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 "28kg 개말라 될 친구 구함" 게맛살 1개로 하루 버티는 그들

[트렌드]by 중앙일보

숨 쉬듯 매일 다이어트하는 프로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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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말라 되고 싶은 중딩입니다. 같이 28㎏까지 조이실 트친 구해요”


젓가락처럼 앙상한 다리, 모 걸그룹 멤버의 한 뼘 남짓한 허리 사진과 함께 트위터에 올라온 글입니다. ‘#프로아나’ ‘#프로아나트친소’라는 해시태그도 달려 있습니다.


생소한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을 위해 해석해볼까요. 윗글은 한 ‘중딩’(중학생)이 몸무게를 28㎏까지 함께 ‘조여’(감량해) ‘개말라’(빼빼 마른 사람)가 될 ‘트친’(트위터 친구)을 구하는 글입니다. 함께 다이어트할 또래를 찾고 있는 거죠.


글쓴이는 ‘ 프로아나’(pro-anorexia)입니다. 음식을 거부하거나 두려워하는 병적 증상인 거식증을 옹호하고, 이를 동경하는 사람을 뜻하죠.


트위터엔 이런 글이 한두개 가 아닙니다. ‘프로아나 친구를 찾는다’는 내용의 글은 매일 수십 개씩 올라오죠. 글쓴이는 대부분 10·20대 여성입니다.


마른 몸매를 갖기 위해 소셜미디어에서 ‘거식증 동지’를 찾는 사람들. 밀실팀이 프로아나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비타민과 게맛살로 하루 버텨…비난받을 이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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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타 마시는 발포 비타민이랑 게맛살 1개만 먹죠. 배고픈 느낌은 3일 정도면 없어져서 금방 적응돼요.”


트위터에서 만난 중학생 A양이 들려준 하루 식단입니다. 몸무게가 40㎏ 중반인 A양은 38㎏을 목표로 살 빼고 있는 프로아나입니다. 매일 자신의 식단과 몸무게를 트위터에 올리죠. 다른 프로아나가 올린 ‘옆구리 살 빼는 운동법’ 영상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트위터에 ‘프로아나’를 검색하면 깡마른 허리를 드러낸 아이돌 가수들의 사진과 영상이 쏟아집니다. 간혹 자기 사진을 올리며 “허벅지 살 빼는 운동 좀 추천해달라”거나 “먹토(음식을 먹고 억지로 토하기) 방법을 알려달라”는 계정도 있습니다.


반면 이런 프로아나를 향해 “섭식장애를 옹호하는 건 비정상적”이라고 비판하는 트위터 계정도 제법 많습니다. 이에 대해 A양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는 “프로아나가 남한테 피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왜 비난하는지 모르겠다. 어떤 아이돌 가수는 ‘다이어트 때문에 10일에 한 끼 먹었다’고 했는데 그건 괜찮고 프로아나는 나쁘다고 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답하더군요.



“살 빠지니 예뻐졌다”는 말에 '몸무게 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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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식증을 옹호하면서까지 다이어트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년째 프로아나 계정을 운영하는 B씨는 “조금만 살이 빠지면 예뻐졌다고 칭찬하는 주위 사람들이 있어서 살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 선의를 가장한 외모 평가'에 몸무게에 대한 강박이 심해진다는 설명이에요.


대중매체 속 아이돌의 가냘픈 몸매는 프로아나들에겐 ‘다이어트 자극 짤’입니다. A양은 “키 큰데 나랑 몸무게는 비슷한 남자 아이돌 가수 사진을 보면 ‘굶어야겠다’고 다짐한다”며 “남들 눈에 날씬하게 보이려면 그 정도의 체형을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죠.


단식이나 다름없는 아이돌의 체중 감량은 프로아나 사이에선 ‘비법’으로 통하죠. 지난 2018년 인기 걸그룹 멤버가 “연습생 시절 일주일에 7㎏을 빼기 위해 얼음 하나만 먹고 버텼다”고 털어놨습니다. A양은 “아이돌 가수가 굶어 살 빼는 건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느냐”며 “나같은 프로아나는 운동도 병행하면서 남보다 조금 덜 먹는 것뿐이니 문제 될 게 없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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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문가들은 다이어트로 시작된 섭식장애가 심각한 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소셜미디어가 활발해지면서 청소년들이 이미지에 관심을 갖는 건 흔한 현상”이라면서도 “이미지에만 몰두하다 보면 대인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섭식장애는 우울증과 함께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오상우 동국대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도 “섭식장애가 지속하면 생리불순이나 골다공증, 난임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오 교수는 “마른 사람을 ‘자기관리 잘하는 사람’으로 보는 우리 사회의 눈 때문에 거식증이 만연하다”고 설명하더군요.



섭식장애에 고생한 이들 “알면 동경할 수 없는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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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식증으로 몸무게가 30㎏까지 줄었던 안지민(가명·15)양. [본인 제공]

다이어트 때문에 섭식장애를 겪어본 사람들은 프로아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요. 이들은 “섭식장애를 가볍게 보고 동경하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다”“직접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는 고통”이라고 입을 모았는데요.


키가 164㎝인 안지민(가명·15) 양은 거식증으로 한때 몸무게가 30㎏까지 줄었습니다. 2년 전 언니를 따라 무턱대고 시작한 다이어트가 화근이었죠.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게 힘들 정도로 건강이 나빠지면서 좋아하던 태권도는 관둬야 했고, 성격도 변해 친구를 사귀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결국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아야 했죠.


지민 양은 “치료를 시작하고 나서도 한동안 음식 먹는 걸 무서워했었다”며 “아직 어렵지만, 몸무게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다른 거식증 환자에게 도움을 주고자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섭식장애 극복기 영상을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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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아름(24)씨는 다이어트 탓에 밥을 먹을 때마다 '먹토'(음식을 먹고 억지로 토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친구들과 떠난 여행에서까지 음식을 먹고 억지로 게워내기에 이르자 먹토를 그만뒀죠. 아름 씨는 “토하고 나서 거울에 새빨개진 얼굴이 보이자 자괴감이 들었다”며 “건강을 지키려고 시작한 다이어트가 건강을 해치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프로아나도 피해자, 다이어트 권하는 사회가 문제"


다이어트를 위해 섭식장애를 동경하는 프로아나. 그런데 이들에게 잘못됐다고 손가락질하면 해결될 문제일까요. 아름 씨는 “개인을 탓하기 전에 미디어에 마른 몸을 끊임없이 노출하는 사회를 탓해야 한다”며 “모두 사회가 정한 미적 기준 때문에 고통받는 피해자”라고 말했습니다. 프로아나를 향한 일방적인 비난이 해결책은 아니라는 거죠.


트위터에서 프로아나 계정을 운영하는 B씨 역시 “마른 몸매를 동경하는 사회에서 말라지려는 사람을 비난하는 건 모순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죠.


“예전에 제게 ‘네가 어떤 모습이어도 괜찮다’고 말해준 지인이 있었어요. 그 사람 덕분에 한동안 몸무게에 대한 강박을 줄이려고 노력했죠. 프로아나가 잘못됐다고 그들을 비난할수록 그들은 더더욱 굶으려고 할 거예요.”


외모 탓에 거식증을 동경하는 사람이 사라지길 바란다면 주변에 "네가 어떤 모습이든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게 어떨까요.



밀실은 ‘중앙일보 레니얼 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도있는 착 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박건·최연수 기자 park.k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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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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