 더 잘되길 바랄 뿐이다. 한 달 전 국장님이 말씀을 꺼내시는데 너무 힘들어하셔서 오히려 내가 ‘괜찮아요, 말씀하세요’라며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항상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지 않나. 예전에 우리가 청취율을 23%을 찍었지만 지금은 그보다 낮아졌다. 예전보다 대중의 관심을 덜 받는 게 사실이다. 조금 더 나은 디딤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이제 ‘안녕’을 고하는 게 맞다. 30년이나 무대를 만들어주신 MBC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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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청취율이 높은데 정치권에서 러브콜은 없었나?


A : “90년대부터 선거나 정치권 행사에 와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우리가 이야기를 나눴는데 결론은 'MC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방송에서 말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일로 청취자 중 누군가 소외되거나 불쾌해지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건 지금 생각해도 잘 한 것 같다. 그래서 이때까지 진행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한때 신우염 등으로 건강에 큰 위기를 맞은 적도 있었다. 그녀는 “청취자 여러분이 나에겐 마법이었다. 몸이 아무리 아파도 그 자리에 딱 앉아서 청취자들의 사연을 읽고 반응을 보면 그 순간만큼은 아프지 않았다”며 “내가 30년 동안 더 많은 선물을 받고 돌아간다”며 감사를 전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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