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평 1인 주거도 완벽해야…청년 공유주택 고민하는 '삼시옷'

[라이프]by 중앙일보

서울 라이프스타일 기획자들 ⑬ 서울 소셜 스탠다드 김민철 대표


서울 소셜 스탠다드. 이름이 어려워 앞 자음만 따서 ‘삼시옷’이라 불리는 재밌는 소셜 벤처가 있다. 소셜 벤처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기업가가 설립한 기업이나 조직을 말한다. 이들이 추구하는 바는 대부분 회사 명에 담겨있다. 빠르고 밀도 높은 성장의 역사를 가진 ‘서울’을 배경으로 사람·시간·공간이 만드는 다양한 ‘관계’(social‧소셜) 속에서 지지해야 할 ‘표준’(standard)을 발굴하고 만드는 일이다.


이들이 지지하는 ‘표준’은 청년 주거 문제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동기인 김하나(40)‧김민철(39)이 공동대표로 있는 삼시옷은 지난 2013년부터 서울의 공유주택 사업을 기획하고 운영해왔다. 각자 설계 사무소에서 일하다가 뜻이 맞아 독립했다는 이들은 주로 청년들을 위한 공유 주택을 만든다. 정림건축문화재단과 함께 만든 종로구 ‘통의동집’, 신림동의 ‘소담소담’, 궁정동 ‘청운광산’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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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야 하는데 청년들이 전부 스타벅스에 나와 있다고 비판을 하더라고요. 청년들이 사는 공간에 대한 공감이 부족해서 나온 얘기라고 생각해요. 주방과 침실이 분리가 안 된 18㎡(약 5평) 크기의 원룸 공간에 온종일 머무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든지 이해를 못 하는 거죠.”


서울처럼 땅값이 높은 도시에서 상당수의 젊은이는 좋은 주거지를 찾는 데 어려움이 많다. 김민철 대표는 “보증금 1000만원, 월세 60만원 정도의 대학가 원룸은 대부분 샤워하고 나오면 방 안에 습기가 차서 여름이든 겨울이든 곰팡이를 피운다”며 “한정된 재화로 보다 집다운 집을 누릴 수 있도록 또 다른 주거 선택지가 있었으면 했다”고 말했다.


1인당 18㎡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원룸과 면적은 같지만, 여럿이 모여 함께 살면서 공간을 합치면 적어도 주방과 분리된 침실과 더 쾌적한 욕실이 가능하다. 조금 더 욕심내면 거실까지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공유주택, 일명 ‘셰어 하우스’를 청년 주거의 대안으로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저소득층 주거나 노인 주거에 비해 청년 주거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아직 부족한 편이다. 누군가는 ‘살만해지니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청년들 스스로도 어차피 취업하거나 결혼하면 더 나은 주거 환경으로 옮길 수 있기에 잠깐의 불편은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삶의 방식이 바뀌었다. 가족을 이루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1인 주거가 아닌, 완성형 1인 주거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됐다. 이에 맞는 집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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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에 문을 열어 올해 2월부터 11명이 둥지를 튼 종로구 궁정동의 ‘청운광산’은 삼시옷의 최근작이다. 1인 1실로 방은 개인이 따로 쓰고 화장실과 욕실, 주방은 함께 사용한다. 이곳의 입주 경쟁률은 치열하다. 청와대 인근, 도심지와 가까우면서도 아주 잘 지은 집이기 때문이다. 청운광산의 방은 모두 다른 구조로 방마다 창 모양도 모두 다르다. 9~12㎡(2.7~3.6평)의 작은 공간이지만 짜임새 있게 배열된 가구와 시원하게 뚫린 창으로 들어오는 화사한 신록이 인상적이다. 한 층 4명의 거주자가 한 번에 사용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샤워실, 두 개의 변기, 세면대 공간을 나눠 문을 달았다. 캐리어를 이용해 이사하는 1인 가구를 위해 캐리어를 두는 공간을 둔다든지, 자기 전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즐기는 요즘 청년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침대맡에 콘센트를 두는 등 작은 배려도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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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첫 번째 사업자로 선정돼 ‘40년 장기 임대’로 개발된 청운광산에는 몇 가지 입주 조건이 있다. 1인 가구, 주택 및 자동차 미보유, 도시근로자 소득 70% 이하 등이다. 월 임대료는 42만원 선이다.


