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숨 죽은 화초도 기사회생, 난초 명의 납시오!

[라이프]by 중앙일보


[더,오래] 푸르미의 얹혀살기 신기술(20)

“조금 더 빨리 알았으면 좋았는데….”


“상태가 그렇게 안 좋아요?”


“참 아깝게 되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잖아요.”


“그래, 한번 해 보자.”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대사가 아니다. 아버지와 내가 죽어가는 환자를 앞에 두고 나눈 대화다. 그 환자는 바로 난초.


누군가의 사무실에 선물로 보내지는 화분의 삶은 참으로 기구하다. 아무리 화려한 자태를 뽐내던 서양란도 길어야 한 달, 잎마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던 동양란도 몇 달을 버티기 힘들다. 꽃집을 나설 때는 몸값이 제법 높지만, 진심 어린 축하와 받는 기쁨의 순간은 아주 잠시, 누군가의 ‘특별한’ 관심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어느 귀퉁이에서 조용히 말라가며 누런 잎을 늘어뜨릴 수밖에 없다. 사무실이라는 지극히 사무적인 공간에 보내진 화분의 운명이 그러하다.


언젠가부터 나는 사무실 화분의 ‘생명연장’을 도맡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물 주는 것은 물론, 때 되면 비료도 주고 분갈이도 해 준다. 다른 곳에선 한 달도 못 가는 양란 꽃봉오리가 우리 사무실에선 두 달까지 버틴다. 동양란 잎사귀엔 수분 가득한 생기가 충만하다. 이 모든 것은 든든한 명의가 뒤에 계신 탓이다.


아버지는 난초를 오랜 시간 가꿔오셨다. 옛사람은 난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기쁜 마음이 솟아나 부인과 동일시할 정도로 사랑하게 되어 아내가 시기하는 꽃이라 했다는데, 우리 아버지도 딸보다 난초를 더 사랑하는 게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다.


어릴 땐 덩치 큰 아버지가 땀을 뻘뻘 흘리며 좁은 베란다 화분 사이를 마치 게처럼 옆으로 왔다 갔다 하며 난초를 가꾸는 모습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양말 하나도 직접 손으로 빨래통에 갖다 놓지 않는 분이 난초에 꽃대라도 올라오면 온 가족을 불러 모아 요란하게 기념촬영을 하고, 어린 우리에겐 전혀 느껴지지 않는 난향에 심취해 계신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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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시골에라도 가시면, 정해진 시간에 난초에 물 주는 것은 우리 몫이었다. 겨울엔 행여 난초가 얼까 봐 베란다로 연결된 안쪽 창을 다 열어놓는 통에 우리 자매들은 이불 속에서 꼭 껴안고 자야 했다. 한 번은 언니가 밤에 너무 추워 문을 닫았는데, 그 날 밤 난초 몇 그루가 얼어 버려 다음 날 온 집안이 그야말로 시베리아가 된 적도 있었다. 엄마는 시장에서 떨이하는 과일, 채소가 가득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팔이 끊어져라 들고 다니는데, 한 잔 걸친 아버지가 밤늦게 난 화분을 들고 들어와 콧노래를 부르실 때면 다른 세상 사람 같아 얄밉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의 이 우아한 취미생활을 인정하게 되었다. 무언가에 몰두하고 계신 모습이 멋져 보이기도 하고, 난초가 없었다면 노후가 얼마나 단조로우셨을까 생각되어 그저 감사한 마음이다. 우리 집 오는 이들마다 그림같이 진열된 난 화분을 보며 탄성을 지를 때면 덩달아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한다.


젊은 시절 엄마는 난초가 그렇게 고가인 줄 모르고 집에 온 친구에게 하나씩 나누어 준 적이 있었다 한다. 퇴근해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비어있는 진열대를 보고 넋이 나갔고, 그동안 비자금으로 몰래 사 모은 난을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것’이라고 아내를 속여 온 것을 땅을 치며 후회했다 한다. 다행히 아내들이 가져온 난초를 본 그 댁 남편들이 이건 그냥 인사로 받아올 물건이 아니라고 되돌려 보내준 덕에 아버지한테 쫓겨날(?)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셨다 한다.


아버지는 난초를 잘 가꾸기도 하시지만, 죽어가는 것을 기가 막히게 살려낸다. 사무실에서 비실 되던 화분을 집에 가져오면 여지없이 생생하게 바꿔놓았다. 휴일에 아무도 없을 때 아버지를 모셔와 난 화분을 대대적으로 분갈이한 적도 있다. 연세가 많아지고 체력이 약해지면서 다른 여러 육체적 활동은 포기하거나 멈추셨지만, 여전히 난초 관리는 손수 다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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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를 손보고 계신 아버지. 뒷머리 숱은 비어가지만 등은 여전히 넓고 단단하시다.

이사한 뒤 아버지가 가장 만족해한 것 역시 널찍한 베란다다. 그 전에 살던 집은 베란다 공간을 거실로 확장한 탓에 화분 놓을 곳이 좁았는데, 새집은 거실에서 안방까지 걸친 베란다 공간이 꽤 넓다. 덕분에 아버지가 사랑하는 난 화분들을 멋지게 진열할 수 있었다. 이삿짐 센터 직원들에게 “우리 집에서는 난이 최고 귀중품이니 잎이 꺾이거나 상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하시며 격려금까지 주셨다.


내가 보기엔 그게 그거 같은데, 연일 화분 위치를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고 수정하면서 그렇게 행복해할 수가 없다. 베란다 앞에 의자를 놓고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기쁘고 자랑스럽다고 한다. 어느 날은 퇴근해 온 나에게 “뭐 변한 것 없어?”하고 느닷없이 물을 때가 있다. 아마도 화분 위치나 방향을 조금 더 손본 모양인데, 그 미세한 차이를 알아낼 길 없는 나로선 난감하다. 마치 아내가 미장원 다녀온 것을 전혀 못 알아채는 남편과도 같이.


오늘도 내가 신문지에 고이 싸 들고 온 난 세 뿌리를 보자마자 저녁 드시는 것도 미룬 채 당장 수술에 들어가셨다. 분명 사무실에선 가망 없어 보였는데, 어떻게 손을 쓰셨는지, 뿌리를 나누어 화분에 심으니 금방 화원에서 배달 온 것 같이 그럴싸하다. 집도의가 수술을 마치면 마무리는 수련의가 하듯, 명의가 떠난 뒤 쏟아진 흙과 베란다 바닥 뒷정리는 내 몫이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하시면서도 어린아이처럼 베란다에 주저앉아 난초를 어루만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언제까지나 아버지께서 내 곁에 계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기특한 생각을 하다니 나도 이제 나이가 좀 들었나 보다.


공무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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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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