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인생은 장난, 재치있게 살라…베르디의 '팔스타프'

[컬처]by 중앙일보


[더,오래] 한형철의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30)

‘귀천’. 인생을 소풍에 비유한 시인이 있었습니다. 시인 천상병. 동백림 간첩 조작사건에 휘말려 고문 받고, 남루한 차림으로 무연고자로 오해 받아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등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던 그는 구름이 부르자 하늘 나라로 가며 노래했지요. 이 세상은 ‘소풍’처럼 아름다웠다고 말이에요.


작곡 초반에 발표한 희극 작품이 실패한 뒤로, 작곡가 베르디는 줄곧 비극 오페라에 집중했고 그것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러던 그가 1893년 마지막으로 발표한 오페라 ‘팔스타프’는 그의 유일한 희극입니다. 나이가 80이던 그도 인생을 소풍처럼 느꼈음인지, ‘인생은 모두 장난’이라며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사는 법을 배우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종교적 신념과 민족애의 발현, 무엇보다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수많은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감동을 주었던 그가 마지막 작품인 희가극에서 그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껄껄 웃고 있는거지요. 자, 그럼 노 대가의 남다른 인생 철학이 담겨있는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팔스타프는 재정이 파탄 난 배불뚝이 늙은 기사입니다. 그는 알리체와 메그 부인의 재력을 탐내고 유혹하려 두 부인에게 똑같은 연애 편지를 써 보내지요. 두 여인은 기사인 팔스타프에게 구애 편지를 받았다면서 서로 자랑하느라 정신이 없답니다. 허나 이름 말고는 편지 내용이 똑같은 것을 알고는 못된 팔스타프를 골탕 먹이자고 의기투합합니다. 팔스타프를 꼬여내어 강에 던져 버리자는 거지요.


알리체의 딸 나네타와 펜톤이 정원에 숨어 은밀히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같이 2중창 ‘기쁨의 입맟춤, 달콤한 입술’을 부르는데, 달빛 흐르는 시골 물레방앗간의 숨죽인 키스처럼 달콤한 노래랍니다.


퀴클리 부인이 팔스타프를 방문해 알리체가 남편이 없는 2시에서 3시 사이에 그의 방문을 요청했다고 전하지요. 또한 사실 메그 부인도 그를 만나고 싶어하는데, 안타깝게도 그녀의 남편은 집을 비우는 일이 없다는군요. 뭇 여성들의 호감을 독차지한다는 말에 흐뭇해진 팔스타프는 늙고 뚱뚱한 자신이 아직은 쓸모 있다며 기뻐하는데, 그 모습이 참 거시기합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때 알리체의 남편 포드가 변장하고 찾아옵니다. 그는 팔스타프가 마을의 부인들에게 추파를 던진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혼내주려고 거짓 부탁하러 온 것입니다. 그는 큰 돈을 내놓으며, 윈저 마을의 알리체를 짝사랑하지만 그녀를 유혹하는데 실패했다며, 팔스타프에게 대신 그녀를 유혹해 달라는 이상한 부탁을 하지요. 팔스타프는 그가 건넨 돈다발을 챙기며, 이미 알리체와 만나기로 약속했으니 걱정 말라고 너스레를 떱니다. 부인들의 작전을 모르는 포드는 아내가 부정한 줄로 오해하지요.


퀴클리 부인이 팔스타프를 만나고 온 상황을 이야기해주자, 알리체는 하인들에게 커다란 빨래함을 준비시킵니다. 드디어 2시가 되자 알리체가 우아하게 류트를 연주하고 팔스타프가 들어옵니다. 자신을 기다리는 알리체를 본 그는 그녀를 껴안으려 하지요.


이때 퀴클리 부인이 급히 달려들어와 메그가 왔다고 알립니다. 연애편지를 보낸 또 다른 여인이 온다는 말에 팔스타프는 병풍 뒤에 숨지요. 메그는 부인의 외도에 화가 난 포드씨가 집으로 오고 있다며 알리체에게 어서 피하라고 소리칩니다. 여인들이 너스레를 떨며 긴장을 고조시키자, 병풍 뒤에서 팔스타프는 들킬까봐 안절부절입니다. 처음에 메그가 장난치는 줄로만 알았던 알리체도 남편이 진짜로 화가 났다는 사실에 당황하네요.


아내의 부정을 의심한 포드가 사람들을 이끌고 와 팔스타프를 찾으려 집안 곳곳을 수색하고, 알리체는 계획대로 팔스타프를 큰 빨래함 속에 숨깁니다. 이렇게 어수선한 난리통에도 나네타와 펜톤은 병풍 뒤에서 숨어서 키스를 하고 있지요. 역시 불붙은 사랑이란, 시도 때도 없잖아요!


어수선한 틈을 타서 알리체는 하인들에게 빨래함을 창 밖으로 던져 템즈 강에 처박도록 합니다. 여인들의 첫 번째 골탕작전이 성공하고, 의심이 풀린 포드를 포함해 모두들 그를 조롱하지요.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숙소에서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한 팔스타프가 포도주를 마시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습니다. 퀴클리 부인이 다시 찾아와 오해가 있었다고 해명하며 그 증거로 알리체의 연서를 건넵니다. 그렇게 당하고도 미련이 남은 그는 편지를 받아보는데, 에구 무서워! 자정에 정령이 출몰한다는 공원에서 만나자네요. 욕심에 눈이 먼 팔스타프는 부인들의 두 번째 골탕작전인 줄은 꿈에도 모른답니다.


자정이 되자 팔스타프가 공원에 나타나 알리체를 기다립니다. 그녀가 나타나자 또 그녀를 껴안으려는 팔스타프. 그때 부인들이 준비한 마녀들이 나타납니다. 묘한 음악이 흐르면서 요정 여왕으로 변장한 나네타가 꼬마 요정, 꼬마 악마들과 함께 나타나 서정적인 아리아 ‘향기로운 산들바람에’를 부릅니다. 겁에 질린 팔스타프는 요정을 보기만 해도 죽는다는 소문에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고는 쳐다보지도 않지요.



마녀로 변장한 사람들이 웅크린 팔스타프를 꼬집고 찌르는 등 혼을 쏘옥 빼줍니다. 알리체와 메그, 퀴클리 부인은 그의 색욕이 사라질 때까지 때리고 두들기며 혼내주라고, 톡톡 튀는 리듬으로 놀리지요.


결국 팔스타프는 자신이 속았다는 걸 알고는 자신의 노욕을 사과하고 자신을 골탕 먹인 것도 유머로 받아들이지요. 모두들 행복하게 합창으로 피날레를 장식하며 막을 내립니다.


작곡가 베르디는 평생 비극 오페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러던 그의 마지막 오페라가 바로 희극 ‘팔스타프’입니다. 그는 마지막 오페라를 마무리하면서 긴 인생을 살아보면 ‘마지막에 웃는 자가 승자이며, 우리는 모두 바보이니 함께 사는 법을 배우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인생을 재치 있게 살라고 말이지요.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중앙일보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2.08.07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