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1일, 죽어도 안 놔줘” 지능파 모범형사 장승조

[컬처]by 중앙일보

[민경원의 심스틸러]

경찰대 출신 엘리트 강력계 형사 오지혁

정의감보단 내 일이 우선, 독특한 캐릭터

잇단 낙방에 “서른다섯 살까지만 해보자”

악역·사랑꾼 오가며 새 얼굴로 자리매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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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부터 1일이야. 난 한번 시작하면 죽어도 안 놔줘.”


JTBC 월화드라마 ‘모범형사’에서 오지혁(장승조)이 조성대(조재룡)에게 건네는 말이다. 얼핏 보면 연인 사이에 오가는 사랑 고백 같지만 인천 서부서 강력 2팀 형사가 살인 사건 용의자에게 보내는 경고다. 비록 지금은 증거 부족으로 풀어주지만 “죄수 번호 달 때까지” 절대 놓치지 않을 거라는 포부가 담긴. 장승조의 그윽한 눈빛은 이 드라마가 장르물인지 멜로물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팀 내 파트너인 강도창(손현주)도 “네가 내 와이프라는 걸 기억해둬”라며 강한 브로맨스의 기운을 내뿜는다.


이처럼 ‘모범형사’는 여느 장르물과는 결이 다르다. ‘진실에 다가가려는 자와 은폐하려는 자들 간의 대결을 담은 리얼한 형사들의 세계를 그린 드라마’라는 설명은 진부하지만 5년 전 일어난 살인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이 조금씩 예상을 빗나가면서 전형성을 탈피한다. 이들이 진실을 알고자 하는 이유도 직업적 사명감이나 정의감과는 거리가 멀다. 오지혁은 어릴 적 눈앞에서 살해된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간 범인과 연결고리를 찾기 위함이요, 강도창은 자신의 실수로 멀쩡한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었을지 모른다는 죄책감이 더 큰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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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장승조의 활약이 놀랍다. ‘추적자 더 체이서’(2012)를 비롯해 다섯 작품째 호흡을 맞추고 있는 조남국 PD와 손현주는 장르물에서 잔뼈가 굵은 콤비지만, 장승조는 이번이 첫 형사 역 도전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경찰대 졸업 후 서울청 광역수사대에서 8년간 일한 엘리트이자 개인 플레이를 즐기는 인간미 없는 설정에 맞게 주먹이 먼저 나가기보다는 치밀한 계산 하에 움직인다. 경우의 수를 고려해 용의자를 도발하고 주변 인물을 지렛대 삼아 위기를 타개하는 식이다. 덕분에 움직임은 크지 않아도 존재감이 상당하다.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것도 차별화 포인트다. 아버지의 죽음 뒤에 사촌 형 오정태(오정세)가 있다고 의심하지만 그를 대하는 태도 역시 다른 사람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의견은 걷어내고 사실만 본다. 협력 관계에 있는 정한일보 기자 진서경(이엘리야)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서로 취할 수 있는 것은 취하되 맹신하거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게 생겨난 여백은 되려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시종일관 무표정하지만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진짜 마음은 뭘까 곱씹어보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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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마흔이 된 그의 변신도 의미심장하다. 2005년 뮤지컬 ‘청혼’으로 데뷔 이후 줄곧 ‘떠오르는 샛별’이었던 그가 언제까지 연기를 계속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기점으로 삼은 해이기 때문이다. ‘미스 사이공’(2006)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2007) ‘로미오와 줄리엣’(2008) 등 기대작에 연이어 캐스팅됐지만 큰 임팩트를 남기지 못한 그는 일단 “서른다섯 살까지만 해보자”고 마음먹었다고. 오디션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셨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서른 살 무렵. 2011년 영화 ‘늑대의 유혹’을 원작으로 한 동명 뮤지컬에서 강동원이 맡았던 정태성 역을 제대로 소화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마흔 살까지 조금만 더 해보자”고 다독이던 서른다섯 무렵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2014년 OCN ‘신의 퀴즈 4’를 시작으로 활동 영역을 넓힌 그는 여러 작품으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쓰릴미’(2011) ‘마마 돈 크라이’(2013) 등 뮤지컬에서 맡았던 센 역할을 토대로 ‘육룡이 나르샤’(2016)의 악랄한 유생, ‘돈꽃’(2017~2018)의 망나니 재벌 3세 등 악역을 실감 나게 소화하며 자리 잡았다. ‘아는 와이프’(2018)와 ‘남자친구’(2019)의 사랑꾼 서브 남주를 거쳐 첫 투톱 주연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을 달려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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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동안인 그를 제 나이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늑대의 유혹’으로 만난 아이돌그룹 천상지희 출신 뮤지컬 배우 린아와 2014년 결혼해 세 살배기 아들을 둔 애 아빠지만 풋풋한 로맨틱 코미디 주인공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보다 많은 역할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과 “아내에게 월급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책임감이 맞물려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장르별로 오디션 노트를 만들고 데뷔 후에도 10여년간 동료 배우들과 스터디를 이어오는 학구파이기도 하다.


그의 인터뷰를 보면 “배우는 선택 받는 직업”이라는 말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배우라는 끈을 놓지 않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지론에서다. ‘더데빌’(2017), ‘킹아더’(2019) 등 방송 활동 중에도 틈틈이 무대에 오르는 이유 역시 더 나은 배우가 되기 위함이다. 이 정도 페이스라면 쉰 살이 되어서도 러브콜이 쏟아지는 배우가 되지 않을까. 장승조에게는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얼굴이 더 많이 남아있을 테니 말이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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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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