청년 복지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주거는 어떤 방식으로든 공공 자본의 도움을 받는다. 그래서 기존에는 보다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 ‘저렴하게’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삼시옷은 청년 주거여도 좋은 품질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잠시 거쳐 가는 집이 아니라, 오래 머물 수 있는 집. 한 번 계약하고 만족스러워 또다시 계약해 오래 살 수 있는 집을 추구한다. 기숙사 형태의, 거의 모든 것을 공유하는 방식도 지양한다. 김민철 대표는 “적어도 1명이 1개의 방은 가져야 한다는 최소한의 기준으로 작업 한다”며 “우리는 ‘느슨한 공동체’라고 표현하는데, 개인적인 공간과 공용 공간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했다. 개인의 사생활은 중시하면서 공동체가 주는 긍정적인 기운을 누릴 수 있도록 설계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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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의동 집 입주자가 입주 후 집과 도시를 만나는 경험이 풍부해졌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오피스텔에 살 때는 ‘회사-지하철-오피스텔 내 방’의 도식에서 벗어나지 않았는데, 통의동으로 이사한 후에는 집 주변 산책도 하고, 실내 공유 공간에서 사람들과 만나며 도시와 집에 대한 또 다른 경험을 한다는 거죠.”


삼시옷이 만드는 공유 주택도 전체 면적을 입주자 숫자로 나누면 원룸에 허락되는 1인당 18㎡의 면적은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한 공간에 주방·침실·욕실의 기능을 압축하지 않고 재분배 해 완전히 다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든다. 김민철 대표는 공유 주택의 기획과 설계를 두고 “공간의 재편집이자 삶의 재편집”이라고 표현했다. 물론 누군가와 공유하는 공간에 불편함을 느껴 작아도 혼자인 것이 편한 사람들이 있다. 김민철 대표는 “그래도 (공유 주택 같은) 선택지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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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삼시옷의 고민은 공유 공간을 넘어, 동네로 확장하는 ‘공공 공간’이다. 면적 상 한계가 있는 공유주택 건물 하나에서 입주민의 생활이 끝나는 게 아니라, 집 주변 동네 골목의 다양한 공간을 또 다른 공유 공간으로 확장해 사용한다는 개념이다. 청운광산 근처 공원이나 동네 서점·카페 등 작은 가게들이 집이 가진 작은 공간의 한계를 보완해줄 수 있다는 것. 또 집과 동네의 경계에서 중간 정도로 열린 공유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청운광산 1층의 발표 카페 ‘큔’은 입주민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들를 수 있다.


이런 실험들은 모두 입주민들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공유 주택을 만들면 흔히 주방이나 1층 광장 같은 곳을 크게 만들어 입주민들이 즐겁게 어울리고 많은 이벤트가 일어나길 바라지만, 요즘처럼 간편식이 발달하고 개인화된 삶이 익숙해진 시대에 넓은 주방과 목적 없이 만들어진 광장은 불필요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청운광산 내부처럼 주방을 작게 만들고 1층에 ‘큔’처럼 운영 주체가 따로 있는 열린 공유 공간을 만드는 편이 1인 가구의 변화하는 라이프 스타일에 더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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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옷의 실험은 올해 노량진에 13가구를 위한 공유주택을 짓는 것으로 이어진다. 개인 책상을 공유 공간으로 빼거나, 개인 공간에 발코니를 넣거나, 디자인 학교 학생들의 생산 기지를 만드는 일 등 다양한 실험을 계획하고 있다.


“1인 가구 수가 늘면서 삶의 모습도 제각각 달라지고 있어요. 복지 차원이 아닌, 민간이나 기업에서 투자하는 공유 주거 사업 모델이 많아지는 이유죠. 이제는 주거의 질에 대해 고민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시옷의 공유 주거 모델이 다양해진 1인 가구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보다 경쟁력 있는 상품이 됐으면 합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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