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 법원은 왜 ‘김성재 타살 가능성’을 허위라고 보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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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듀스의 멤버 고(故) 김성재씨가 사망한 지 25년이 지났지만 그와 관련한 재판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지난해 10월 김성재의 전 여자친구 김모씨는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약물 분석 전문가 A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2일 1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1998년 김씨는 김성재 사망 혐의에 무죄를 선고받고 사건은 마무리됐습니다. 김씨는 왜 이제 와서 A씨를 상대로 10억원이나 되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일까요.


1995년 11월 19일 솔로 데뷔무대를 가진 김성재는 서울의 한 호텔에 여자친구와 매니저, 팀 멤버 등 8명과 함께 투숙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숨진 채 발견됐죠. 그의 오른쪽 팔에서만 28군데의 주삿바늘 자국이 발견됐고, 틸레타민과 졸라제팜이라는 약물이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김씨가 사건 얼마 전 동물병원에서 ‘졸레틸’과 주사기를 구입한 사실이 밝혀집니다. 졸레틸은 김성재 몸에서 검출된 틸레타민과 졸라제팜이 혼합된 동물마취제였습니다. 경찰은 김씨를 체포했고, 1심은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2심은 연인 관계에 있던 김씨가 김성재를 살해할 만한 뚜렷한 동기를 찾을 수 없다며 무죄로 뒤집었고, 1998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결국 김성재 사망 원인이 타살인지 사고사인지, 또 타살이라면 범인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으면서 끝내 의문사로 남았습니다.


A씨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직원으로 1995년 김성재의 사망 원인이 동물마취제 ‘졸레틸’임을 밝혀낸 인물입니다. A씨는 2016년부터 김씨가 소송을 내기 전인 2019년까지 강연이나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려줬습니다. 김씨가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던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에도 전문가로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 2018년 12월 4일자 '세바시' 강연 中 강연


“마약 먹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루에 28개를 주사를 맞지는 않거든요. 하루 맞고 또 며칠 후에, 맞고 며칠 후에. 그러니까 ‘약간의 시차를 둬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바늘 자국이) 굉장히 신선하더라’는 얘기를. 하지만 뭐 주삿바늘 자국이 있으니까 마약 환자일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이 물질이 뭔가 찾아봤더니 동물한테 쓰이는 마취제였습니다. 사람한테 쓰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찾기가 어려웠던 게 되겠습니다. 이 사건은 굉장히 중요했던 게 마약을 먹은 분이 아니라 전혀 다른, 타살의 흔적이 있는 쪽으로 얘기가 되면서 사건이 전개됐습니다.”


김씨는 A씨의 발언 중 ▶김성재 체내에서 검출된 동물마취제가 사람에게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는 약물이라고 한 점 ▶김성재의 오른쪽 팔뚝에서 발견된 28개의 주사 자국이 마치 한 번에 맞은 것으로 확인된 것처럼 말한 부분을 문제 삼았습니다. 이를 통해 김성재의 사인이 타살이고, 나아가 김씨가 살해한 것이라는 허위 사실을 우회적으로 표현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겁니다.


김씨의 어머니는 소송 제기 후인 지난해 12월 법무법인을 통해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그는 “대법원까지 무죄를 받았으니 이제는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왔다”며 “그러나 24년이 지난 최근에도 김성재 사건을 많은 언론에서 다룬다. 대중들은 사건의 본질은 알지도 못한 채 오로지 제 딸에 대한 의심으로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성재는 마약 중독으로 사망한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1998년 대법원은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주된 사유로 동물마취제를 언급했습니다. 동물마취제는 대법원이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언급한 주된 사유이기도 합니다. 김씨가 졸레틸 1병을 사기는 했지만, 이는 김성재와 같은 건강한 청년을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의 분량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겁니다. 졸레틸이 마약 대신 사용된 사고사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습니다. 김씨 측은 “A씨가 부검 감정서를 작성하면서 졸레틸이 마약 대용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의견을 기재해 놓고도 독극물에 의한 타살이라고 스스로 모순되는 진술을 지금까지 펼치고 있다”고 항변했습니다.



동물마취제 졸레틸은 마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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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2월 9일 ‘듀스 김성재 사망 사건’ 관련 여자친구 구속을 보도한 중앙일보 지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재판장 김병철)는 A씨의 발언이 허위인지를 하나하나 살펴봤습니다.


김씨 측은 동물마취제 졸레틸은 마약류에 해당하는 약물로써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마약으로 사용되던 약물이라고 했습니다. 김성재 사체에서 졸레틸의 성분이 발견된 건 마약으로 인한 사고사의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이라는 게 김씨 측의 말입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2000년대 들어서 유흥 목적으로 졸레틸을 투약하는 사례가 보고됐고, 한국에서는 2014년이 되어서야 마약으로 지정한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김성재가 사망한 1995년에는 졸레틸이 국내에서 마약류로 지정된 물질이 아니었고, 당시 사람들이 환각효과를 얻기 위해 주로 사용하던 약물이 아니었던 점은 분명하다는 판단했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한테 한 번도 쓰인 적 없다’는 표현이 다소 과장됐다고 하더라도 허위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김성재의 오른팔 주삿바늘은 신선했다?


김씨 측은 당시 김성재 몸에서 발견된 28개의 주사침 흔적의 크기가 다르다고 말합니다. 이건 여러 번에 걸쳐 다른 주사기를 사용해 약물을 투여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마약 중독사임을 명백히 보여주는 매우 결정적인 증거라고 설명합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항소심 판결문을 참고합니다. 여기에는 “김성재 사체의 주삿바늘 자국에서 나타난 출혈은 신선혈로서 사망 이전에 발생한 것이고, 그 양상이 모두 동일한 점에 비춰 근접한 시간대(하루 이내)에 같은 주사기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또 재판 증인으로 나온 부검의가 “28개의 주사 자국은 동일 시간대에 한 번의 기회에 놓은 것”이라고 증언한 사실 등에 비추어 볼 때 A씨가 ‘신선하다’고 표현한 것을 두고 허위사실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김성재는 타살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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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의 사망 원인이 약물 오‧남용에 의한 것이라는 건 김씨 측의 일관된 주장입니다. 김씨 측은 “A씨가 오‧남용사에 대한 가능성은 없고, 타살된 것이라고 암시한다”고 반발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김성재 사망 사건이 동물마취제가 검출되면서 타살 사건으로 수사방향이 전환된 건 객관적 사실이므로 이를 허위라고 볼 수는 없다고 봤습니다. 또, 부검감정서에 “타살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기재된 것도 A씨 측에게 유리한 증거가 됐습니다.


결국 재판부는 “A씨의 발언이 객관적 진실에 부합하고, 설령 진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 따라서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책임이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김씨가 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할지는 미지수입니다. 민사 소송에서는 판결 송달 후 2주일 이내에 항소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5일 판결문이 송달돼 19일까지 항소 여부를 결정할 수 있어 아직 시간의 여유는 남아있습니다. 김씨 측 담당 변호사는 항소 계획을 묻는 중앙일보의 질문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습니다.



“김성재 전 여친 살해 혐의와는 무관”


전문가는 이 판결로 김성재의 사망 원인이 타살로 밝혀졌다거나 그 과정에 여자친구가 연루됐다고 봐서는 안 된다고 조언합니다. 과거 김씨 측의 변론을 맡았던 변호사는 “명예훼손이란 공익성이 인정되거나 진실이라 믿었다는 점이 증명되면 처벌할 수 없기에 이와 같은 판결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며 “과거 김씨의 살해 혐의 사건과는 연관 지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김씨가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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